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터 머물다 간 아이들, 하나님 찾으며 살아가길”
“디딤터 머물다 간 아이들, 하나님 찾으며 살아가길”
  • 김성해 기자
  • 승인 2020.05.2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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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낳은 센터의 여학생들
자신의 친자녀와 동등하게 생각
기독교의 가치로 아이들을 양육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센터에서 머물다 퇴소한 아이들도, 센터에 현재 있는 아이들 모두가 나에게는 열 손가락과 같은 존재다. 때문에 아이들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자라는 모습만 봐도 뿌듯하고, 센터를 통해 치유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부산 서구 아미동에 자리한 웨슬리마을 신나는 디딤터 센터장 조미숙 목사는 본지와의 만남에서 센터의 아이들이 자신의 열 손가락이라고 고백했다.

조 목사는 최근 가출한 아이들로 인해 분주한 나날을 보냈지만 이런 경험 또한 아이들이 앞으로 실패하지 않을 내면의 힘을 더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시설에서 상담교사로, 시설장으로 10년 훌쩍 넘게 사역해온 동안 많은 여학생들을 품은 조 목사는 젊은 시절부터 ‘여성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싶다’는 오랜 비전을 품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비전을 25명의 천진난만한 여학생들을 돌보는 센터에서 매일 매일 실현하고 있다.

센터 교사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체험활동 중인 웨슬리마을 신나는디딤터 여학생들. 센터 제공.
센터 교사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체험활동 중인 웨슬리마을 신나는디딤터 여학생들. 센터 제공.

기독교의 가치로 양육
웨슬리마을 신나는 디딤터는 1954년 6.25 한국전쟁 이후 성매매를 업종으로 삼은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시설로, 센터의 첫 명칭은 ‘부산국립갱생원’이었다. 여성들이 건강한 직업을 갖고 다시는 성매매에 유입되지 않도록 국가에서 설립했으나, 공무원들이 운영하던 시설이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한계점이 발생하게 됐다.

이후 국가는 갱생원을 민간시설로 이양하기로 결정했으며,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에서 1958년에 인수했다. 이후 미국감리회 선교부와 한국감리회 교단의 도움을 받아 건물을 증축하고 프로그램을 개설하면서 ‘부산자매원’으로, ‘부산부녀복지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들도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후 성매매 피해자 지원 시설이 연령에 따라 변경됨에 따라 청소년 시설로 전환됐고, 지금의 ‘웨슬리마을 신나는 디딤터’로 명칭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센터장으로 부임한 지 올해로 8년째인 조미숙 목사는 아이들을 기독교 사랑으로 품고 가르치고 있다. 조 목사는 “센터 내 아이들도 그렇고 요즘 청소년들에게 각광받는 직종은 화려한 조명을 받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선수들이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가 되고 싶다고 답하더라”며 “화려함만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은 남을 위해 돕고 헌신할 때 진짜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기독교 신앙 뿐”이라고 언급했다.

사회복지 시설에서 종교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조 목사는 자신의 신분이 목사인 만큼, 종교행위보다는 예수그리스도의 가치, 기독교의 참 가치를 교육한다. 그는 자신이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인 신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밝힌다.

조미숙 목사는 “기독교의 참 가치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갑자기 신앙이 엄청 좋아지거나 하는 걸 바라진 않는다. 물론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먼 훗날, 어느 날 아이들이 ‘내가 잘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을 할 때 이곳에서의 생활과 배움이 떠오르길 바라고, 또 아이들이 지역 내 다수의 교회를 직접 찾아 도움을 구할 수 있을 용기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야외 수업을 받고 있는 웨슬리마을 신나는디딤터 여학생들. 센터 제공.
야외 수업을 받고 있는 웨슬리마을 신나는디딤터 여학생들. 센터 제공.

마음으로 낳은 자녀들
조 목사에게 센터 사역을 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에 대해 질문하자, ‘아이들이 좋은 쪽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라고 꼽았다.

센터를 찾는 여학생들 중 다수는 마음속의 상처 혹은 정서적으로 트라우마가 있다. 상태가 심각할 경우 자신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행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아이들의 가정은 보편적으로 건강한 형태이지 못하다보니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이 학교 밖을 돌아다니고 가출을 하면서 일탈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

조 목사는 “청소년 아이들은 가정이 편안하면 애들이 집이 아닌 밖에서 맴돌 이유가 없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외롭고 불안한 등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밖에서 머물다가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센터를 통해 자해를 멈추고 정서적 트라우마가 치유되고 달라지는 모습들을 보여주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더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아이들이 영상으로 제작한 편지를 보며 감동을 받았다는 조미숙 목사는 자신의 자녀와 센터의 아이들을 동등하게 여긴다. 때문에 처음에는 조 목사의 친자녀들이 질투를 했다고 한다.

그는 “마흔 살과 마흔 네 살에 두 자녀를 낳았다. 때문에 그 소중함이 엄청난데, 그만큼 센터의 아이들도 나에게는 동일하게 소중하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았는지 막내딸이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며 “딸에게 ‘열 달 품고 낳은 너를 몹시 소중히 여기는 만큼 이 아이들도 너만큼 사랑하는 아이들’이라고 이해를 시켰다. 다행히 지금은 딸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있다”고 했다.

조 목사의 꿈은 정년이 되기까지 건강을 유지하면서 정년이 되도록 지금의 일을 지속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생활환경과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와 법을 세우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센터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청소년기의 불안하고 힘든 순간을 이기고 살아낸 것만큼 어디서든지 잘 살았으면 좋겠고,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어려움이 닥칠 때에도 복된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며 “그렇게 자랄 수 있도록 은퇴하는 순간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돕고 싶은 마음이 내 기도제목”이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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