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에서 의미 찾기와 찾는 방법
예술 작품에서 의미 찾기와 찾는 방법
  • 덕 헤인즈
  • 승인 2019.03.2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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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미술 작품들은 관중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러한 현대미술의 난해함은 미술을 소수 전문가들의 세계로 만들고, 미술관을 찾는 보통의 관중들에겐 작품의 문외한이 되어가게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작품과 청중과의 거리는 관중들로 하여금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혹 미술 작품을 잘못 이해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들게하여 눈앞의 그림을 향한 본인들의 느낌과 생각을 솔직히 말하기를 어렵게 만듭니다. 너무 난해하여 자칫 비밀스럽게도 보일 수 있는 이러한 현대 예술 문화는 대중의 지각 능력을 차단하는 장벽이 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전문가의 작품 해석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합니다.

이 내부자 클럽에 대한 해독제는 예술 작품 감상의 시작을 개개인 자신의 시각에 두는 것입니다. 우선 작품을 신중히 보시고 내 눈에 들어 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십시오. 구도가 어떤지 잘 살펴 보세요. 색상, 모양, 선 및 질감은 어떤지도 잘 들여다 보십시오. 작품이 흥미롭습니까? 대답이 “별로" 라던가 "전에 본 전문가의 해석을 통해 그림을 보니 정말 흥미로웠어!" 라고 한다면 아마도 “임금님은 벌거벗고 있었다"라는 꼴일것입니다. 반면, 작품에 눈이 자꾸 가게 된다면 자기만의 소중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작가로서 저는 제 작품의 의도를 말하기가 주저스럽습니다. 제 작품에 관해서는 저의 해설이 다른 누구의 코멘트보다 더 무게가 있을테니니깐요.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작품을 직접 보기전에 제 해설을 읽으면 작가의 의견 없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자신 스스로 발견하는 기쁨을 잃고마는 것이지요. 나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들을 그냥 스치고 지나칠 수가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서면 에세이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작품에 관한 메시지를 빨리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득인 듯 하나 실제로는 함정이 됩니다. 글로 쓰여진 해석에 너무 의지하면, 작품의 의미가 시각적인 본래의 존재 보다는 언어에 고정됩니다. 그래서 경고합니다. 스포일러들에게 경고! 아래에 쓰여 있는 제 글을 보기전에 그림을 먼저 봐 주십시오. 대충 훑어 보지 마십시오. 천천히 그림을 보시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한 후에 당신의 의견과 제 의견을 비교하십시오.

설명 없이 위의 그림을 처음 접하실 때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며 긴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데서 오는 긴장감이지요. 주제를 식별 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성경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난감해 하면서 작품 해석 감상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라 말합니다.

주제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이 그림이 나쁜 작품인 것은 아닙니다. 위의 그림이 바탕으로 한 성경 이야기는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을 명확히 보기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제가 천천히 드러나는 그림은 스스로가 바로 그 점을 강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 말씀의 의미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이 그림의 의미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은 그림이 성경 말씀을 걸맞게 잘 묘사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 그림은 기독교 예술의 여러 관례에서 벗어납니다. 예를 들어 중세의 그림들은 주제의 신성함을 드러내기위해 후광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성서 삽화가들은 가운과 샌들을 이용하여 보는 이들에게 이 작품이 성화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제 스타일은 만화와 비슷하지만 아이들이 보는 만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피와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제 그림은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성서 그림의 스타일과는 다릅니다. 중세 화가들이나 최근의 성서 삽화가들의 그림에서 처럼 후광도 가운도 샌달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제 작품을 접할 때는 성경 이야기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는 이야기의 여러 요소를 되도록 많이 그림에 담으려 했습니다. 제 그림 속 성서 인물들의 이야기와 감정등은 인물의 몸짓을 통해 전달됩니다. 특정 얼굴은 작품과 관객 사이에 거리를 둘수 있기에 눈 코 입 등은 생략합니다. 표정 없는 얼굴 혹은 특정한 모양의 얼굴이 생략된 제 그림은, 청중들이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그 공백을 채우게 합니다.

위의 그림은 창세기 37:17-36 을 바탕으로 그렸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경쟁, 배신, 거짓, 공손, 정욕, 슬픔, 구원 등 인생의 여러 면들이 서술되며, 이야기의 핵심은 불행으로 보이는 것들이 축복으로 바뀌었다는 것 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에게 주는 메세지는 요셉을 없애려는 그 어떠한 사악한 시도도 그들을 요셉의 지배에서 해방시키지 못한다이며, 그들의 행동이 오히려 요셉이 그들을 지배할수있고 구해 줄 수있는 위치에 올려 놓았다는 것 입니다.

팔려가는 요셉의 그림을 통하여 저는 인간의 약점과 강점을 묘사하려 했습니다. 그림 맨 위쪽에는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형제들의 말 풍선 안에는 말이 아닌 그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형제들은 아버지께 요셉이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눈물은 강이 되어 지구 저 멀리 까지 흐릅니다. 요셉의 색동옷은 그림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고, 형제들이 죽인 양의 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호의의 상징인 색동옷의 위치는 아버지가 가장 예뻐한 요셉의 비참함을 더욱 강조하고,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말하는 형제들의 거짓말을 더욱 고조시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새 주인에게 팔려가는 모습은 지구 반대편에 그려져 있습니다. 지구는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 거리를 의미합니다. 미술적 관례와 달리, 달은 왼쪽 상단, 태양은 오른쪽 하단을 비추고 있습니다. 바뀐 해와 달의 위치는 지금의 불행이 미래의 영광으로, 현재의 악행이 앞으로는 드러날것을 예견합니다. 수많은 역경속에도 살아 남게되는 요셉과 형제들의 사악한 행동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해와 달의 위치에 의해 더욱 강조됩니다.

작품에 대한 저의 견해가 작품을 이해하는 시발점이되기 보다는 여러분의 개인적인 경험을 투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읽기 전에 위의 그림에 관한 의견을 이미 가지고 있으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의견을 읽으신 후에는 다시 한 번 작품을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나서 "아! 맞아. 작가가 본 그것 나도 보았어!" 또는 " 아 그러네 그것도 보이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좁은 소견을 뛰어 넘는 또 다른 통찰력으로 그림을 보실 수도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앞으로 다른 작품을 접하실 기회가 있으실 때, 작품을 자세히 관찰해 보시고 왜 그 화가가 그러한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는가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런 다음 스스로의 의견을 내시고, 그 후에 전시장 벽, 작품해설서, 박물관의 헤드폰을 통해 작가와 그림에 관한 설명을 보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덕 헤인즈 Doug Haynes는 위스칸신주 매디슨시에 살고 있는 화가입니다. 2008년 부터 성서 삽화 작업을 해왔으며 지금까지 600점 이상의 작품을 마쳤습니다. 또한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습니다. www.emeraldstudio.com 및 www.newbibleart.com에 들어가시면 샘플 sample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글은 이 정자가 권 현도와 김완의 도움을 받아 번역하였습다. 권 현도는 위스칸신 대 학부 학생이고, 김 완은 대학원 연구원생이며, 이정자는 그리스도 연합 교회(United Church of Chirst)의 안수목사이자 메드슨시 교육청 소속 이중 언어 자료 전문인으로 현재 쇼우드 힐 초등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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