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삶이 곧 예술이다" - 본인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특집] "삶이 곧 예술이다" - 본인 작품을 중심으로-
  • 허진권 교수
  • 승인 2021.09.0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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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목회연구원 예술신학 콜로키움
일곱번째

 

 

허진권 교수

(목원대학교 명예교수)

 

 

 

1. 왜 기독교미술과를 만들었나?

21세기다. 자연과학, 종교, 예술에 대한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있다. 과거의 주입식 교육은 교육의 저해요소가 됐다. 궁금한 것은 언제라도 서로 토론할 준비가 돼 있어야하고 아무리 황당한 궁금증이라 할지라도 인정해야하는 시대다. 문화 예술적인 측면을 보면 이제 우리나라도 스포츠나 공연예술 뿐만 아니라 전시예술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기초단체까지 사립미술관 뿐만 아니라 국공립 미술관이 설립되고 문화재단이 활성화되어 많은 미술인들이 혜택을 보고 있으며 수많은 관객들이 가족을 동반하여 자발적으로 전시장을 찾고 있다. 그리고 전시장마다 일반적인 수준의 관객들에게 매우 친숙한 작품들이 많아 시민들의 정서 함양에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해온 나로서는 항상 허전함을 채울 수가 없었다. 특히 수많은 그리스도인 작가들이 있음에도 기독교 정신이 읽혀지는 수준 높은 작품을 대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 더욱더 허전하게 느껴졌다. 이와 같은 생각 중에 기회가 되어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목원대학교에 기독교미술과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나 혼자 커리큘럼에서부터 강사 채용까지 전권을 가지고 2005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맞이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는 순수한 현대미술, 그 작품을 분석해 들어가니 기독교적인 내용이 읽혀지는, 그런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작가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된 학과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세례를 받지 않았거나 심지어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응시할 수 있음도 홍보하였다. 이즈음 기독교연합 신문에 기고하였던 글을 조금 수정하여 덧붙인다.

“ 그들은 예술을 산업화 하면서 상업주의에 젖어 들고 예술의 가치를 금융으로 판단하기에 이르더니 마침내 책임이 없는 자유, 근면성이 상실된 자본주의, 인간의 본성을 잊은 향락 등이 혼재된 감각적 퇴폐주의라는 신종 바이러스를 만들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죄를 잉태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자유를 찾았다는 그와 같은 예술은 결국 향락으로 치장한 감각적 퇴폐주의의 전위부대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청년 예술가 지망생들은 그것을 부러워하며 추종하고 있는 사회가 됐다. 신종 바이러스로 만연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진정한 기독교미술이 필요한 시대다.”

 

2. 기독교 미술가들

1) 밀레와 고흐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이삭줍기’ ‘만종’ 1960년대 우리나라의 이발소마다 걸려있던 그림이다. 그와 함께 걸린 또 다른 그림들은 얼마 전 EBS에서 또다시 방영하였던 ‘그림을 그립시다’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페인트그림들, 이른바 ‘이발소그림’들이다. 나는 학생시절 밀레의 그림을 매우 좋아하였었다. 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갖게도 하였었으니 말이다. 특히 대학 1학년 때, 덕수궁에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밀레특별전’은 크나큰 감동이였다. 그럼에도 이발소 그림을 그리는 싸구려 화가인 것 같아 좋아한다고 말도 못했던 비겁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30여년이 흘러 기독교미술과를 운영하며 다시 알게 된 밀레!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가였다. 특히 실생활의 현장을 교묘하게 성경과 연결하여 제작한 작품들을 대할 때면 기독교 미술에 대한 생각들이 다시 정리 됐다. ‘이삭 줍기’를 보면 룻이 떠오르고, ‘씨 뿌리는 사람’을 볼 때면 복음서의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가 생각나며 ‘봄’이란 작품에 나타난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가 연상된다. 뿐만 아니라 ‘양치는 소녀’는 작품에는 소녀를 그렸음에도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기 전의 소년 다윗이 연상되니 내가 너무 억지스럽게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하였다. 기독교미술과 학생들의 수업준비를 하면서 나는 밀레를 대할 때면 자연스럽게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떠올랐다. 어려서부터의 성경공부, 야외에서 직접 작품을 제작한 작화 태도, 화상들로부터 외면당한 고통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흡사한 생활을 하였던 닮은꼴이다. 특히 고흐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을 아주 좋아하였다. 똑같이 모사를 한 작품부터 고흐의 세계가 완성된 작품에 이르기까지 여러 점을 남겼다.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을 대할 때면 밀레의 ‘봄’이 연상된다. 이 두 작품은 외견상 비슷한 곳이 전혀 없다. 특히 두 사람의 가장 절정에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니 서로 연상 작용을 일으킬 수 없음에도 말이다. 다만 하나, 두 작품 모두 작품의 중앙에 있는 교회로 감상자의 시선을 유도한다. 밀레는 교회를 큼직하게, 고흐는 보일 듯 말 듯 배치하여 인생의 최종 종착지가 어디인가를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 루오

루오(1871∼1958)하면 “미제레레(miserere mei Deus: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가 떠오른다. 이는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받고 회개하며 울부짖은 시편 51편을 루오가 겪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체험을 지극히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제작한 판화들로 1948년에 출판한 판화 작품집이다. 이 서문에서 루오는 “나는, 나의 스승 귀스타브 모로는 물론 수많은 날을 뜬눈으로 지새우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내가 예술에의 순례자로서 방황했던 교차로에서 나의 초기의 노력을 가능하게 해준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 대부분의 주제는 1914년과 1918년 사이에서 비롯된다.” 고 작품 제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에 한스 로크마커(Hans Rookmaaker 1922∼1977)는 『현대 예술과 문화의 죽음』에서 루오의 작품을 통하여 이 시대 기독교미술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루오는 이 시대에 다른 종류의 예술이 가능함을 보여준 화가다. -중략- 루오는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또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보여준 화가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한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 화가들이 그 점을 지나쳐 버렸는가? 루오에 필적할 만한 개신교 진영의 화가는 과연 있기나 한가? 대부분의 개신교 진영의 화가들은 여전히 빅토리아 왕조 시대나 인상주의의 전통의 틀에 얽매이거나 달콤한 감상주의 계열을 답습하기에만 급급한 것이 사실이었다.”

3) 윌리엄 홀만 헌트와 워너샐먼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미술인은 단연 미국의 워너샐먼(1892∼1968)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삽화 작가로 활동하던 중 젊은 나이에 불치병으로 시한부 판정받고 성경그림을 그리며 남은 생을 보내기로 한다. 당시 유럽의 작가들 중 미국에 전해 졌던 윌리엄 홀만 헌트(1827∼1910)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모사한다. 그러던 중에 불치병이 완쾌되는 체험을 하고 더욱더 성경적인 내용을 제작하고 보급하니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그의 그림을 기독교 미술로 알게 된다. 이처럼 그는 훌륭한 작가다. 그러나 “하지만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것은 그 그림들이 어떻게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그들 이래로 ‘기독교 미술’은 으레 그런 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라는 한스 로크마커의 지적처럼, 미술의 역사도 모른 채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나 저작권에 무지한 사용자들로 인하여 그의 작품들이 부정적으로 지적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 주변의 수많은 교회들, 특히 대도시의 대형 교회들까지 그의 작품을 표절하기도 하고 표절한 무리들의 그것들로 교회를 장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지가 그 교회를 섬기는 예술에 대한 식견이 있는 성도들의 마음에 교회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크나큰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를 뿐만 아니라 원 작가의 명예도 크게 실추시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사랑파장.229x151cm.mixed media.2010
[출처] 허진권|작성자 허진권

3. 나의 작품들

1981년 7월 26일 ‘삶이 곧 예술이다. 자연이 곧 예술이다.’ 쌀자루에 쓴 것을 뒤집어쓰고 서대전역을 출발하여 목포, 제주, 부산, 대전역으로 순회하였다. 이는 ‘허진권 전국순회 개인 행위미술전’이다. 이때의 생각 ‘삶이 곧 예술이다. 자연이 곧 예술이다.’는 지금도 변함없다. 즉 삶의 현장을 떠난 예술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는 자기를 대표할 수 있는 한 가지 영역을 심도 있게 추구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던 때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일일이 말 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온 나의 주된 관심도 종교, 과학, 예술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양보할 수 없었으니 내용의 다양함은 물론 방법론에 있어서도 회화, 설치미술, 현장작업 등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살아온 내가 기독교미술과를 창설한 후에는 또 다른 체험을 하게 되니 더욱더 성경을 작품세계에 깊이 수용하게 되었다. 즉, 아무리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그 삶이 문학이 되지 않는 것처럼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작가는 늘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얻은 체험을 어떻게 작품이 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험하고, 또 고민하는 시지프스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1) 회화 작업

나는 오래 전부터 작품에 성경의 내용을 수용하고 있다. 그 작품들이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알려진 관계로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2) 책은 보는 것

이제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장식품이 됐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시험 보는 기술이 필요하니 책을 읽을 필요가 없고, 대학은 취업률이 교육 목표가 됐으니 연구할 필요가 없으며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에서 검색하면 된다. 따라서 책은 보는 것이다. 대학에서 순수학문을 하는 학과가 사라지는 신종 분서갱유를 지적한 ‘책 묶기’에 ‘성경 묶기’와 지구의를 더하여 또 다른 설치작업으로 연출하고 있다.

(1)성경을 먹자.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목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성경 500권을 채집하였다. 이렇게 채집한 성경을 노끈으로 묶고 본드로 칠해서 화석화된 성경을 만들어 설치하여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전시 타이틀은 ‘성경을 먹자’다. 이제 그리스도인들도 성경을 잘 안 읽는다. 성경은 그냥 보는 것, 예배 출석 때 끼고 다니는 장식품에 다름 아니다. 신은 없다, 신은 인간의 관념이 만든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적 입장에 있는 리처드 도킨스(1941∼)나 스티븐 호킹(1942∼2018) 같은 과학자들의 주장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큰 시대다. 신은 없다? 과연 그럴까? 이제 성경은 교양서적으로도 잘 읽지 않는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성경을 먹어보자!

(2)네 신을 벗으라.

모세에게 명하신 말씀, ‘네 신을 벗으라.’ 그래, 이곳은 거룩한 땅이다.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내가 발붙이고 있는 매 순간 순간의 곳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땅일 터. 내가 들고, 입고, 신고 있는 모든 욕심, 우상의 신을 벗어버려야 한다. 화석화된 성경과 문학, 역사, 철학에 해당하는 책들을 성경처럼 묶었다. 그리고 바다와 육지, 국가란 경계도 모두 단색으로 지우고 오직 점으로 적도만 표시한 지구의 40개를 설치하였다. 광야생활 40년, 광야에서 40일 등 40이 연상시키는 성경의 내용들이 많다. 이 내용들을 작품이 되게 한 것이다.

 

3) 153 프로젝트

(1) 신이 만든 물고기는 수영을 하고, 내가 만든 물고기는 물위에 뜬다.

디베랴 호숫가. 11명의 제자 중 배에 탄 7명, 그 중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2명. 궁금하다. 그 2명의 이름을 알면 거기에 없던 4명의 이름도 알 수 있는데. 부활의 현장을 두 번씩이나 본 10명의 제자들! 한 번이지만 상처자국에 손가락까지 넣어본 도마. 그럼에도 그들은 실의에 차 다시 3년 전의 생업으로 되돌아갔다. 3년을 따라 다닌 그 12제자조차 부활한 상태의 모습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모두 그렇게 흩어진 상황이다. 그리고 밤을 새워 던졌지만 텅 빈 그물만 들어 올린 흉어 중의 흉어, 이 또한 기적이다. 힘이 빠질 대로 빠져있을 때 오른편에 던지라는 희미한 소리를 무심코 따르니 그물 가득 잡힌 것도 기적이다. 이때 잡힌 153마리의 물고기를 통해 믿음, 구원, 부활에 대해 또다시 고민 하였다. 이렇게 하여 153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와 같은 고민을 어떻게 작품이 되게 하나? 친구 밭에서 베어와 15년간 말린 은행나무, 제재하고, 벗기고, 씻기고, 다듬고, 갈고, 칠하고, 점을 찍고. 전시장에 설치하였다. 이른 바 ‘신이 만든 물고기는 수영을 하고, 내가 만든 물고기는 물위에 뜬다.’는 이렇게 작품으로 풀어냈다.

(2) 신은 자연을 창조하고 인간은 자연을 파괴한다.

“무엇에서건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쾌락을 얻은 순간 그것을 버린다. 여기 그것들이 있으나 당신의 소중한 그것은 없소” 1981년 제2회 ‘야투’에서 설치한 내용이다. 자연은 본디 쓸모 있고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과 욕심이 그 기능과 순환의 질서를 바꿨다. 프라스틱, 농약 같은 화학물질 쓰레기를 방류하더니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방사능 오염수 까지 방류한다고 한다. 해안에 밀려온 해양 폐기물들이 쌓였다. 그 중에도 분해되지 않는 것들, 모래에 파묻힌 폐기물들 위에 백목으로 물고기를 그린다. 사진을 찍고 출력하여 캔버스에 부착하고 물고기형상으로 점을 찍는다. 153마리의 물고기다. 그리고 이 물고기들은 ‘신은 자연을 창조하고 인간은 자연을 파괴한다.’고 외친다. 그렇다 “NO!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제작하고 전시한 과정이다.

 

4) PEACE쓰기

2014년부터 나는 ‘PEACE’를 쓰고 또 쓰고 있다. 화폭이나 지구의에, 담벼락이나 길바닥에 연필이나 백목, 붓이나 손가락으로 쓰고 또 쓰고 있다. 사랑과 자비, 평화를 외치는 종교, 민족, 이념의 정치적인 지도자들! 그들이 분쟁에 개입한 결과는 전쟁이 있었을 뿐 이다. 나도 폭력이나 전쟁에 반대하나 그럴만한 힘이 없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 언제 어디서나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PEACE’를 쓰고 또 쓴다. 이제 SSEN이라 불리는 무용수와 나는 휴전선에 인접한 시군을 다니며 춤을 추고 ‘PEACE’를 쓰기 시작하였다. 고성군 통일전망대부터 내륙의 휴전선에 가까운 길을 횡단하여 강화도, 교동도, 연평도에서 백령도까지. 그리고 서해안, 남해안, 동해안까지 지워지고 또 지워질 지라도 쓰고 또 쓸 것이다.

 

4. 한국교회의 기독교미술에 대한 제안.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회는 외적인 부흥에 집중하였다. 이렇게 목회를 하다 보니 일부 대형교회들이 각종 구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성도들의 문화수준을 생각 하지 않고 성장한 결과 문화 예술에 있어서는 가장 낙후된 곳에 속하게 됐다. 이처럼 목회자나 임원들의 의식이 자꾸만 삶의 현장과 멀어지고 문화 예술에 대한 필요를 외면하는 것도 청소년들이 기피하는 요소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고 폴 틸리히(Paul Tillich. 1986∼1965)는 『문화의 신학』에서 역설하고 있다. 또한 한스 로크마커는 기독교 미술에 대여 “하지만 우리가 묵과할 수 없는 것은 그 그림들이 어떻게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그들 이래로 ‘기독교 미술’은 으레 그런 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라고 꾸짖는다. 그리고 필립 그레이엄 라이큰(Philip Graham Ryken. 1966∼ )은 『하나님을 위한 예술』에서 “예술은 언제나 현실에 대한 해석이며 기독교인은 특별히 현실을 해석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에 들어온 희망을 다루어야 합니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누구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이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교회는 시대성과 현장성이 살아있는 문화 예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의 한국 교회를 보게 된다면 뭐라고 할지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교회의 현재는 매우 위태롭다.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으나 나는 미술인으로서 그 중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제안하고자 한다. 제일 먼저 교회의 목회자나 임원들은 문화 예술에 대한 상식을 지녀야하고 지적재산을 인정해야 된다. 단적으로 말해 워너샐먼의 그림을 제대로 알고 사용하여야하며(그들 이래로 ‘기독교 미술’은 으레 그런 식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에 속하는 대표적인 그림) 또한, 그의 그림을 무분별하게 표절한 것들은 취급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그런 것으로 교회를 장식하였다면 모두 치우기를 강권한다. 특히 예수님 초상화라고 하는 그림은 모두 철거하여야 마땅하다. 예수님 초상화는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그림을 좋아하는 이는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즐기면 된다. 다음으로 미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교회의 임원들이나 취미로 즐기는 성도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취미활동을 「기독교 미술」또는 「미술 선교」라는 언어로 포장하지 않기 바란다. 이 두 가지는 아주 쉬운 방법이며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즉 지금의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좀 더 기독교의 본질에 가깝게 할 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으로 바꾸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교회도 건물의 외부 환경이 움베르토 바소(1928∼2000)의 작품 정도는 아닐지라도 좀 더 주변 환경과 친근감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로 바꿀 뿐만 아니라 내부도 주목성이 강한 색채로 일관된 게시물들을 하루 속히 정리해야겠다. 그렇게 하여 빈자리는 교회학교 어린이들의 작품이나 출석 교인 중에서 미술을 전공한 성도의 지적재산을 인정하며 임원들과 협의하여 수준 높은 작품을 수용하면 좋은 찬양과 더불어 예배의 품격을 한껏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목회자들이나 교회의 임원들은 더욱더 자연과학, 종교, 예술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공부를 해야 하겠다. 이렇게 한다면 70년대 우리나라 교회에 가득했던 그런 중고등 학생들이 다시 모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교회는 공교육에서 다루지 못하는 자연과학, 종교, 예술을 담론해야 될 사명을 실천해야할 때인 것이다.

끝으로 한스 로크마커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한다. "그리스도인 됨이 하루 종일 할렐루야를 흥얼대며 돌아다니는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 의해 거듭난 생명을 진정한 창조력을 통해 드러내는데 있듯이, 그림 속의 인물에 후광이 둘러져 있다거나 할렐루야 소리가 들린다 해서 모두 기독교 회화인 것은 아니다"란 말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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