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과 구시대의 종언
시대정신과 구시대의 종언
  • 문상현 교수
  • 승인 2018.06.2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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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수 야당에 대한 국민의 탄핵 혹은 응징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야당은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했다. 보수 야당 입장에서는 20대 총선과 대선에 이은 세 번째 선거 패배다. 사실 선거 결과는 선거 전 여론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그리 놀랍지 않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 조사 결과를 여론 조작과 가짜 뉴스라고 비난한 여당 정치인들과 달리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언론의 선거 결과 분석에 따르면, 70% 고공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의 인기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여당 압승의 일등 공신이라고 한다. 여기에 보수 야당의 시대착오적 안보관과 잇따른 막말 퍼레이드도 압도적 패배에 한몫했다. ‘샤이보수’가 숨어있다고 큰 소리 치던 야당은 선거 후 요즘말로 ‘멘탈 붕괴’를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선거 전 패기는 어디가고 무릎 꿇고 잘못했다며 ‘반성 퍼포먼스’를 하고 있고, 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다. 허겁지겁 ‘혁신’의 방도를 찾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선거결과에 대한 언론 분석들이 사실과 합리적 추론에 근거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결과를 미시적 차원이 아닌 좀 더 큰 맥락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시대정신(Zeitgeist)의 변화를 읽지 못한 정치세력의 몰락이자 구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첫 번째 시대정신은 평화주의다. 평화주의는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고 대결과 반목이 아닌 상호 공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이다. 과거 선거 때마다 ‘북풍’의 덕을 보고 반공이데올로기와 호전적 안보관을 제 1의 가치로 삼아 온 보수야당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두 번째 시대정신은 반지역주의다. 정치공학에 근거한 지역주의는 지역 간 차별을 조장해 왔다. 수도권과 지방, 영남과 호남, 강남과 강북 등 지역 간 갈등과 차별 조장은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고, 글로벌 시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경험한 지역주의의 균열은 한국정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세 번째 시대정신은 반차별주의다. 한국사회에 만연해 온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더 이상 정서적으로 용납되지 않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상징되는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나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장 중요한 공동체적 가치가 되고 있다. 청년정치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오고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는 보수야당이 젊은 층의 표심을 얻기 힘든 이유다. 마지막 시대정신은 공정에 대한 열망이다. 오랫동안 보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하다는 말이 회자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 보수는 정치와 경제 권력을 독점해 왔고 이들의 반칙과 특권은 당연시되어 왔다. 하지만 한진그룹을 비롯한 재벌의 갑질과 기업 채용비리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더 이상 특권적 불공정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적 선언이다. 이처럼 적대와 대립, 지역주의, 차별과 불공정이 만연했던 한국사회에 평화주의, 반지역주의, 반차별주의와 공정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부상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구시대적 가치에 근거한 정치세력은 더 이상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동시에 보수야당의 혁신이 어떠한 목표와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도 분명히 제시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당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보수정당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기독교 원칙과 달리 한국 교회는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는 불교나 천주교 역시 다르지 않다. 그리고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가 보수정치집단의 가장 큰 지지 세력이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20대 총선과 대선,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대하는 한국교회의 입장은 곤혹스러움이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소위 ‘태극기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기독교인이 대다수를 차지함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한국 교회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왜곡시키는지 교인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교회가 그리고 개별 목회자나 교인이 보수 혹은 진보의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정당의 퇴행적 행태를 지지하거나 구시대적 가치를 함께 붙드는 잘못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문상현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한국교회언론연구소 연구위원
문상현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한국교회언론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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