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시심을 품고 시와 더불어
[전문가 칼럼] 시심을 품고 시와 더불어
  • 박혁순 교수
  • 승인 2021.05.01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경은 시를 포함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긴 분량을 지닌 시편도 그렇고, 남녀 간의 사랑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아가서도 그렇고, 유려하면서도 격정적인 이사야서의 문체에서도 그렇고,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그러하다. 우리가 이 사실을 떠올리자면 왜 성경이 시 또는 시적 표현을 요구하고 있을까 숙고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진리와 시, 구원과 시, 종교와 시, 신앙과 시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한자로 시(詩)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가 결합된 형태를 갖는다. 말하자면 '절에서 쓰는 말'이 곧 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역시 시의 종교성을 함의하고 있다. 스승의 말씀의 부단히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 언어로서 진리를 이해시키는 것, 그리고 언어로써 언어를 극복하여 진리로 도약하도록 돕는 것 등이 바로 종교적 기능을 갖는 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종교는 시를 필요로 하고 있고, 시는 인간에게 종교적 진실을 수용하게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준다.

20세기의 철학자 하이데거에 의하면 시를 짓는 일은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소중한 작업이다. 그런데 비단 시를 짓는 일만일까? 시를 읽는 것, 시를 애송하는 것, 시상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시인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기왕 한 생애를 살아도 존재의 의미를 깨치고 누리게 만든다. 그러니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평범성을 극복하고 세계와 삶의 도처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신비를 만나게 하는 일이다.

목동 다윗은 양을 치는 틀에 박힌 생활 속에서도 놀라운 노래와 시를 지어 불렀다. 예수님은 고기 잡는 일, 장사하는 일, 농사하는 일 등의 평범한 활동과 들에 꽃이 피고 새가 나는 대수롭지 않은 자연으로부터 숱한 비유를 지어 내셨다. 그러니까 우리의 마음과 관점이 중요한 것이지 특별한 환경이나 소재를 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껴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알겠지만, 시는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감사를 회복시키고,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하고, 우주와 생명을 신비롭게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발견하게 해준다. 시는 분명히 종교적이고 신앙적이다.

 

시를 향유하기 위해 유행이나 권위자를 따를 필요는 없다. 시가 예술인 한, 그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부류의 사람들 간에 시가 매우 난해해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동시로부터 옛 시에 이르기까지, 시작(詩作)을 익히는 아내의 수첩에서 책꽂이에 묵혀둔 학창시절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비근한 것으로부터 즐기면 될 일이다.

몇 해 전 <백련초해>(百聯抄解)라는 한시(漢詩) 입문서를 읽을 기회를 얻었다. 조선의 문신 김인후가 엮은 것인데, 이른바 초학자에게 한시를 가르치기 위하여 칠언고시 중에서 연구(聯句) 100개를 뽑아서 한글로 해석을 붙인 책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표현을 가려낸 그의 눈썰미도 놀랍지만, 이 숱한 시어들이 현대인들에게 알려져있지 않다는 점도 아쉬움이 컸다.

이 지면을 통해 그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작자들의 시가 뒤섞여 있음을 양해 바란다.) 봄이 깊어 가는 이 시절에 제격이리라 본다. 모쪼록 독자들의 마음에 시심이 보다 풍성해지면 좋겠다.

꽃빛이 옅고 짙은 것은

꽃빛이 옅고 짙은 것은

서로 핀 날이 다르기 때문이고

 

버드나무 키가 높고 낮음은

심은 날이 다르기 때문이라

 

꽃은 말을 몰라도

능히 나비를 끌어 들이고

 

비는 문이 없으나

갇힌 사람을 풀어주는구나

 

꽃이 뜰에 떨어지니 애석하여

쓸어버리기 아깝고

 

창밖에 달이 밝으니

사랑스러워 잠을 이룰 수 없네

 

- <백련초해> 중.

 

박혁순 교수

창신교회 담임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298-4 삼우빌딩 402호
  • 대표전화 : 02-742-7447
  • 팩스 : 02-743-74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상현
  • 대표 이메일 : gospeltoday@daum.net
  • 명칭 : 가스펠투데이
  • 제호 : 가스펠투데이
  • 등록번호 : 서울 아 04929
  • 등록일 : 2018-1-11
  • 발행일 : 2018-2-5
  • 발행인 : 채영남
  • 편집인 : 박진석
  • 편집국장 : 류명
  • 가스펠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가스펠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ospeltoday@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