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공동식사

늘 가족에게 밥상을 차려주어야 하는 주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준 밥’이리하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서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밥상을 차려주시는 분’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시편 23:1-2,5)

인간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밥을 먹는 행위는 단지 허기를 채우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서를 보면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맺어준다. 특히 성서에 나타나는 ‘공동식사’는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증명해주는 표시다. 성서에는 뚜렷하게 이 공동식사의 전통이 나타난다. 공동식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의 공동체를 만드시는 강력한 방법이다. 구약성서의 공동식사는 ‘화목제’와 연관돼 있다. 화목제란 동물의 지방부분만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가족 혹은 공동체의 공동식사를 위해 ‘함께 나누는’ 제사다. 이것의 목적은 친교다. 이 친교는 이중으로 경험되는데, 하나는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에 이루어지는 친교다. 그래서 화목제를 드리면서 공동식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깊은 계약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세가 바로 왕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고 요구했을 때에도, 그가 요구한 것은 정확히 이스라엘이 광야로 가서 하나님 앞에서 이 화목제를 드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출 5:3, 8:25-27) 압제자의 밥상 아래서 먹는 모멸적인 식사가 아니라 비록 허름한 식사여도 하나님 앞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살겠다는 의지였다.

이 공동식사의 전통이 신약성서로 이어진다. 신약성서에서도 공동의 식사는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생명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위대한 수단이다. 2천 년 전 유대사회는 정결법에 기초한 사회였다. ‘의인 대 죄인’이라는 철저한 이분법적 구분에 기초한 사회였다. 예수님 당시 이 법은 수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낙인찍었다. 예수님 시대의 ‘죄인’은 오늘 우리가 말하는 죄인과 다르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가난한 자’, ‘눈먼 자’, ‘절름발이’, ‘앉은뱅이’, ‘문둥이’, ‘창녀’, ‘세리’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들’이 바로 유대 정결법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찍혔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죄인’들과 먹고 마셨다. 온갖 비난과 협박에도 이들과 공동식사의 친교를 가지셨다. 이것은 당시 금기시되던 행동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시작되던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청년 몇 명이 겁도 없이 백인전용 식당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콜라를 주문했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가장 현대화되고 계몽됐다는 20세기 미국 사회에서도 ‘식탁의 규칙’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게 ‘인종적으로 분리된 식탁’은 다름 아닌 당대 미국사회 전체의 축소판이었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의 ‘열린 식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였다. 그 나라는 차별과 배제로 업신여김을 당하던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모두 평등하게 먹고 마시며 상처가 치유되고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은총의 나라였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였다. 그게 복음, 즉 기쁜 소식이었다.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다.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하나님이 어떤 화해의 기적을 예비하고 계신지 마음이 설렌다. 통일은 따지고 보면 ‘함께 잘 먹고 살자’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통일은 동서냉전이라는 바로 왕의 지배로부터 우리 민족이 출애굽하여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화목제를 드리며 함께 먹고 마시는 새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남과 북, 동과 서로 갈라져 서로 배제하고 업신여기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나라의 큰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거룩한 공동식사’의 은총이 우리 민족 위에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