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의 평화
  • 장윤재 교수
  • 승인 2018.03.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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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을 위한 교육 필요

분단 73주년, 종전 65주년을 맞는 올해 한반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분단과 대결의 낡은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차분히 평화에 대해 다시 묻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기독교의 평화운동은 이제 ‘국가건설’(state-building)보다 ‘국민형성’(nation-building)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과거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베를린시는 여전히 분단의 도시였다. 통일 후 독일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지만 옛 동독 주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설상가상으로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서독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결국 이와 같은 동독 출신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반영하여 한 때 ‘오스탈기’(Ostalgie, 동독 향수 바람) 현상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독일어로 오스탈기는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Ost)와 향수를 가리키는 ‘노스탈기’(Nostalgie)의 합성어다. 동독 시절, 사회주의 독재 치하에서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소박한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옛 일상생활을 그리워하는 풍조를 가리킨다. 그래서 과거 동독 시절의 옷차림과 기호식품과 노래 등이 다시 유행했었다. 통일은 되었지만 장벽은 극복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시’(동독인) 및 ‘베시’(서독인)를 갈라놓은 이질적인 정서와 극심한 빈부차이로 통일된 독일은 분단의 고통을 계속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오히려 당시 베를린 시민들은 ‘새로운 분단’ 아래서 신음했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이런 통일을 원치 않는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장벽을 허문다고 해서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우리는 독일에서 배웠다. 그래서 ‘국가건설’도 중요하지만 ‘국민형성’ 단계가 더욱 중요하며 우리는 지금부터 이를 더욱 성실히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평화통일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통일교육이 절실하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바른 평화통일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평화통일교육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평화적 통일’(peaceful reunification)에 관한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와 통일’(peace and reunification)에 관한 교육이다. 먼저 ‘평화적 통일’을 위한 교육이다. 평화적 통일이란 통일의 방법이 절대적으로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화적 통일의 반대는 무력통일이고 흡수통일이다. 둘 다 평화의 길이 아닌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평화로 가는 다른 길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은 평화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위한 평화통일교육은 통일의 방법이 반드시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나누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떤 여러 여론조사들에서는 대학생들 가운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빨리 통일을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결과보고가 있었다. 그들의 지친 마음 이해하지만 우리가 치를 대가는 ‘어떤 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 될 것이다. 또 한 번의 한국전쟁은 핵전쟁이 될 것이고 민족의 공멸이 될 것이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반전교육’이 중요하다. 과거 로마제국의 구호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였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구호는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가 되어야만 하다.

다음으로 우리의 평화통일교육은 ‘평화와 통일’에 관한 교육이어야 한다. 평화는 통일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통일보다 더 큰 것이다. 통일에 이르는 방법도 평화이지만, 통일의 목표도 평화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동아시아 전체의 항구적인 평화와 하나다. 이 근본원리가 확고히 정착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평화통일교육은 평화교육의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통일교육이어야 한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추진하는 평화교육은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은 그리스도의 평화”(요 14:27) 혹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빌 4:7)라는 성서의 평화를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 평화는 다름 아닌 샬롬(shalom)의 평화다. 샬롬의 평화는 정의에 기초한 평화입니다. 마틴 루터 킹 2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현존이다”(True peace does not mean the absence of conflict but the presence of justice). 평화, 평화를 부르짖는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게 아니다. 정의가 강같이 공의가 물같이 흐르게 할 때 찾아오는 게 평화다. 오늘날의 폭력은 사람들의 기본적 생존권을 부인하는 정치, 사회, 경제적 구조의 형태로 은폐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다운 노동, 충분한 음식, 기본적인 의료, 제대로 된 주택, 인간의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의 권리 등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이고 바로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정의의 요체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다. 그리고 그 정의 위에 세워진 평화가 바로 샬롬의 평화다.

지난 70여 년 이상 우리는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하에서 살았다. 그 사이 지속적으로 커진 남북한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일은 앞으로 긴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할 것이다. 분단이 70년을 넘었다면 진정한 내적 재통일을 의미하는 ‘국민형성’에는 그 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 일은 결코 한 세대가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야 할 과제다. 상처가 오래되면 상흔이 된다. 70여 년의 분단과 전쟁의 경험은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올해 우리는 이 민족의 상흔을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빌립보서 4장 7절에는 하나님의 평화라는 말이 나온다. 개역개정은 이 구절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번역한다. 공동번역은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로 번역한다. 새번역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로 번역한다. 어떤 것이든 모두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고, 초월하고, 능가하는 평화가 바로 하나님의 평화라는 뜻이다. 그 평화는 과연 어떤 평화일까? 평화를 향한 인간의 모든 이해와 상상력과 노력이 다 소진되어 가는 이 때,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그 하늘의 평화를 기도하고 앙망하고 상상하고 전심으로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평화를 만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라고 예수께서 축복하셨다. 이 온전하고 항구적인 하나님의 평화가 속히 한반도에 그리고 동아시아와 세계 모든 분쟁 지역 위에 임하시길 기도한다.

 

장윤재 교수

현,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교목실장, 대학교회 담임목사

전,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회장

전, 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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