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죽음의 묵상
흐드러진 죽음의 묵상
  • 박혁순 목사
  • 승인 2019.03.15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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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목사님 가운데 사순절 중 벚꽃구경을 엄격히 금하는 분이 계시다. 대개 벚꽃이 만개할 때가 사순절 혹은 고난주간에 드는 경우가 많다보니, 가령 남선교회에서나 여전도회에서 야유회를 위해 교회 차량을 내어 달라고 할 때 목회자로서의 ‘몽니’를 부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처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조차 하나님의 섭리일진저!) 사순절 기간 흐드러지게 피다가 한순간에 지는 꽃비를 볼 때, 수난 중에 죽은 그리스도를 벚꽃과 더불어 묵상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가 반문하고 싶은 것이다.

“아깝기 그지없는 연분홍의 속살들을 벚나무가 길바닥 위로 게워내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꽃의 죽음을 상춘(賞春)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출처 : 픽사베이
“아깝기 그지없는 연분홍의 속살들을 벚나무가 길바닥 위로 게워내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꽃의 죽음을 상춘(賞春)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출처 : 픽사베이

일본 속담에 “꽃은 사쿠라, 사람은 사무라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운 후 흔적도 없이 단번에 져버리는 사쿠라(벚꽃)의 속성이 마치 사무라이가 지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모습과 닮았다 해서 그렇게들 말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삶, 젊음, 세상의 영화가 찰나의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절실한 마음으로 벚꽃을 바라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그렇듯 우리도 흩날리는 벚꽃을 감상하며 우리 일상에 깃든 삶과 죽음의 공존을 떠올리고, 나아가 ‘죽음의 미학’, ‘죽음의 생철학’을 사유할 수 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추앙하는 군중들의 환호 가운데 예루살렘성에 입성한 예수는 이내 십자가 형틀에서 그 짧은 생애를 마쳤다. 개화하자마자 떨어진 꽃과 같이 말이다. 사실 벚꽃의 진면목은 가지에 아슬아슬하게 피어있는 모습으로부터 처절하게 지며 비처럼 흩뿌리는 죽음의 시퀀스(sequence)에 있다. 아깝기 그지없는 연분홍의 속살들을 벚나무가 길바닥 위로 게워내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역설적이게도 꽃의 죽음을 상춘(賞春)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죽음을 부활에 귀속된 부록쯤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승리요 소망이지만, 많은 교인들이 수난과 죽음의 저점(低點)을 경유하지 않고 부활의 위엄과 영광으로 직행한다. 짓이겨지는 꽃잎처럼 찢기고 부서지고 버려지는 십자가의 비련미(悲戀美)를 직시하지 못한다. 그러한 ‘겉 넘기’는 죽음을 죽음답지 않게 바라보게 한다. 그 허무, 고통, 절망, 공포를 겨우 가장(假裝)된 가정(假定)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무에 달려 처참하게 죽는 예수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애달프고 서럽고 슬픈 비극적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죄인과 연대하고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는 그의 자비(compassion)가 윤리적 절정을 시위함과 동시에 말이다. 이에 관련하여 미국 저명한 종교학자인 조셉 켐벨(Joseph Campbell)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사랑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덧붙여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아름답다’ 하는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시인 김재진은 그의 시 <풀>에서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렇듯 베어지고 떨어진 낙화와 같은 예수. 옥합이 깨뜨려지듯 깨어져 만유에 그 핏빛 향기를 전하는 예수의 죽음에는, 분명히 우리가 깊이 느껴야할 몫의 비장하고 애련한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다. 벚꽃의 낙화를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는 이 계절, 특별히 그 흐드러진 죽음을 사순절 한가운데에 접하는 올해에는 그러한 차원에서 예수의 수난과 희생을 묵상했으면 한다.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혁순 목사
창신교회 담임
창신대 겸임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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