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3년 11월 10일에 독일의 아이슬레벤에서 종교개혁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지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출생했다. 청년 시절에 마르틴 루터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가가 되기 위해 에어푸르트 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다가 루터는 대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땅바닥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에 큰 두려움을 느껴 우발적으로 신부가 되기로 서원했다. 루터는 1505년 7월 17일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해 수사신부가 되어 성경을 계속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고,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서주석 담당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마도 루터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을 하루 꼽자면 1517년 10월 31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에 루터가 로만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사람들에게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517년 10월 31일에 루터는 ‘면벌의 권능과 효력에 관한 논쟁’이란 제목의 95개조 반박문을 마인츠의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보내는 편지에 동봉하여 발송했다.
95개조 반박문의 첫 번째 항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들은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틴 루터는 죄 사함의 역할을 교황이 대신할 수 없고, 돈이 연보궤 안에 떨어지면 연옥에 간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는 설교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루터가 처음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했을 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95개조 반박문을 시작으로 종교개혁의 불길이 독일전역에 타오르게 되었고, 이후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구자로서, 목숨을 걸고 로만 가톨릭과 전면전을 펼치게 된다. 교황의 권위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권위를 더 강조한 루터는 1546년 2월 18일에 그가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