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식과 한국사회
공감의식과 한국사회
  • 문상현 교수
  • 승인 2019.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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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 사건인 5.18 민주화운동 제 39주년 기념일이었다. 강산이 네 번쯤 변할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아픔과 상처로 고통 받고 있다. 아직도 실체적 진실은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희생자의 원혼과 유가족의 상처 역시 여전하다. 5.18민주화운동의 가해자 전두환의 재판이 광주에서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일말의 죄의식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일부 극우인사와 보수야당 의원들이 명백히 밝혀진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과 희생자들에 대해 모욕적 발언을 거듭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키우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존중하고 부채의식마저 가져야 할 제 1야당의 무책임한 행동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우보수단체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성지인 전남대와 금남로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집회를 여는 일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온라인 극우사이트에는 5.18민주화운동과 전라도민을 조롱하는 혐오발언이 넘쳐난다. 왜곡발언과 망언을 한 자당 정치인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던 제 1야당 대표는 기념식 참석을 반대하는 시위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극단적 진영논리가 판치고 정치는 정쟁의 늪에 빠져 대립과 갈등만을 조장하는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명확한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정치적 이익을 위한 의혹제기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에서도 경험했듯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망언과 혐오발언이 반복되는 근본적 이유는 한국사회에 공감의식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자 강한 군사력과 한류로 상징되는 문화적 힘까지 갖춘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대정신인 공감능력이 부재한 국가와 국민에게 펼쳐질 미래가 순탄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사회사상가 제레미 리프킨은 2009년 출간한 <공감의 시대>에서 인류의 발전은 공감(empathy)의 확대과정이라 주장하였다. 물질(경제)이나 관념을 역사발전의 동인이라 설명하는 많은 사상가들과 달리 그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능력의 중심에 서로에 대한 공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역사 속에서 흔들림 없이 공감의식을 확장해 왔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적 차원에서 공감을 보편화시켰다. 여성, 소수인종, 소수민족, 장애인 등 불평등을 겪은 사회적 약자들은 물론이고 동물에까지 공감이 확대되고 제도화되었다. 그가 말한 생물권적 인식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타자화’(othering)와 혐오(hate)를 몰아내고 공감을 인간사회 전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한국사회 역시 큰 흐름에서 동일한 과정을 지나왔다.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사회민주화와 인권 확대는 공감의식을 확장시키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5.18민주화운동은 이 과정에서 다른 어떤 사건에도 비할 수 없는 중요한 모멘텀이었다. 한국사회 전체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비극적 사건에 부채의식을 느끼고 상처와 아픔을 공유하며 한 뜻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해 온 것은 공감의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최근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망언은 한국사회의 공감의식이 위기에 처했다는 불길한 신호이자 역사적 퇴행을 알리는 징후로 느껴진다.

정신과의사 정혜신은 공감이란 “한 존재가 또 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 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의 어울림”이라고 정의한다. 공감은 상처와 슬픔을 함께 느끼는 과정인 동시에 타인의 기쁨도 나누는 과정이다. 또한 정서적 차원 뿐 아니라 인지적 차원이 공존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감이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적극적으로 훈련하고 배워야 하는 것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나친 물욕을 추구하고 경쟁지상주의 사고에 함몰되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값싼 동정이나 성공한 사람이나 하는 자선행위처럼 여겨지는 한 우리 사회의 공감의식은 퇴행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에서도 직접적으로 공감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믿는 자에게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하고 있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사랑과 긍휼은 공감의 다른 표현이며,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은 역지사지를 통한 공감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기독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 역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강조한다.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을 비롯한 종교인이라 한다. 날이 갈수록 공감의식이 사라지는 한국사회에 대해 교회는 책임이 없는 걸까?

 

문상현 교수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한국교회언론연구소 연구위원)
문상현 교수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한국교회언론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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