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호] 치마와 바지와 팬티
[96호] 치마와 바지와 팬티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07.2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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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관객’이 누구냐의 문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셔

“정의롭고 선한” 권력의 허상은 벗겨질 만큼 벗겨져 더는 기대할 것도 놀랄 일도 없다. 나라의 큰일을 하는 거물급(도지사, 시장) 인사들이 팬티관리(절제)를 못해 세간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들의 성추행사건이 밝혀져 지금까지 쌓아왔던 인격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치마와 바지와 팬티는 함부로 벗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낳았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한 농부가 키우던 소를 소(牛)시장에 가서 팔았다. 소를 산 경매 꾼은 말라빠진 형편없는 소를 되팔기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감언이설로 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소를 팔았던 농부가 그 말에 현혹되어 팔 때 받았던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고 그 소를 되사갔다, 어리석은 농부보다 더 어리석은 고관들은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하고 세상의 손가락질 받았다. 어떤 바보들이 마을회관을 짓기로 하고,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목재로 쓸 나무들을 베었다. 필요한 만큼 나무를 베어낸 바보들은 통나무를 아래로 들어 날랐다. 이 과정에서 바보들이 통나무하나를 실수로 놓쳐버렸는데 통나무는 데굴데굴 굴러 마을까지 내려갔다. 힘 하나들이지 않았는데도 통나무는 저 혼자서 목표했던 지점까지 굴러간 것이다. 이걸 보고 바보들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통나무를 들고 내려가는 것보다 굴리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바보들은 그때까지 들고 내려왔던 모든 통나무들을 다시 산꼭대기로 들고 올라간 다음 다시 거기에서 통나무들을 굴러 내려 보냈다. 진짜 어리석은 바보들의 행진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조금은 꺼림칙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된다. 작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 잘못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기기도 한다. 이럴 때 생기는 마음의 갈등을 어떻게 정리할까? 그것은 인생에서 누구를 가장 신경 쓰며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나의 삶을 지켜보는 마음속의 ‘관객’이 누구냐의 문제다. 이 가상의 관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하지만, 크게 보면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과 예수님일 것이다. 중세유럽인의 사고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잘못을 숨길 수도 없다.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告解聖事)와 같은 방법으로 영혼을 씻어야 마음의 짐을 던다.

이런 믿음의 일상은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심리학 연구자에 의하면 사람은 도덕적 불안감이 증가하면 자신의 신체를 청결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도 증가한다고 했다. 서양의 세계관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큰 개편이 이루어졌다. 신(神)중심적 사고에서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중시하게 되었으며, 심판의 두려움이 아닌 내면의 기준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일상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한국 같은 유교적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늘 신이나 자신보다 타인이었다. 어떻게 행동하고 말할지 심지어 어떤 감정을 느낄지도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며 편집을 한다. 사회심리학자 故윤진 교수는 “한국인은 자신의 생각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우선시 한다” 고 축약했다. 중요한 점은, 삶의 축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행복감이 높고 낮은 사회를 가르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열자(列子, BC400년 경)는 본성을 색(色)과 식(食)으로 규정하고, 본성에 따르면 만물에 거역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에덴동산에서 나체로 살던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 사과를 따먹은 뒤부터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창세기에 있다. 치마와 팬티의 시초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기록에 남은 인간사에는 식욕과 육욕의 절제를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하지만 본성인 리비도(libido성본능)가 없어진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숨기고 있거나 변질된 모습으로 몸속에 침전시켜 몸서리를 치고 있는 정황이 아닐까 싶다. 선한 양의 탈을 쓰고도 피를 튀기는 ‘밥그릇 싸움’과 사랑을 빙자한 ‘불륜’이 끊이질 않고 있으니 말이다. 고상하고 영적인 본성보다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본능에 더 관심과 애착을 갖기 때문일까?

미투(#Me Too)고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인간 본성을 그대로 표현한 시가 눈에 띄어 옮겨 본다. 시인 임보(林步,본명 강홍철), 문정희(文貞姬)시인이 쓴 시다. ‘진달래가 벌에게 당했다고 하니 민들레도 나비에게 당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매화 산수유 복숭아 살구 자두들이 떼를 지어 “나두! 나두! 나두!”아우성을 쳤다. 드디어 벌과 나비들은 얼굴을 싸쥐고 은둔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해 과일나무들은 열매를 못 달고 세상은 깊은 흉년에 빠졌다’.<美鬪>-임보(林步, 1940~) ‘전략/···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후략/···’.<치마>-문정희(文貞姬, 1947~)‘ 전략/···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 한다.’<팬티>-임보(林步, 1940~).

세상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자들이 몇이나 될까? 하나님아버지! 참으로 딱합니다. 도지사, 시장이면 뭐합니까? 팬티관리도 못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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