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예술목회연구원 예술신학 콜로키움 '예배美학' ⓵ 예배, 그 아름다움
[기획특집] 예술목회연구원 예술신학 콜로키움 '예배美학' ⓵ 예배, 그 아름다움
  • 박종환 교수
  • 승인 2021.03.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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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바바라는 잘 알려진 문화이론가가 있습니다. 그는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가르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이론가입니다. 그의 학문의 여정은 줄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과 관련이 있습니다. 호미바바 자신은 가난한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의 지식인이 되면서 스스로를 잡종(Hybridity)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자신의 학문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죠. 그의 결 론은 1세계와 3세계, 서구와 이슬람, 식민지와 피식민지와 같은 대결구도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립이 아니라 서로 의존적으로 얽혀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얽혀있고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원론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단순화 시킵니다. 선과 악, 빛과 어둠, 1세계와 3세계, 서구와 이슬람. 우리는 세계가 이렇게 분명히 양분화 되어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정보들은 그러한 이분화된 세계관을 생각 없이 전달하고 확장하는 있습니다. 서로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서로의 삶에 깊이 침투해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를 이원론은 폭력적으로 양분화 시킵니다. 추상적인 논리는 논리를 넘어서 세상을 갈라버리는 폭력으로 작용합니다. 중심은 주변을 두려워하고 서구는 이슬람을 적대시합니다. 진보는 보수를 증오하고 보수는 진보를 무시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두려워하며 포비아(Phobia)에 갇혀 살아갑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절대 선이 절대 악을 심판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추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논리의 노예가 되어 세상을 증오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일 뿐입니다. 세상과 인간은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체입니다. 감정은 수시로 변하고 우리의 판단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보수가 진보적 행동을 하기도 하고 진보가 보수의 논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이원적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애매하고 모호한 상황들로 가득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은 혼란스러워 합니다.

예배는 그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탄식이고 희망의 노래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 탄식하는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단 샐리어즈는 세상의 이러한 추상적 구조(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빛과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혼돈과 그에 따르는 고통이 예배를 드리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절망과 희망의 대립 같은 추상적 구조 속에서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를 동시에 체험케 합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상을 꿈꾸고 희망하게 합니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소망의 행위이며 악의 실체에 저항하는 행위입니다. 이 파토스는 폭력과 어두움, 추함으로 얼룩진 이 인간세상을 넘어 더 깊은 곳을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자연재해와 테러와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 뛰어노는 어린이들의 모습, 음악과 그림, 문화, 예술 속에서 여전히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살아갈만한 세상임을 경험합니다.

따라서 복잡한 인간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예배드린다는 것은 그 복잡함 (complexity)과 혼돈(chaos) 자체에 억지로 이름을 붙이거나 하나로 규범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능동적 규범이 생산하는 사회적 종교적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는 초월자의 부재와 임재, 거룩과 세속의 두 분리된 세계를 통합하는 감각을 훈련하는 공간입니다. 이 세상의 근본적인 불명확성(ambiguity)속에서 예배참여자들은 불안이나 기쁨, 슬픔과 같은 깊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 감정은 두개의 분리된 세계, 거룩하고 세속적인 세계를 통합하는 채널이 되어갑니다.

예술은 그러한 애매한 세계관을 담기에 적절한 그릇이자 그 자체가 모호한 삶의 표현입니다. 예배에서의 예술은 고통받고 탄식하는 자들의 이야기와 언어가 풀어내지 못하는 인지 너머의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말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예술은 동작으로 색으로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서의 예술적 표현은 고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절규이고 탄식이고 희망의 노래입니다. 법괘가 들어올 때 기뻐 춤추는 다윗의 바지입니다. 그래서 예술은 예술의 전당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것, 화려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상하지 않고 절박하고 아픕니다. 때로는 환희에 찬 노래들입니다.

그렇게 예배는 인간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바닥과 한계를 예배로 올려드릴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예술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는 행위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추는 춤과 성령의 감동으로 드려지는 찬양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악을 이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 찬양은 탄식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Doxology)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슬픔이 하나님을 기대하는 희망으로 변할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이야기가 우리 삶의 이야기로 침투할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사람들은 그들의 감각과 육체를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맛보게 됩니다. 이 신비는 내 영혼 안에서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 가운데 함께 드러나고 인식되는 공동체적 신비입니다. 성찬의 빵을 나눌 때, 우리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되고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이 됩니다. 서로 연결된 한 몸을 이뤄가는 신비이다. 이 신비는 예배자와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게 할 뿐 아니라 예배자와 고통 받는 이웃을 하나 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는 종말론적 행위(praxis)입니다. 예배에서 몸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신비를 조금 더 가까이 느끼고 만질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인도하고 종말의 시간을 현실 속에 가져오기 위해서 예배가 모든 예술적 장르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미래의 예배는 음악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예술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반응하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이콘을 포함한 시각적 예술을 수용해야 합니다. 미래의 예배는 비주얼과 교회력에 따른 색깔뿐만 아니라 초기 교회의 예전적 요소를 수용해야 합니다. 예배는 수동적인 관람이 아니라 보다 예배공동체의 참여적인 움직임이어야 합니다.

미래의 예배는 살아있는 공동체 안에서 창조된 예배로서 예배참여자들이 전통을 현대적이고 복음적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예배 모임의 전반에서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설교중심을 지양하며 예배인도자는 인도자로서가 아닌 참여자로서 구원의 신비에 다가갑니다. 한 개인의 회심을 넘어서서 탄식, 죄의 고백, 침묵 등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과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어떤 전제된 결론을 유도하기보다는 열려진 결말로서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예배의 형태를 갖게 됩니다.

미래의 예배는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거나 성서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있어 창조적인 도구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미술, 음악, 시, 사진, 춤, 그리고 퍼포먼스 등의 장르들입니다. 그들의 예배는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서로 묻고 진리를 추구하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또한 고대의 예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창조해 내어야 합니다. 고대의 비주얼이나 기도단이나 성찬과 도유식, 아픈 자와 고통 받는 자를 위한 치유기도와 같은 초기교회의 전통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혼돈과 어두움 속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온몸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는 춤, 영원한 나라를 꿈꾸는 비주얼과 이미지, 인간의 추함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드러내는 언어와 상징들, 이 모든 인간의 움직임이 예배입니다. 그러한 움직임 안에 인간의 바닥을 드러낼 때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받으십니다. 기뻐 받으십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박종환 교수

 

약력

현 실천신학대학원 대학교 부총장

현 실천신학대학원 예배학 교수

실천교회 담임목사

 

저서

『예배미학』 - 인간의 몸, 하나님의 아름다움. (서울 : 동연 출판사,2014)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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