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서 주요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의 입장 차이가 분명해 보인다. 한국정부는 남북관계 진전과 국제사회의 제재완화로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판문점 선언을 실질적으로 이행해 나가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그 배경에는 남북관계와 북한의 비핵화가 항상 기계적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아셈 정상회의에서 ‘비핵화 세일즈’에 적극 나선 한국정부는 북한의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견인책으로서의 ‘유엔의 대북제재 완화’를 공론화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남북관계가 조금 앞서 나가면 북미협상 정체 해소에 도움이 되고, 한쪽의 모멘텀(momentum)이 다른 쪽 프로세스를 견인해서 선순환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생각이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국정부의 방법론을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대북 제재해제를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한국의 생각과 달리 미국은 ‘비핵화 우선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남북한의 관계개선은 북한의 비핵화와 별개로 진전될 수 없으며, 현재까지 진행된 북한의 비핵화 조치만으로는 제재를 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종전선언, 대북제재 해제 등을 모두 최종적인 비핵화를 위한 대북 압박 카드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미국은 남북관계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정부에 대해서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남북철도 공동점검 유엔사 불허조치,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불만 표시, 미 재무성의 국내은행 대북제재 준수 요청(컨프런스 콜 형식) 5·24 대북조치 해제 검토에 대해 “한국, 우리 승인없이 제재완화 하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의 발언, 남북고위급회담 공동보도문에 대하여 대북제재 완전이행 입장표명, 미 재무성의 460개 북한 관련 제재대상에 ‘2차제재 주의’ 언급 등 일련의 행태들은 남북관계 개선이 너무 빨리 진행되는 것에 대한 미국의 불편한 속내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트럼프가 말한 ‘우리의 승인(approval)’이란 표현은 한국의 국가주권 침해 논란까지 일으켰다. 미국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 혹은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감이 근본적으로 작동하고 있겠지만, 기실 한반도 문제가 국내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판단 아래 미국 선거에 계속 이용하려는 계산된 의도로 읽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에 의해 상당부분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와 유사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통해 역내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정착시키려고 하는 한국정부의 동아시아 안보공동체 구상도 미국의 영향력과 전혀 무관할 수 없다. 더구나 한국정부는 아셈 정상회의를 통해 미국에 대항하는 또 다른 힘의 축인 유럽연합(EU)의 지원사격을 기대했으나 EU는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 그동안 EU는 북핵 문제 해법에서 한국정부와 보조를 맞춰 왔으나, 정상회의 의장성명을 통해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을 천명했다. 결국 한국의 생각과 다르게 가고 있는 거다.
앞으로도 북한의 비핵화 선제조치와 이에 상응한 미국의 실천적 행동조치를 둘러싸고 북미간에 길고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예상된다. 사실상 시한도 없는 밀고 당기기 싸움이다. 특히 북한과의 2차 핵협상을 이끌 미 행정부의 새로운 ‘한반도 라인업’이 모두 대북 강경파인 매파(hawkish)들로 구축되었다. 비핵화 협상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정부와 미국의 생각의 차이가 단일대오의 균열로 이어지거나, 북미 실무협상에서 강경파들이 감정적으로 충돌한다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 비핵화라는 거대한 체스판이 깨어질 우려도 없지는 않다. 한국의 생각과 미국의 승인을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절실하다.
유영식 박사
경남대학교 박사(북한전공)
한교총 평화통일위원회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