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호] 죄 없는 광화문광장을 위로한다.
[104호] 죄 없는 광화문광장을 위로한다.
  •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10.29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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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은 죄가 없다. 그런데도 광우병시위, 세월 호 시위, 촛불시위, 태극기시위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광화문은 시위대로 몸살을 앓았다. 그래서 개천절 때도, 한글날 공휴일 때도 경찰관 1만 2천명과 철제펜스 1만 3천개, 500여대의 경찰 버스로 광화문 광장을 둘러쌓았다.

텅 빈 광화문광장의 전경이 쓸쓸하고 처연하다. 바람도 숨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화강암의 회색빛, 아스팔트의 검은빛이 전부다. 소리가 있어도 들리지 않는 곳, 사진을 들여다보려니 침묵만 깊게 느껴진다. ‘침묵의 광장’을 지나 ‘죽음의 광장’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페이스 북에는 광화문광장의 이 광경을 모질게 짓씹어 놓은 글이 수백 개 올라와 있다. 그중 “당신은 이제 안전하다 여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국민을 차단한 게 아니라, 당신 스스로 감옥 속에 들어간 것. 민의를 떠나 옹벽 뒤에 숨은 왕의 고독. 그게 제일 큰 형벌이라.”라는 글이 먼저 떠오른다. 광화문광장을 줄지어 막은 버스 행렬을 “방역의 벽”이라고 주장한 여권 인사들을 나치 독일의 괴벨스 같은 선동가라고 야유한 글도 있었다. 이런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 글귀와 광화문광장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예전 광화문 거리(광화문 부근에서 교보문고 앞까지)가 그리워졌다.

늠름하고 풍성한 은행나무가 길 가운데에 줄지어 서 있고, 길가 보도에는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넓은 잎새를 펄럭이던 그 거리. ​내 생각에, 그 광화문 거리의 절정은 지금 이맘때부터 시작되는 가을이었다. 특히 늦가을, 옷깃 세운 행인들 발걸음은 빨라지고, 은행잎 샛노랗게 물들어 한 잎 두 잎 낙엽 되어 쌓이고, 플라타너스 바짝 마른 잎이 차가워진 바람에 쓸려 보도 이 구석 저 구석을 뒹굴던 때, 이효석의 수필“낙엽을 태우면 커피 볶는 냄새가 난다” 구르몽의“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저절로 떠오르던 그때 그 시절. ​“샛노란 은행잎이 가엾이 진다해도 정말로 당신께선 철없이 울긴가요”라며 헤어지기 싫어하는 애인을 달래는 문정선의 ‘나의 노래’와 “마른 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네, 바람이 불어와 갈 길을 잃었나, 아무도 없는 길을 너만 외로이 가야만 하나”가을의 조락(凋落), 그 쓸쓸함을 또 다른 음계로 그려내는 임희숙의 ‘마른 잎’,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고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라···”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사랑’ 같은 노래도 예전 그 광화문 거리에서는 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2006년, 서울시장 오세훈은 광화문 거리를 2009년까지 광장으로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5월 말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8월 1일에 완공했다. 그 과정에서 서울 도심의 상징이었던 은행나무는 뽑혀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플라타너스는 잘려서 사라졌다. ​은행나무는 광화문 거리의 상징과도 같으니 그대로 뒀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컸으나 원래 일제가 조선의 주작대로(朱雀大路-궁궐남문 광화문에서 도성남문 숭례문까지)의 기를 죽이려고 심었던 나무였으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너무 자라서 광화문과 경복궁, 청와대, 북악산을 가리고 있다는 또 다른 여론에 덮였다. 광화문광장에서 녹색이 사라지고 화강암이 뿜어내는 잿빛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

오세훈의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가을 정취를 짙게 해주는 은행나무는 절대 옮겨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결코 낭만적인 반대가 아니었다. 그때는 ‘녹색 성장’을 내세우던 MB정부 때였다. 성장을 추구하되 자연은 지킨다는 논리, 자연친화적 성장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었는데, 반대자들은 MB와 같은 당 소속인 오세훈의 광장 조성 계획을 “광화문 거리에서 은행을 뽑아내고 플라타너스를 베어내는 녹색 없는 녹색 성장이 말이 되느냐”며 반대했다. 광장 조성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벌어진 광우병 시위는 별도라고 하더라도, 2014년의 세월호 침몰 진상 규명 시위와 두 해 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에서의 공격자들은 우익 진영의 작년 10월 3일과 올 8월 15일, 그리고 지난 개천절 시위에서는 방어자로 입장이 바뀌었다.

광장 조성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광장을 활용해 권력을 잡고, 광장을 조성한 사람들은 광장 밖으로 쫓겨난 모습! 어쨌거나 이런 편 나누기, 진영 싸움에 질린 필자는 광화문 거리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은행나무가 그리울 뿐이다. 나는 외친다. “거기에 은행나무들을 다시 갖다 놓으라고..........”

이창연 장로
이창연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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