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그대로 멈춰라
[예술과 목회] 그대로 멈춰라
  • 박여라 위원
  • 승인 2020.10.31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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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확인한 지난 1월 20일에서부터 아홉 달이 지나 어느덧 연말을 바라보는 계절에 이르렀다. 올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나. 매일 국내 확진자 증감 추이와 세계 동향에 맞춰 개인 방역에 힘쓰며 하루 단위로 살았더니 오가는 계절이 거의 무의미했다. 이제 곧 사계절 한 바퀴를 돌게 되지만, 그 변화를 누리기는커녕 잘 느끼지도 못한 이유다.

올해가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예기치 못한 위기를 전 세계가 하나인 것처럼 겪고 있다. 상황이 나아질 듯 없어질 듯 하다가도 또다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착잡하다. 그 와중에 배움도 적지 않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정지하고 돌아보게 됐다. 교회 공동체는 함께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고 밥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 중요한데, 바로 이것이 바이러스가 전파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러워서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던 전통이며 몸에 밴 습관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하는 아이들 노래는 되풀이되어야 신난다. 제자리에 꼼짝 않고 멈추었다 다시 춤추고를 반복해야 재밌게 놀 수 있다. 그런데 진짜 그냥 그대로 멈춰서야 했다. 음식을 나눠 먹지도, 아예 모이지도 말아야 한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어도 마스크로 얼굴 절반 이상을 가려 눈으로만 표정과 감정을 읽을 수 있다. 가장 즐겁고 기쁜 일이 제일 위험하다니.

그래도 여러 달 지나면서 우리 모두 이 상황에서 함께 헤어나는 방법을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다. 멈추고 나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이동금지령을 내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여러 달 시행했다.

제재가 완화되면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역병이 돌던 1630년 경 당시 사용했던 ‘와인 구멍’(buchette del vino)을 재발견했다. 되도록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출입문이나 창문이 아닌 벽에 낸 구멍 같은 창이다. 와인 젤라토 샌드위치 등을 건넬 수 있을 만큼 작다. 피렌체를 포함한 시에나 피사 등 토스카나 지역에 지금도 150여 개 남아있다.

코로나19는 전례가 없는 세계적 유행병이라고 하지만 17세기에 피렌체 사람들이 최대한 비대면으로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 애썼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 시기가 어떻게든 지나갈 것을 안다. 강제로 멈춰선 이때 구약 성서에서 안식년 규정을 새로, 다시 읽는다.

“여섯 해 동안은 너희가 너희 밭에 씨를 뿌려라. 여섯 해 동안은 너희가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두어라.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나 주가 쉬므로, 땅도 반드시 쉬게 하여야 한다. 그 해에는, 밭에 씨를 뿌려도 안 되며, 포도원을 가꾸어도 안 된다. 거둘 때에, 떨어져 저절로 자란 것들은 거두지 말아야 하며, 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저절로 열린 포도도 따서는 안된다. 이것이 땅의 안식년이다.”(레위기 25장 3~5절)

이 구절 뒤에는 땅이 쉬어야 그 땅에 사는 가축은 물론이고 그 누구라도 땅에서 나는 먹을 것을 얻게 된다는 설명이 따른다. 그런데 오늘날 정통 코셔와인을 상업적으로 만드는 포도원과 양조장이라도 안식년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판단에 현대식 조정을 한다.

안식년에는 특별한 랍비의 감독을 받아 포도원을 가꾼다든지, 포도원을 유대교인이 아닌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긴다든지, 안식년에 이스라엘 땅(에레츠 이스라엘)에서 재배하고 생산한 와인은 수출하지 않는다든지, 안식년에 생산된 와인은 마시지 않는다든지, 안식년이라도 디아스포라 땅에서 재배되고 양조된 와인은 마실 수 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안식년 규정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문자적이라기보다 상징적이다. 가르침의 의미를 새기고 그 뜻에 따라 살고자 신실하게 애쓴다. ‘주일'에 모이기에 힘쓰는 이유는 함께 예배드리고, 형제자매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마시는 일이 중요해서이지 않나.

멈춰 선 올 한 해가 많은 이들이 여러 다양한 이유로 구석구석 힘겹다. 돌아보면 전대미문의 일은 아니다. 아예 몰랐거나, 알았어도 잊었거나 애써 외면했던 일들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췄지만, 내가 춤을 멈춰야 친구도 잘하고 있는지 그러지 못한지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멈춘 김에 돌아보며 회복할 기회를 주신, 다시 춤출 준비를 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경외와 함께 감사드린다. 다음 춤은 이전의 춤과 다르리라.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놀 때 보라. 멈춰서고 난 다음에는 늘 새로운 춤을 춘다.

박여라 위원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박여라 위원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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