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예종 선교사, “죽기를 각오하고 선교할 사람이 필요하다”
[인터뷰] 최예종 선교사, “죽기를 각오하고 선교할 사람이 필요하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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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재단선교회 한국지부장

1970년대 감신대에서 봉직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故 이창근 장로와 명지대와 이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故 강성일 박사가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썬재단 선교사로 사역을 했다. 1986년 강성일 선교사가 중국으로 선교 자금을 밀반입하던 중 한국에서 갑자기 급성 맹장 수술을 했는데 당뇨가 심해 봉합이 되지 않아 시일이 지체되며 애태우다 할 수 없이 강성일 선교사 대신 당시 전도사였던 최예종 선교사가 선교자금을 운반하면서 썬재단 소속 선교사로 파송 받아 사역하게 됐다. ‘한국썬재단선교회’는 최 선교사가 2년 전 은퇴하고 한국에 미국의 썬재단과 똑같은 방법으로 선교하는 한국 썬재단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본래 썬재단은 공산권과 이슬람권을 선교하기 위해 선교사의 신분을 철저히 위장하여 선교방법 또한 intelligence(비밀, 첩보)를 통한 선교다. 현재 한국지부장인 최예종 선교사를 만나 북한선교의 실태와 한국교회의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여전히 선교를 위해 어디든 나서는 최예종 선교사 사역으로 인해 뒷모습만 담았다. 김유수 기자

 

어려운 상황에서 탈북자들을 한국이나 미국, 태국으로

갈 수 있게 실컷 도와주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부탁 하나만 하자. 내가 당신은 도와준 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다른 거 아니고 꼭 예수 믿어라”라고 말한다.

어떻게 선교사가 되셨나요?

신앙생활은 충청도 예산감리교회에서 시작했다. 당시 부모님이 경주 최씨로서 예산에서 양반의 자부심이 대단하셔서 교회 가면 야단맞던 때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어느 겨울날 새벽,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끌려 교회에 갔다. 당시 새벽설교를 이강산 목사님께서 하고 계셨다. 주일날 교회에 갔더니 친구들도 여럿 있어서 주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께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교회에 다녔다.

원래 나는 전기기사였다. 아버지께서 워싱턴에서 공부하실 때 박윤선 박사와 ‘형님 동생’ 하시던 사이였는데 아버지께서 박 박사님에게 “내 아들 사람 좀 만들어달라”고 해서 신학을 하게 됐다. 아버지가 교회를 안다니셨는데도 교회 다니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한국에서 최선재 목사님이 홍은동에 신학교 시작하던 당시 거기서 공부했다.

북한 선교를 하게 된 것은, 감신대에서 학생처장 하시던 이창근 장로님과 명지대와 이대에서 강의하셨던 강성일 교수님이 미국에 이민 가셔서 예수님을 믿게 됐다. 그 중에 강 교수님이 목사가 되니까 미국 썬재단선교회에서 스카웃을 했다. 그분이 하시던 일이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에게 선교비를 전해주는 것이었는데 1986년도에 중국으로 가더중 한국에서 급성 맹장으로 입원하시면서 대타를 구한 것이 나였다. 중국과 수교가 1992년도에 됐으니 그때만 해도 중국이 북한보다 무서울 때였다. 강 목사님 대신 선교비를 가지고 중국에 들어가 선교사들을 만나면서 ‘선교는 이런 거구나’라고 알게 됐다.

최예종 선교사가 한국에 지부를 세운 썬재단선교회 로고

북한선교를 어떻게 시작하셨고,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내가 1990년도에 두만강변에 있는 화룡에 갔는데 탈북자 할머니 할아버지를 북한 비밀경찰들이 열십자로 손가락을 묶어서 잡아가는 것을 봤다. 그걸 보고 흥분해서 당시 나를 안내하던 연변 깡패 2명과 탈북자를 뺏어왔다. 그때부터 탈북자 선교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탈북자들이 무척 힘들었다. 훈춘에 가면 백사장이 있는데, 거기에 모래를 수북수북하게 쌓아 놨다. 난 처음에 그게 모래채취업자들이 모래를 퍼가려고 한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두만강을 건너다 익사한 탈북자들이 강물에 떠밀려 온 것을 대충 묻어준 공동묘지였다. 중국 사람들도 자기 마을에 시체가 오면 그것을 묻어줘야 동네가 불행한 일이 안 생긴다고 생각해서 언 땅 파기도 그렇고 하니까 대충 모래에 묻어 주는거다. 겨울에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그것이 공동묘지처럼 수십 곳씩 있었다. 그땐 그렇게 고생했다.

탈북자들을 안내하기 위해 중국에서 주먹이 쎈 깡패 3명을 고용해 탈북자들을 구출해왔다. 어려운 상황에서 탈북자들을 한국이나 미국, 태국으로 갈 수 있게 실컷 도와주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부탁 하나만 하자. 내가 당신은 도와준 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다른 거 아니고 꼭 예수 믿어라”라고 말한다.

북한에서 3년 정도 지냈던 적도 있다. 북한은 사람들이 3명이서 모여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몰래 편지를 써서 남의 집에 던져주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산길 바위 위에 전도지를 올려놓거나, 성냥갑보다 작은 성경책을 집에 몰래 던져주기도 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7~8살 먹은 어린애들이 학교도 같이 다니고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어느 날 둘이 죽자 살자 싸우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개구를 한 마리 잡았는데 한명은 개구리를 때리고, 한 명은 그것을 잡았으니까 서로 자기꺼라고 싸움박질을 하고 있는거였다. 그래서 내가 주머니칼로 개구리를 썰어줬다. 그리고 내가 혼자 먹겠다고 숨겨놨던 쌀이랑 설탕도 다 털어서 나눠줬다. 내가 북한에 들어갈 때 75kg이었는데 45kg이 돼서 나왔다.

훈춘에서 할머니가 청년인 손자를 한 명 데리고 사는데 신앙이 좋았다. 내가 그 청년에게 “어떻게든지 너를 한국에 보내 줄테니까 한국 가서 신학해서 선교사가 되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기분이 좋아서 친구한테 이야기를 한 거다. 그 소문이 퍼져서 공안이 잡아다가 두들겨 패면서 누가 한국에 데려간다고 했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죽도록 얻어터지면서도 선교사가 누군지 얘기를 안하는거다. 청년의 할머니가 나한테 와서 어떻게 하냐고 엉엉 우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때 내가 할 일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고민을 하니까 함께 있던 깡패들이 그 사실을 알고 훈춘 공안국장을 납치했다. 그 당시 서장이 선교사만 잡혔다하면 죽도록 두들겨 패서 감옥에 넣었다. 깡패들도 감옥에 가봤기 때문에 자신들이 당한대로 했다. 공안서장을 과수원 창고에 가둬넣고, “선교사가 니 애비를 때려 죽였냐 애미를 때려 죽였냐”면서 두들겨 패줬다. 그리고 무전기로 선교사 석방시키라고 해서 구속 돼있던 선교사 6명을 구출한 적도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도망쳤다.

북한선교 반드시 해야 된다.

그런데 죽을 각오를 하기 전에는 가서는 안 된다.

죽기를 각오하고 선교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만나보고 싶고, 그 길을 열어주고 싶다.

선교사님이 선교하던 당시 북한의 상황은 어땠나요?

내가 제일 화가 나는 것은 북한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북한을 옹호하고 다니는 것이다. 북한은 군 경계를 넘을 때마다 지금도 통행증이 있어야 된다. 예를 들어 평양에서 살려면 15명 이상의 보안서원 등 결재가 나야 평양으로 이사 가서 살 수 있었다. 북한은 마음대로 이사 갈 수가 없다. 이사를 가려면 당국에 허락을 받아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시골에 가서 평양에서 왔다고 하면 꼭 미국에서 살다가 온 것처럼 부러운 듯 쳐다본다. 평양 사람들은 최고의 부자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부러워한다. 북한 시골 사람들은 평양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자기 아버지 집에 가기 위해서 먼저 통행증을 받으면 출발하기 전에 한국으로 말하면 파출소 같은데 신고를 하고 버스를 타고 가서 자기 아버지가 사는 마을에 가면 먼저 파출소에 가서 지금 도착했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갈 때 보리쌀이나 강냉이나 배급표를 가져가야 밥을 먹는다. 난 그렇게 살던 모습을 봤다. 북한은 인간지옥이다.

통일은 절대 되지 않는다. 통일이 된다면 남한의 지도자들이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고모부와 형을 죽일 정도로 잔인한 곳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북한 편을 들어서 두둔하고 그런 사람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분노가 인다. 우리나라가 북한을 도와주는데 소나 쌀은 서민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소는 전쟁무기고, 쌀은 평양으로 가던가 군량미로 쓰인다. 다만 인건비를 위해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가 요즘 필리핀이나 베트남으로 옮기는 것처럼, 개성공단처럼 북한에서 물건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돈 벌어 살게 해주라는 거다. 이북을 마음대로 갔다왔다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 기독교가 들어가면 자연히 망하게 돼있다. 북한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첫째가 반란죄, 두 번째가 기독교 신자다.

한국교회가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선교 반드시 해야 된다. 그런데 죽을 각오를 하기 전에는 가서는 안 된다. 북한에서 얼마나 기독교를, 선교사를 처벌하는가 보게 되면 적응 못하고 돌아올 것이다. 북한에 갔던 선교사 중 살아온 사람이 있나? 미국시민권자 아니면 없다. 내 눈으로 잡아가는 거 봤는데 언제 잡아갔냐고 모른다고 한다. 설사 그동안에 잡혀갔다하면 젊은 사람들은 실탄이 아까워서 쏴죽이지도 않는다. 탄광에 가서 죽을 때까지 일 시키다 죽으면 끝난다. 우리가 제일 겁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하얼빈에서 영사기를 돌려주다 잡혀간 적이 있다. 하얼빈 감옥에 잡혀가서 팬티까지 다 벗기고 작업복을 줬는데 보니까 시뻘건 피가 잔뜩 묻어서 축축하더라. 안 입자니 더 춥고, 입자니 피 냄새가 진동하고 할 수 없이 입고 얼어 죽지 않고 살게 해달라고 온몸을 비비면서 기도했던 적도 있다.

현재는 북한에 갈 선교사가 없다. 사명감을 가지고 공산권이나 이슬람권에 갈 수 있는 선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제일 부러운 게 이슬람권에는 기독교 신자를 죽이고 교회를 폭파시키기 위해서 폭탄을 자기 몸에 감고 터트린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그런 선교사가 있나? 그 사람들이 물론 잘못 된 거지만 그 사람들이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용기와 절개만은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런 사명감을 가진 선교사가 필요하다. 그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순교를 각오할 수 있는 그런 선교사가 양성해야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선교할 수 없다. 교회만 크게 짓는 게 선교가 아니다. 무슬림은 동남아의 선교의 전진기지를 한국으로 삼았다. 그래서 인천에다 땅 사놓고 난리다. 신천지가 여우라면 무슬림은 사자나 늑대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인들이 기도 많이 하고 회개해야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선교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만나보고 싶고, 그 길을 열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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