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목회] 손인웅 원로목사(덕수교회) , “삼애일치(三愛一致) 오색목회(五色牧會)”
[은퇴목회] 손인웅 원로목사(덕수교회) , “삼애일치(三愛一致) 오색목회(五色牧會)”
  • 이신성 기자
  • 승인 2021.03.16 0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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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목회는 마리아 해리스의 5가지 교회 정의에 기반
평생 연합일치운동, 갱신운동, 디아코니아 사역에 전념
교회 전체를 보는 눈,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눈으로 봐야
에반젤리칼 에큐메니스트, 그런 목회자로 기억되기를

은퇴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이미 은퇴하신 목회자의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은퇴 모습을 제시하려 1부 손인웅 목사의 목회 스토리, 2부 후배 목사들에게 바라는 미래목회와 미리 알려주는 은퇴 준비, 그리고 목회유산 상속으로 구성했다. 대담자 박진석 상임이사, 정리 이신성 기자, 사진 최상현 기자

대담하는 손인웅 목사와 박진석 목사. 최상현 기자
대담하는 손인웅 목사와 박진석 목사. 최상현 기자

1부 목회 스토리

Q. 신학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A. 극적인 일이 많았다. 신학을 하게 된 계기는 여러 차례 경험에서 생명의 길을 찾게 된 것이다. 나는 60학번으로 4·19나던 해였는데, 그 이후 1964년도에 신대원 들어갔다. 믿지 않은 집안에서 어릴 적부터 교회다니기 시작했는데, 경북대 사범대 3학년 때 시련, 죽음을 경험해서 그때 신학을 하기로 서원했다. 나는 죽었고 예수님이 살려주셨으니 예수님 위해서 산다고 고백했다. 그 후로 교사가 되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어서 용서를 빌고 신학교 간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 야단하셨지만 허락하시면서 목사가 되려면 훌륭한 목사가 되라고 하시며 소 팔아서 신학교 등록금을 대주셨다. 여러 신학교에서 오라고 했는데 교단 신학교인 장신대로 갔다. 그때 출석 교회가 박맹술 목사님의 대봉교회였기 때문이다. 경북대 기독센터에서 매일 새벽기도도 하며 학생 때부터 연합운동을 했다. KSCF 멤버로 CCC와 통합 회장을 하면서 연합과 일치 운동에 앞장섰다. 1959년부터 장로교 분쟁으로 통합, 합동 분리될 때의 경험으로 어떻게 해서든 교회는 하나되고 평화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장신대에서의 신앙갱신운동, 새시대 선교연구회, 한목협까지 목회자 운동을 계속해서 한 것이다. 일치, 갱신, 디아코니아 모두 그때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신학을 하면서도 그런 운동을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가지고 바로 운동으로 연결해서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의 기치를 들고 꾸준히 해온 거다. 신앙한다, 신학한다고만 하지 말고 행동하고 일치시키는 운동을 해왔다.

대담하는 손인웅 목사. 최상현 기자
대담하는 손인웅 목사. 최상현 기자

Q. 신학교 재학 시절, 졸업 후 어느 교회에서 사역을 했나?

A. 기독학생운동할 때, 전국 KSCF 수련회 때 덕수교회 대학부 회장단이 KSCF 임원들이었고, 친구들이었다. 서울에 오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 덕수교회하고 인연이 거기서 생겼다. 군 제대 후 복학할 때 교육전도사를 덕수교회에서 시작했고, 전임전도사, 강도사 이후 지금까지 덕수교회에서 50년 사역하고 있다. 다른 교회에서 사역 경험이 거의 없다. 다만 군에 있을 때 밀양에 있는 지역에 있는 군인교회, 제대하고 쉴 때 청도 신읍교회에 출석한 경험만 있다.

Q. 덕수교회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A. 지금 조선일보사 자리가 원래 덕수교회 자리다. 거기 있을 때 최거덕 목사님 모시고 부목사로 목회하다가 담임되어서 8년 준비해서 성북동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이것을 개인적으로 출애굽이라고 명명했다. 예배당 짓고 교육관 짓고, 복지센터 짓고 만들어낸 것이다.

최거덕 목사님은 서울 토박이 목사님이었다.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이었던 증조할아버지의 증손주였다. 6·25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목사들이 내려와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 전에는 서울 목사들의 새문안, 안동, 연동, 묘동, 남대문 교회가 중심이었다. 나중에 피난민들이 오면서 영락, 소망교회가 커졌다. 서울토박이 교회가 약해지고 신흥교회가 성장하고 60년대 이후 개발붐으로 강남으로 이전해가고 강북은 비었다. 강남으로 가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역으로 강북으로 왔다.

덕수교회는 토박이 서울 선비 목회의 뿌리가 있다. 2대 목사로서 최거덕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어서 열심히 섬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서울의 토박이 양반 문화는 새로운 기독교 문화와 충돌이 생기니 갈아엎어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창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임목사가 된 이후 내 목회를 하긴 해야 하는데, 그때 선배 목사님의 목회를 한 번에 뒤집으면 안된다. 전통을 이어나가는 데 선비들의 목회신학의 장점은 살려야 한다. 올곧은 정신, 애국적인 면은 살리려 했다. 그러면서 우리 한국의 기독교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해나가는 원동력이 기독교 초기 신앙이라고 보고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 찾고 살려서 확장시키려는 사명이 있었다. 물론 그때 한국 개신교가 너무 번영신학에 뒤덮여 있었지만. 최 목사님의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역사, 그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였다.

광화문에서 이쪽으로 옮길 때 출애굽한다고 교인들에게 말했다. 기존의 일본인을 위한 교회당 헐고 이쪽에서 새로운 가나안 꿈을 이룬다 설명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것을 계획해서 하나씩 쭉 이루어왔다. 비교적 그림 그린대로 잘 왔다. 마을목회 비전이 있었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어려운 계층과 제일가는 부자들이 마주보는 동네였다. 경제적 격차가 줄어들어 잘 사는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돕고 같이 잘 사는 마을 만들자고 마을목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갈등이 있었다. 부자 교인들하고 어려운 교인들하고 만남이 불가능했지만, 교회, 교인들이 고맙게도 스스로 낮추고 어려운 사람들 돕고 높여서 평화를 이루게 됐다. 한 지역 일이지만, 한국교회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Q. 오색목회가 덕수교회 목회의 특색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A. 오색(五色)이라는 것은 한국인의 전통색깔이다. 오색이 독립적이지만, 서로 만나서 하모니를 이루고 한국문화를 형성한 색깔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색깔과 문화의 칼라를 보면 오색이 서로 만나고 다시 강한 색이 생겨서 한국문화를 찬란하게 빛내는 거다.

오색 목회는 마리아 해리스가 기독교교육학적으로 교회를 5가지로 정의한 것에 기반했다. 레이투르기아,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케뤼그마, 디다케. 그 사역을 5색이라고 붙여서 목회를 10년 단위로 디자인했는데 10년을 2년씩 나누어서 한 사역을 2년씩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2년 동안은 예배 강화, 예배 갱신에 힘썼다. 이것이 우선이었다. 2년 정도 강화하여 궤도 오르면 그대로 진행해 나가고, 그 다음으로 디다케, 교육 개혁을 했다. 기독교 교육연구원에 프로젝트를 줘서 연구원이 나와서 1년 동안 각 부서마다 리포트하고 기독교연구원에서 받아서 분석, 평가해서 커리큘럼 만들었다. 이것이 ‘평생교육커리큘럼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으로 나왔다. 디아코니아는 본래 열심히 했지만, 이 지역에서 완전히 교회가 섬기는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디아코니아 주도 하에 지역사회 커버했다. 길상사, 천주교 성당과 같이 지역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종교계가 힘을 합쳐 연합바자회를 열고 각 종단 성도들이 부스들을 만들어 축제처럼 진행했다. 덕수교회는 하루에 2천만원 수익을 내고 학생들 장학금으로 지원했다. 저절로 지역화합, 종교간 화합이 이루어졌고 동네가 변화됐다. 오색목회는 균형목회다. 전체가 하나의 무지개빛으로, 한국교회 전통적인 색깔로 하나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목회를 해왔다.

Q. 목회를 돌이켜볼 때 아쉬운 점이 있다면?

A. 나의 전체 사역에서 한 가지 미완성한 것은 한국교회의 연합일치운동이다. NCCK와 한기총이 하나가 되려다가 마지막에 깨졌다. 교회일치운동 열심히 하다가 낙심해서 옥한흠 목사와 껴안고 울었다. 통합을 위한 10단계 중 4단계가 진행됐는데 NCCK가 위기 의식을 느껴 숨고르자고 해서 중지했다가 지금까지 진행이 안되고 있다. 이것은 일치를 방해한 분명한 사탄의 시험이었다. 그러나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성령께서는 계속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주께서 가시는 방향으로 계속 일치를 위해서 달려가야 할 것이다.

기자들과 대화하는 손인웅 목사. 이신성 기자
기자들과 대화하는 손인웅 목사. 이신성 기자

Q. 어떤 목사로 기억되기를 원하나?

A. 나는 복음적인(에반젤리칼) 에큐메니스트로, 한국교회 연합일치를 위해 살아온 목회자요 신학자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한국교회를 위해서 학생 때부터 분열과 다툼을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연합일치운동을 평생했고, 한목협에서 하듯 갱신과 디아코니아 운동 이 세 가지에 집중했다. 지금 내가 볼 때는 한국 개신교는 연합일치도 안되고, 갱신운동도 안되고 있다. 디아코니아 사역은 평생하는 일이지만, 옛날에 비하면 인식도 달라지고 좋아졌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서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교회 성장에 급급하고, 교회 내 헌신이 부족하다. 교회들이 디아코니아 사역을 좀더 늘려야 한다. 큰교회와 작은교회 편차가 너무 심하다. 전체 교회 건강성 보면 상당히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다. 지금 변화를 시도해야 하고, 또 좀더 적극적으로 개혁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교회가 살지 않겠나 싶다.

Q.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80년대 맥코믹신학교 목회학 박사 학위 공부하면서 눈이 열렸다. 교회가 뭐냐? 목회가 뭐냐? 교회 전체를 보는 눈,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자기가 하는 사역이 정말 내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명을 감당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교회들이 그렇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에 매달려 있고, 어느것 하나 잘하는 것이 목회 잘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개교회가 아무리 잘 하고 잘 된다 하더라도 전체에 해악을 끼치면 안된다. 전체 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 못가지면 목회가 안된다. 신학생들, 목회자들이 신학공부하면서 전체, 세계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위해 어떻게 기여하고 공헌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신학자는 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그 틀을 깨지 못한다. 그걸 극복해야 한다. 신학교도 커리큘럼 개편해야 한다. 자기의 삶과 신학이 연결되면서 생활 패턴이 달라지고 우리 신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 가르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삶이 되어야 한다. 은준관 박사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할 때 관여하였지만 그게 굉장히 어렵다.

Q. 목사님의 목회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A. 삼애일치(三愛一致) 신학에 근거하는 오색목회(五色牧會)!

삼애일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리고 자연 사랑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인간들이 생태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여 공격받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 이 세 가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사랑하면서 사람 죽이고, 사람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연 죽이면 상극이 되어 다 죽는 것이다. 이것이 내 신학, 목회다. 다시 말하지만 오색 목회는 균형 목회다. 예배만 강조해선 안되고, 선교만, 교육만 강조해도 안된다. 조화와 균형으로 서로 살리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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