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여가와 안식"
[기획 특집] "여가와 안식"
  • 옥성삼 박사(감신대 객원교수)
  • 승인 2021.05.31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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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목회연구원 예술신학 콜로키움
네번째

여가와 안식의 유래

여가를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로마와 히브리 두 가지 원류로 접근할 수 있다. 레저의 라틴어 어원으로는 옵티움(otium)과 리세레(licere)가 있다. 옵티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 또는 ‘남는 시간’으로 오늘날 ‘멍 때리기’와 유사하다. 리세레(licere)는 오늘날 자격증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라이센스(license)와 자유(liberty)의 어원으로 ‘일로부터 벗어나 허락된 자유로움’의 의미가 있다. 레저의 그리스어 유래가 되는 ‘scole’는 scola(학문)와 school(학교)의 어원으로 명상, 철학, 학문 등 창조적인 활동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회는 일하는 계급과 자유로운 유한계급이 구분된 계급사회였다. 고대사회는 일보다는 여가가 중요시되었기에 노동(일)이라 용어가 별도 있지 않고, 여가가 아닌 것으로 '일(a-scolia, neg-otium)'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서양문화의 원류인 그리스.로마 사회의 여가는 계급사회라는 한계가 있지만 ‘여가’가 삶의 중심 요소였다. 한편 히브리어에서 여가 혹은 휴식과 연관된 단어로는 나바(nava), 레기차(regitza), 사바트(sabat) 등이 있다. 나바는 불안정한 떠돌이 광야생활에서 안정을 찾은 것을 뜻하고, 레기차는 전쟁이 그치고 평화롭고 평안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바와 레기차는 오늘날의 ‘여가’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사바트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안식일에 사용된 용어로 오늘날 성서적 여가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여가란 무엇인가?

여가학 연구에서 중심 주제중 하나는 ‘여가란 무엇인가?’이다. ‘여가(leisure)’는 삶의 보편적인 요소이기에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여가 개념에 대한 여가학자들의 입장을 간출여보면 5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여가를 시간(time)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시간으로서 여가에 담긴 의미는 ‘쉬는 시간(rest)’, ‘일하는 중 짬이나 여분의 시간’, ‘어떤 구속이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시간(free time)’,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하는 즐거운 시간‘ 등이며 동서고금을 통해 넓은 공감대를 가진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일례로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때부터 ’여가(餘暇)‘라는 용어가 26번 언급되어 있는데, 대부분 많은 일로 인해 여가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둘째는 여가를 활동(activity)으로 보는 견해이다. 여기에는 스포츠. 놀이. 게임, 여행, 트레킹 등은 물론 아마추어로서 특정분야의 전문연구 활동이나 봉사활동 그리고 종교 활동 등도 포함된다. 여가활동은 오늘날 정부의 여가정책과 여가연구조사 그리고 언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여가의 개념이다. 셋째는 개인의 정신적 상태(condition)나 경험(experience)으로서 여가이다. 즉 객관적 시간이나 활동으로써 여가가 아닌 개인의 주관적 느낌과 상태를 여가로 본다. 여가는 그것이 시간이든 활동이든 심리적으로 만족. 즐거움. 해방감 등의 경험과 그러한 상태라고 본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근대 철학이나 종교학 그리고 교육학과 심리학 등의 연구에서 주로 제시되고 있다. 넷째는 여가를 사회제도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여가의 본질을 노동 결혼 교육 가정 정치 경제 등 사회 제도나 체제와 관련하여 정의한다. 제도적 관점의 여가 이해는 특정 사회와 시대의 사회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여가학자들은 이상의 4가지 관점 모두 포함된 복합적 속성으로 이해하는 추세다. 이와 같이 여가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누리는 단순한 쉼과 활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시대를 이해하는 문화까지 넓고 깊게 바라볼 수 있다.

 

안식과 성서적 여가

안식(安息)을 직역하면 ‘편안한 호흡으로 쉬는 상태’를 뜻한다. 안식의 다른 말은 쉼 휴식 놀이 등으로 표현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이 현대적 의미의 레저와 같은 의미로 사용 할 수는 없지만, 생활 현장의 실천적 관점에서 본다면 안식과 여가는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이다. 안식의 성경적 근거는 창세기 2장의 안식(rest) 그리고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의 안식일(sabbath) 계명이다. 창세기는 창조의 절정과 완성으로써 일곱째 날의 안식을 전한다.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은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으로서 ‘일을 멈추고, 온전히 쉬면서, 창조와 해방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출애굽기 16장, 20장, 31장, 35장 그리고 레위기 23장과 신명기 15장을 통하여 내용과 의미가 확장되고 강화된다. 안식에 대한 신약의 근거는 좀 다른 결을 말한다. 주기도문의 하나님 나라, 복음서의 안식일 논쟁, 초대교회의 주의 날 등은 여가로서 안식보다는 안식일 혹은 안식의 신학적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삶의 양식으로써 안식의 성경적 의미는 창세기 2장과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에서 넓고 깊은 성찰을 제공받을 수 있다. 특별히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 몰트만 그리고 마르바 던이 제시한 안식의 이해는 창조의 절정이며 창조질서가 투영된 지속가능한 삶의 중심적 위상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 스스로 창조의 완성으로써 일(창조)을 그치고 피조물과 더불어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축하하는 날이 안식일이라 한다. 창조질서에 근거한 안식의 특성은 ‘일을 그침, 쉼, 함께 어울림, 음미, 향연’ 등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구별됨’이라는 신학적 성격을 부여 할 수도 있지만, 안식일에 담긴 창조질서 혹은 천지인의 온전한 관계성이 이뤄지는 안식의 특성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삶의 삼위일체 (trinity of life)

오늘날 안식(여가)에 대한 논의에서 주의 깊게 생각할 지점은 여가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통합성에 대한 인식부족이다. 사람이 일하고 쉬고 놀이하는 것은 각 각 독립된 활동으로 드러나지만, 평범한 삶은 어느 한 가지만으로 이뤄지거나 한 가지가 없어도 지속가능하게 유지될 수는 없다. ‘일 쉼 놂’은 ‘삶의 삼위일체(trinity of life)’를 이루기에 여가는 일의 이면이고, 일은 여가와 분리해서 이해될 수 없다. 세 요소는 삶이라는 토대를 이루는 기본 요소로 상호 연결되어 있고 상호작용의 연합된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일과 쉼과 놂’은 상호침투(prichoresis), 상호순환(circuminsession), 상호내재(circumincession)의 특성을 가진 사회적 삼위일체(social Trinity)의 핵심 개념인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를 통해 보다 깊이 성찰 할 수 있다. 삶의 페리코레시스로써 일과 쉼과 놀이는 우열이나 대립의 관계가 될 수 없고, 상호침투의 균형과 상호순환의 리듬으로 존재한다. 일은 쉼과 놀이의 동반을 통해 이뤄지는 동시에 쉼과 놀이를 지향하고, 쉼과 놂은 일을 통해 이뤄지면서 일을 지향하게 된다. 쉼이 부족하면 일을 할 수 없고, 일이 없으면 지속적인 쉼과 놀이를 할 수 없다. 안식을 논할 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의 삼위일체로서 일과 쉼과 놂에 대한 통합적인 조망 그리고 삶의 페리코레시스로써 일과 쉼과 놂에 대한 성찰이다.

 

가위바위보가 작동하는 여가와 안식

우리사회의 여가문화가 한계를 가지는 것 그리고 한국교회가 성장이후 정체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여가와 안식에 대한 왜곡된 이해가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사회는 일과 쉼과 놀이라는 삶의 통합성을 간과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삶의 삼위일체로서 사역과 안식의 통합성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논의가 일과 여가의 균형이라는 워라벨(work & life balance)의 이원론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쉼.놂이라는 삶의 통합성과 함께 이어령 박사의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차용할 수 있다. 앞면과 뒷면의 어느 한쪽으로 승패를 정하는 동전던지기와 달리 ‘가위바위보’는 우열이나 승패가 존재하지 않는 상호의존적 관계성과 순환적 견제가 작동한다. 각 요소는 각 각의 고유한 특성과 실체가 있지만, 개별적 실체는 다시 상대와의 관계구조 속에서 의미가 결정되는 상호의식 문화이다. 가위바위보는 혼자 할 수 없고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며, 세 가지 요소 또한 상대방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 의미가 수시로 바뀐다. 일이 생활력을 제공하는 바위라면, 쉼은 삶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고, 놀이는 삶의 명랑성을 주는 가위이다. 일은 생활의 필요를 제공하지만 쉼 없이는 지속할 수 없으며, 삶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쉼에 놀이가 없다면 무미건조한 생존만 가능하고, 놀이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주지만 일이 없이는 놀이를 영위하는 에너지를 공급 받을 수 없다. 일과 쉼과 놂으로 구성된 삶의 통합성에 대한 성찰은 여가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여가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페리코레시스와 가위바위보 문명론으로 재조명한 여가는 삶의 통합성과 관계성에서 작동하는 여가의 새로운 정체성과 가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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