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흑백 기억매체
살아있는 흑백 기억매체
  • 김윤태 목사
  • 승인 2019.05.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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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남한 사람 5천만 명 중 2천만 명이 북한사람 2천만 명을 안고 죽어 살아남은 남한 사람 3천만 명이 아기를 낳으면 현재 수준으로 복원된다”는 막말을 해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아무리 웃자고 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색해지는 설교다. 2019년 5월 20일 방송된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에서는 “목사님은 유세 중”이라는 제목으로 색깔론과 온갖 정치발언으로 도배된 설교를 여과 없이 방송하면서 교회인지 정당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라는 논평을 내기도 하였다. 과연 이렇게 설교해도 되는 걸까? 과연 이 시대 청중들은 이런 설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스멜서(Neil Smelser)가 주장한 것처럼 근대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구조적인 분화(Structural Differentiation)”다. 서구 유럽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종교와 과학, 정치가 서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왕국 이야기를 통해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했고, 마키아벨리는 심지어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류 역사는 정치와 종교, 종교와 과학이 서로 분리되며 각각 근대화 과정을 걸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정치는 종교를, 종교는 정치를 서로 갈망해 왔다. 때론 존 그레이(John Gray)의 표현처럼 “추악한 동맹”을 맺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장 보댕(Jean Bodin)은 소수 지배층이 다수의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종교와 정치는 상호보완적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한다. 실제로 한국 개신교는 해방 이후 독재자들과의 지배 연대를 통해 독재자들은 정치적 정당성을, 개신교는 양적 성장의 도움을 서로 주고 받은 적이 있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미국은 영원한 우방이요, 북한은 사탄이라고 말하면 다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들에게 반공은 또 하나의 신앙이었고, 국가보안법은 또 다른 성경이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점점 이런 방식의 메시지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데 있다.

1980년, 컬러 TV 방송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흑백으로 보던 세상을 컬러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부터는 멀티미디어 시대가, 2000년대부터는 Social Media 시대가 열렸다. 일 대 다수(one to many)에서 다수 대 다수(many to many)로, 일방(one-way)에서 쌍방향(two-way)으로, 발신자 중심에서 수신자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변화되면서, 한국 사회 내에는 점점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견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소련의 해체로 촉발된 공산주의의 몰락과 미국의 전방위적인 통상 압력은 영원한 우방 미국에 대한 불신과 함께 다수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소수 지배자들의 이분법적 반공담론 마저 그 설득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개신교 강단에서 아직도 70년대 반공웅변대회에서나 듣던 구호들이 설교라는 이름으로 난무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이진구는 “한국 개신교의 타자인식”이라는 책에서 그 동안 한국 개신교는 타자에 대해 ‘진짜-가짜, 참-거짓, 나-너’라는 지극히 이분법적인 프레임을 적용해서 인식해 왔음을 비판한 바 있다. 다원화된 근대 사회에서 내가 없는 타자, 타자가 없는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흑백 TV가 아니라 컬러 TV 세상에 살고 있다.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색도 있고, 빨주노초파남 보라색도 있다. 컬러 TV 세상에 살고 있는 청중들에게 여전히 흑백 TV 세상만을 보여주겠다고 한다면 그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헨리 나우웬은 목회자의 역할을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는 사람(the living reminder)”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그의 책이 처음 소개될 때 the living reminder를 “살아있는 기억매체”로 번역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이 표현이 좀 더 헨리 나우웬의 의도를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청중들에게 예수님이 생각나도록 하는 매체여야 한다. 특정 정치인,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예수님을 상기시켜주는 살아있는 기억매체, 예수님의 말씀, 삶, 가치관을 보여주는 이 시대의 컬러 TV요, 유튜브가 바로 목회자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살아있는 흑백 기억매체”가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나와 너, 남과 북, 동과 서, 동지와 원수, 미국과 북한으로 나뉘지 않는다. 북한은 우리가 죽여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서 살려 내어야 할 선교대상이다. 컬러 시대에 흑백 메시지를 전하지 않도록, 예수를 기억나게 해야 할 자들이 박정희를 기억나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목회자는 늘 조심해야 한다.

김윤태 목사 (대전신대 선교학/신성교회 담임)
김윤태 목사
(대전신대 선교학/신성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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