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논쟁
낙태죄 폐지 논쟁
  • 김승호 교수
  • 승인 2018.06.14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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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처벌조항을 둘러싼 헌법소원사건의 공개변론이 있었다. 여기서 여성가족부가 낙태죄 폐지 의견을 낸 것과는 달리 법무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낙태죄 합헌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자 여성계를 중심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법무부장관의 경질을 요구하며 항의했고, 지난 3일 '비웨이브(BWAVE)'라는 여성 모임이 보신각 앞에서 ‘임신중단(낙태) 합법화’ 촉구집회를 열었다. 사실 낙태죄 폐지와 관련한 헌법소원 심판은 이미 2012년 8월에 있었고,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4대4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낙태죄 폐지론자들이 헌법소원을 함으로 이 이슈에 불이 붙게 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정권이 들어섰고, 낙태죄 폐지가 세계적인 추세이며, 그동안 여성의 인권이 무시되어 온 점 등은 낙태죄 폐지론자들이 헌법소원을 하게 된 배경이 되고 있다. 물론 이런 배경의 근저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보다는 완전한 인간인 산모의 자기결정권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공임신중절은 오랫동안 뜨거운 논쟁이 되어왔다. 그만큼 양쪽 주장이 팽팽하다는 얘기다. 점점 더 개인의 자율성이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는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한다면 상대적 약자인 태아의 생명권은 누가 지켜 줄 것인가?


  만일 낙태죄를 폐지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낙태율 1위인 우리나라에서 낙태율이 더 급증할 것이고,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훼손이 가속화될 것이며, 생명경시풍조가 확산되는 등 더 큰 사회적 문제가 초래될 것이다. 특히 현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본인이나 배우자가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 다섯 경우다. 개신교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자보건법 역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지만, 이러한 예외적인 허용은 이미 법적으로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과잉제한 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낙태죄 폐지론자들의 주장 가운데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남아선호사상을 포함하여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장애인에 대한 차별 등은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반생명적이고 전근대적인 문화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혹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런 잘못된 문화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암묵적인 동조를 해 오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인간을 차별하는 잘못된 문화에 대한 개선의 노력 없이 단지 태아의 생명권만을 주장한다면 한국교회는 낙태죄 폐지 논쟁에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양육비 지원을 받는 미혼모는 4.7%에 불과하다. 경제적 이슈 또한 낙태를 선택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한국교회는 출산과 관련된 성교육에서부터 미혼모에 의해 출산한 아이나 장애를 가진 아이의 출산과 양육에 어려움이 없는 사회문화적 경제적 환경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러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가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윤리학자 알렌 버헤이(Allen Verhey)는 승리주의적 사고를 현대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한국교회의 승리주의는 직분과 직분 사이의 차별, 사회적 신분과 능력에 따른 차별,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차별, 즉 교회에서도 ‘성공’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속하는 사람만이 대우받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승리주의에 젖어 있는 한, 한국교회는 낙태죄 폐지 이슈 뿐 아니라 생명윤리와 관련된 어떤 이슈에서도 사회적 지지를 획득하기 힘들다.

 

 

김승호 교수영남대, 장신대신대원영국 버밍엄대, 켄트대(Ph.D)현재 영남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목회윤리연구소장
김승호 교수영남대, 장신대신대원영국 버밍엄대, 켄트대(Ph.D)현재 영남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목회윤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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