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호]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102호]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09.24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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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듣고, 보고, 배웠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희한하고 별난 세상을 살고 있다."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은 가고 코스모스 한들거리고 알밤이 터지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이다. 잉크색처럼 청명한 코발트 빛 가을 하늘을 보면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거리는 멀게, 마음은 가까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함께는 안돼, 비대면 예배로!’ 이제까지 듣고, 보고, 배웠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희한하고 별난 세상을 살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pandemic)으로 세상이 확 뒤바뀐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듣도 보도 못한 세상사가 한둘이 아니다, 통일, 화합을 외쳐대면서 부추기는 내 편, 네 편, 편 가르기로 어느 사이에 사회가 이분법으로 쫙 갈라지니 서로가 불구대천, 앙숙이 되어가고 있다. 부모, 형제, 친구, 동창 아랑곳하지 않고 진영 논리에 갇히고 말았다. 정의, 평등, 공정의 잣대는 내 편인가 아닌가에 따라 양심, 체면, 거리낌도 없이 수시로 들쭉날쭉한 묘한 세상을 맞고 있다. 기관도 아닌 개인에 관하여 3억 원짜리 ‘OO백서’가 나오더니 5백만 원짜리 'OO흑서’도 나왔다. 야릇하게 바뀐 세상사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시무 7조’가 나오더니 ‘유창하나 혹세무민하고 편파에 갇혀 졸렬하고 억지스럽다’라는 ‘사돈 남 말 하는’ 반박문도 나왔다. ‘잘못했음’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되받아 한술 더 뜨는 ‘되치기 공세’와 ‘남의 탓’으로 돌리는 데에 이골이 난 뻔뻔함에 진저리가 난다. 기존의 통념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떳떳하게 낯 내놓고 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개판’이라고 한다. 야릇한 느낌이 드는 용어다. 이러함에도 많은 사람이 이 사태를 지지하고 있다는 세상사가 믿기지 않고 야속하기만 하다.

​하늘마저 변했나 보다.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길었다’는 장마가 끝났다고 하더니만 다시 태풍 8호 ‘바비’, 9호 ‘마이삭’, 10호 ‘하이선’이 연이어 비바람을 몰고 와 산천을 뒤흔들며 할퀴고 지나갔다. 많은 강수량과 일조량 부족으로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해 올가을의 풍작은 기대난망이라 한다. 이토록 엄청난 사람 사는 세상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흐르는 계절 따라 산 들꽃은 행여 시기를 놓칠세라 때맞춰 고운 꽃을 다투어 피운다. 이 난리 북새통의 세상 변화와 긴 장마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과 다름없이 계절의 순리 따라 피어난, 곱고 화사한 꽃 무리를 만난다.

이름 앞에 ‘개’자가 붙은 꽃이 참 많다. ‘변변치 못한 또는 야생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배고픈 시절 ‘식용 가능성과 맛’의 차이를 두고 ‘개’와 ‘참’을 구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소탈한 느낌도 드는 앞말이다. 개꽃, 개살구, 개망초, 개별꽃, 개쑥부쟁이, 개불알꽃, 개양귀비, 개상사화(수선화), 개나리…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이름 앞에 ‘개’자가 붙어도 곱기만 하다. 그런데 왜 사람 사는 세상사와 사람 앞에 ‘개’자가 붙으면 그리도 혐오스러울까?

올해 추석 명절 한가위는 어김없이 왔는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개 보름 쇠듯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도 조상 앞에 차례를 지내는 것도 어린 시절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다 할 수 없게 되었다. 추석을 말하면 누구나 추억이 있겠지만 어린 시절 필자의 집은 명절 분위기가 대단했다. 손이 크신 어머니가 음식을 많이 장만하여 가난한 시절 이웃들과 함께 먹기 위한 수단으로 그리 하셨다.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장보기부터 음식 장만하기까지 사나흘이 거뜬히 걸린다. 먹거리가 풍족한 추석이 정말 기다려지는 명절이었다. 온 식구는 물론이고 친척들까지 몰려와서 지지고, 볶고, 덖고, 데치고, 끓이고, 굽고, 찌고, 고고, 삶고, 튀기느라 집안은 맛있는 냄새로, 왁자한 웃음소리로, 여인네들의 수다로 밤새는 줄 모르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동육서, 좌포우혜, 조율이시, 홍동백서는 물론이거니와 메(밥)와 갱(국)을 평상시와 정반대 위치로 놓는 반서갱동, 강신을 염원하는 향 사르기 등 전통제례의식과 재료가 같아도 조리시간과 방법에 따라 음식 맛이 큰 차이가 난다. 추석에 배운 실력이다.

요즈음은 송편 빚는 집도, 추석빔 따로 사 입히는 집도 거의 없으니 명절의 추억들은 흑백 사진처럼 빛바래 간다. 연휴로 쉬는 것도 재택근무를 많이 해서 지겹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 친지들과 만나는 것도, 고향의 추억도 정취도 느낄 수 없으니 개 보름 쇠듯 할 수밖에 없는 추석이 되었다. 아쉽다.

 

이 창 연 장로

소망교회

전 CBS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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