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물꼬를 트려면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려면
  • 이근복 목사
  • 승인 2018.03.0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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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방남에 대한 논란이 거셉니다. 첨예한 대립은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반도기를 든 남북한 동시 입장, 남북 단일 하키팀 구성,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청와대 만찬 등에 대하여 심각한 이견이 노출되었습니다. 매스컴과 정치인들은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 시간 벌기용이다. 노림수가 있다. 평화공세다. 대화 구걸이다. 휘둘리고 있다. 평양 동계올림픽이다. 저들을 믿을 수 있느냐? 한미동맹이 깨진다. 북한의 이간책에 넘어갔다. 체제 선전용이다. 친북정권이다. 방북은 이적행위다. 북한 김영철을 사살하라......”

평창이 한반도 평화의 디딤돌을 놓았지만 논란이 불거지는 것을 보며 많은 의문과 과제가 떠올랐습니다.

한미 동맹이 북한에 휘돌릴 정도로 허약한가? 분단의식과 적대감인 폐쇄적인 입장으로 고착화된 대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가? 전쟁 중에도 적군과 포로를 교환하고 회담하는데, 북한의 실세를 만나지 않으면 누구와 대화를 한단 말인가? 김영철을 거부하면서 어떻게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군사적 안보 논리나 진영논리로 민족 통일 과제를 접근할 것인가? 최근의 북한의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비핵화는 목표이지만 출구일 뿐이지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면 어떻게 마주 앉을 기회를 얻을 수 있는가? 만나지도 않고 핵문제를 푼다는 것은 공멸하는 전쟁밖에 없지 않은가? 북미대화의 가교는 남한인데, 남북 관계의 개선 없이 북미 간의 대화가 가능할 수 있나? 좀 더 깊고 넓고 긴 안목에서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전망해야 하지 않을까? 대담하게 모험해야 무엇인가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우리가 과연 북한 정권을 객관적으로 보고 전향적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과감한 교류를 통하여 신뢰 형성 하지 않고서 어떻게 북한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까? 통일을 위한 인적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평화교육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닌가?

북한이 일정 수준으로 번영하도록 돕지 않고는 통일이 오히려 민족의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남한이 경제성장의 한계를 넘어서고 통일에 유리한 북한 경제를 세우기 위해서도 개성공단 같은 실제적인 접근이 더 필요하지 않은가? 통일을 통한 새로운 동력을 얻지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길이 있을까? 통일에 대한 논리와 정책을 도출하기 위한 연구에 매진하는 기관을 설립하고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국민들과 공유해야 하지 않나? 통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 위하여, 통일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가 아닐까? 통일연구와 정책 수립, 교육 실천이 유기적으로 순환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민족 통일을 실제적으로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도발과 제재’의 끊임없는 반복을 단호히 끊어내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되지 않을까? 약효가 약한 대북제재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북한이 번영하도록 획기적으로 지원한다면 북한 내부적으로 서서히 변화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통일에 대하여 부정적인 4대 강대국을 설득하기 위해 상호 이익이 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지 않나?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니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열어놓은 관계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과제를 고민하면서, 더 나아가 이제는 통일을 바라보는 기독교적 관점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ad fontes’(근원으로 돌아가자)라는 명제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과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으로 교회와 유럽 역사를 바꾸었으니, 우리도 반성적 성찰을 하고 근본적인 입장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과 기독교적 가치관인 사랑과 희생, 나눔과 섬김, 생명과 평화의 입장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정치나 이데올로기 관점이 아닌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한다면, 한반도 평화는 물론 동북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전쟁불사나 남한도 핵 무장을 하자는 것은 반 기독교적인 언사일 뿐입니다. 이 점에서 예수님의 관점을 갖는 것이 진정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9:35-38에 “가르치시며, 전하시며, 고치시니라”라는 예수님의 ‘3중(重) 사역’이 나옵니다. 귀한 사역의 동기는 “불쌍히 여기시어”라는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다’는 헬라어 단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로서 ‘애간장이 끊어지다’는 뜻입니다. 영어 성서에는 ‘compassion’이라고 되어 있는데 남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단어로는 ‘empathy’ 입니다. 이것은 남의 고통에 자신을 밀어 넣어 자신도 고통스러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대다수 민중들이 병, 가난, 소외, 착취, 억압으로 인하여 목자없는 양처럼 방황하여 기운이 빠져있고 죽음에 몰려있는 처지와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공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세 가지 사역으로 그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선 북한 주민들과 공감하면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에, 바로 여기서 평화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일상의 성화입니다. 지역사회와 직장, 가정에서 신앙의 가치인 용서와 화해를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북한에 대하여 실망하고, 전쟁의 공포심을 갖기도 하며, 통일을 기다리다 피곤해 하는 이웃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평화의 길을 설득하며, 북한 동포들을 긍휼히 여기며 하나되길 원하시는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간다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통하여 한민족의 새 길을 여실 것입니다.

 

 

이근복 목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 본 칼럼은 가스펠 투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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