'잘못'과 '잘 못'
'잘못'과 '잘 못'
  • 김윤태 교수
  • 승인 2018.07.04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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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 선거는 야당의 참패로 끝이 났다. 광역 단체장과 기초 단체장 및 지방의회는 물론 재보선까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릎을 꿇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대국민 사과 퍼포먼스를 했다. 그러나 무릎 꿇은 지 하루 만에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가 “사이코패스 같은 의원 청산 못 한 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막말을 하자 일부 의원들이 “자중하는 게 진정 한국당 돕는 일”이라며 책임 공방과 함께 당 내분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모습을 여과 없이 취재한 여러 언론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다는 걸까”라는 내용의 사설을 실으며 보수진영의 몰락과 위기를 우려했다.


사실 사죄 퍼포먼스는 여야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즐겨 써왔던 전략 중 하나였다. 2004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이 천막당사로 이전하며 108배 절하기, 삭발 단식하기 등으로 사죄 퍼포먼스를 벌인 적이 있다. 2012년에는 대선 패배를 참회하며 민주통합당이 '회초리 민생투어'를 한 적이 있고, 2014년과 2016년에는 새누리당이 세월호 참사와 공천 파동 때문에, 2017년에는 바른정당이 사죄 퍼포먼스로 창당행사를 시작한 적이 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선거 때마다 큰 절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혹자는 4년에 한 번씩 받을 수 있는 윤(閏)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는 걸까?

자녀들이 서로 싸우고서 야단을 맞으면 종종 손을 빌며 '잘못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엄마는 꼭 물어본다. 잘못한 게 뭐냐고. 엄마가 알고 싶은 것은 정말 '잘못했다'는 건지, 나는 잘했는데 형이나 동생이 '잘 못했다'는 건지, 아니면 그저 지금 당장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잘못했다'는 건지, 그 진심이 알고 싶은 거다. 어쩌면 지금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이 그런 것은 아닐까? 도대체 잘못한 게 뭐냐고. 우리 말의 '잘못하다'와 '잘 못하다'는 비슷해 보이나 띄어쓰기 하나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잘못하다'는 '어떤 일을 그릇되게 하다, 옳지 못한 일을 하다'를 의미한다. '잘 못하다'는 '잘하지 못하다'의 줄임말로서, 하기는 하는데 능력 부족으로 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잘못 먹다'는 먹어서 안 되는 것을 먹은 것이지만, '잘 못먹다'는 먹어야 될 것을 먹지 못했을 때 쓰는 말이다. 혹시 4년마다 한 번씩 사죄 퍼포먼스를 하는 정치인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저희가 (선거를) 잘 못했습니다,” 혹은 “(나는 잘 했는데 저 사람이) 잘 못했습니다”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짓고선 종종 잘못했다고 회개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들키지 않게 '잘 못했다'는 건지, 아니면 나는 잘했는데 저 사람 때문에 '잘 못했다'는 건지,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잘못했다'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럴 때 어쩌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묻고 싶으신 건 아닐까? 도대체 잘못한 게 뭐냐고.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하나님께서 물어보셨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어보셨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불행히도 아담은 아내 탓, 뱀 탓을 했고,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잘못했다고 말해놓고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정치인들을 보며 아담과 가인이 추억되는 것은 나 혼자만일까? 어쩌면 우리도 '잘못했다'고 말하고선 속으로는 상대방이 '잘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잘못한 일을 상대방이 잘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김윤태 목사 (신성교회 담임 / 대전신대 선교학)
김윤태 목사 (신성교회 담임 / 대전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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