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와인
기후변화와 와인
  • 박여라 위원
  • 승인 2019.10.17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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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프랑스 파리 만국 박람회를 앞두고 나폴레옹 3세는 보르도 와인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높여 제대로 선보이기 위해 최고 와인을 체계화하라는 주문을 한다. 이에 와인 중개인들은 메독 지역에 이름난 60개 샤토(와이너리)와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근 그라브 지역 샤토를 모아 등급을 매긴다. 샤토의 명성과 와인 시장과 중개인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가격이 기준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1855년 보르도 레드 와인 공식 분류다. 이때 매겨진 등급은 160년이 넘도록 변동사항이 단 2가지였을 뿐, 여러 논란과 수정 제안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매우 유효하다.

이 와인 등급은 보르도 포함 프랑스 전체의 와인을 규정하는 등급체계와는 별개다. 보르도 지역 전체 1만여 생산자가 생산하는 ‘보르도 와인'에 저 61개 샤토에서 만드는 와인은 양으로는 아주 적은 양이다. 1935년 프랑스 와인 원산지 명칭을 규정, 관리하는 국립 기구(INAO)가 설립되며 체계적인 와인 관련 법을 만들고 그에 따른 와인 등급을 정했다. 당연히 등급에 따라 경작 방법과 생산량, 와인 제조 방법에 관한 규제가 많다. (등급이 반드시 품질과 동등하다 할 수 없는, 의도적인 예외가 있긴 하다.) 이 와인을 프랑스 어디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었는지 상관없고 포도가 자란 연도나 포도종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프랑스산 와인' 보다는 와인 라벨에 생산 연도와 원산지 지역 이름을 붙이려면 따라야 하는 규정이 더 많지 않겠는가.

보르도에서 와인을 만들었다는 첫 기록은 4세기 보르도 사람 시인 아우소니우스의 작품이다. ‘그의 조그만 유산에 관하여’라는 시에서 아우소니우스는 자신이 2500 제곱미터 규모의 포도밭을 가지고 있음을 전한다. 그때 이미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 경작이 어느 정도 규모 있게 이뤄지고 있었으니, 실제로 보르도 와인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됐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보르도 와인은 전통적으로 여러 포도품종을 섞어 만든다. ‘전통'이 됐다는 것은 그 관습이 역사를 통해 쓸모 있음이 증명됐다는 뜻이다. 보르도 레드와인은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이라는 두 포도종 위주로 만드는데, 그 이유는 순이 나오고 꽃이 피고 포도가 익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초봄 서리는 어린 순을 얼려버릴 수 있고, 꽃이 필 때 비가 쏟아지면 열매 맺는 데 커다란 방해가 되고, 과실이 한참 익어야 할 가을 악천후야말로 수확에 큰 적이다. 이 지역에서 잘 자라는 두 포도종의 성장 시차와 그에 따른 장단점은 생산지에서 오랜 세월 빚어온 일종의 보험이다.

그런데 기후 온난화로 포도 경작과 그에 따른 와인 생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시적으로는 포도 경작 지역이 북반구 기준으로 북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와인 포도를 재배하기에는 기온이 낮았던 영국 남부지방에서도 생산이 가능해졌다. 프랑스 샴페인보다 와인 생산 북방한계선이 더 올라가 영국에서도 좋은 스파클링 생산이 가능해졌다. 우리나라도 사과 산지가 북쪽으로 옮겨가 강원도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것과 같다. 기존 지역에서는 추수하는 시기가 예전보다 더 이르거나, 너무 뜨거운 여름으로 생산량과 품질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자주 생긴다.

생산에 변화가 생길 것에 대비해 기존의 규정을 바꾸기도 한다. 보르도 와인 포도 경작지 절반에 이르는 지역 생산자들은 지난 7월 기존 보르도 와인 품종에 새로운 품종을 더하는 제안을 통과시키고 INAO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기존 품종에 비해 새 품종들은 높은 산미, 강한 향과 짜임새 있는 맛, 특정 병충해에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경작지역 크기, 와인에 배합 비율은 미미하게 반영될 규정이라도 와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이 품종들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농업의 형태를 바꾸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기초적이며 기후 위기를 맞닥뜨린 지금 궁극적인 대안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와인생산 지역인 캘리포니아 소노마는 5년 전 2019년까지 와인 포도밭을 모두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현재 이 지역 99% 와인 포도 경작지가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인증을 받은 상태다.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 경작 역시 대부분 현대 농축업처럼 한 가지를 대규모로, 집약적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세상은 다양한 생명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인데 말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구에서 수익과 편의를 위해 너무 많이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는 지구를 온실로 만들었다. 높아진 기온의 상승속도를 낮춰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치닫지 않으려면, 그래서 오래된 인류문명으로서 와인 생산과 향유를 계속하려면, 지금의 규정과 관행으로는 안 된다. 당장 바꿔야 한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게 우리 현실이다.

 

박여라 위원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여라 위원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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