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세군 김석태 전 사령관, 임정선 전 사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
[인터뷰] 구세군 김석태 전 사령관, 임정선 전 사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
  • 정성경 기자
  • 승인 2019.03.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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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은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인 캐서린 부스로 시작되어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정신으로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을 실천하고 있다. 군대식의 조직으로 성직자를 사관, 신학교를 사관학교, 교인을 병사 또는 군우라고 부른다.

김석태 전 사령관은 올해 94세로 1986년부터 1991년 17대 사령관을 역임했다. 아내인 임정선 전 사관 또한 올해 82세로 은퇴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사관으로 신실하게 믿음을 실천하고 있다. 김 전 사령관의 살아온 이야기는 1995년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홍성사)로 출판되었다. 일체 통치하에 20년, 북한사회주의 제도 하에 5년, 거제도 포로공화국에서 3년,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은여생을 보내고 있는 김 전 사령관의 삶은 한반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들 부부를 옥성삼 교수(연세대 겸임교수, 본지 기획위원)가 구세군서울제일교회에서 만났다.

김석태 전 사령관의 삶은 한반도의 역사를 담고 있다. 50세에 결혼한 임정선 전 사관과 자신을 살려주신 하나님을 전하고자 신앙을 삶으로 실천 중이다. 정성경 기자 

 

죽음의 위기에서 간절하게 드린 기도

“살려주시면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구세군 사령관으로 성결운동에 앞장 서

“성경에 뭐라고 그랬어? 믿어!”

백수를 바라보고 계신데 장수의 비결과 일상의 즐거움이 있으시다면?

김석태 전 사령관(이하 김) : 예수 잘 믿는 것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이다. 하루하루 성경 읽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산책할 때는 북쪽을 향해서 기도한다.

임정선 전 사관(이하 임) : 책에서도 고백한 말이다. 구세군은 65살에 은퇴하는데, 김 전 사령관의 포로수용소에서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이기에 한국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5년을 졸라서 70세에 그 책을 썼다. 평소에 성경을 각자 읽고, 예배드릴 때는 내가 소리 내어 성경을 읽으면서 받은 감동을 함께 나눈다. 내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나를 가르친다. 남편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이다. 절대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맡기면 끝이다. 그래서 장수하시는 것 같다.

신앙을 갖고 사관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 일제강점기에 북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가 나를 전도했는데 그 친구는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1946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누가 버린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실재하시다’는 것을 믿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믿어지지 않았다. 당시 노동당에 가입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부인해야 되기 때문에 마음이 허락지 않았다. 학교 선생을 하겠느냐,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겠느냐, 그 갈등이 너무 심했다. 고향의 산꼭대기에서 “예수님 당신이 정말 하나님이십니까?”라고 기도를 많이 했다. 그때 작은 책자로 나온 성육신에 대한 책을 읽고 깨달으면서 학교에 사표를 냈다. 예수님의 신성을 깨닫고 나니 농사를 짓거나 나무를 해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때는 교회도 없었고, 집에서 성경과 설교집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나를 반동분자라고 노동당 가입을 강권해 26살에 조선민주당에 가입했다. 그런데 김일성의 계략이었다.

그러다 북한에서 인민군으로 잡혀서 서울까지 왔다. 남한에 남는다는 생각으로 있었는데, 미군들이 구덩이를 깊이 파놓고 해가 지면 다 죽이겠다고 했다. 미군에게도, 남한 대위에게도 내가 조선민주당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해봤지만 여전히 날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그래서 죽는 줄 알았다. 그때 하나님께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한 이후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 다음날 구치소, 형무소, 거제도로 잡혀가 3년을 지냈다. 수용소에는 아주 작은 글씨의 성경 한 권을 전기가 없어서 보초를 서면서 성경을 읽었다. 교회를 안 다녀봐서 세례 받는 것도 사도신경도 몰랐다.

육사야전병원에 생길 때 위생병으로 일하면서 성경을 읽었는데, 포로 석방 후 국군에 들어갔다. 구세군에서 1955년쯤 강원도 춘천에 개척을 했는데, 70이 넘은 할머니가 교사도 하고 설교도 했다. 그래서 내가 해도 되냐고 해서 신나게 3년을 했다. 그때 새로 온 담임 사관이 구세군 사관학교에 가라고 인도해줬다. 제대를 해야 되는데 혈혈단신이었다. 정보작전관에서 신실하게 일해서 부대장이 갈데가 없으면 오라고 했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서 부대장을 찾아갔다. 당시 29000원이 필요했다. 한달에 80원 생활비로, 40원 헌금하고 40원으로 살고 있었다. 그랬더니 재무관을 불러서 만원을 해주고, 쌀 2가마니를 얻어서 팔아서 구세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외국인이 사령관이었다. 그때 사관에서 1등을 했다.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교수로 임명했다. 20여년 있다가 아내를 만났다.

: 서울에서 살면서 구세군을 몰랐다. 예장통합 측 성도였다. 난 개신교인이 아니면 수녀가 됐을 것이다. 서울대에서 음악을 전공하면서 유학을 준비하던 당시 우연히 만난 친구가 구세군으로 초대했다. 힘든 상황에 유학을 고민하다,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준다는 친구의 말이 맴돌아 구세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초등학생 때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성경을 읽은 적이 없어 들어가기 전 성경을 일독했다. 가보니 남편은 교수였다. 사관학교를 나와서 교수로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 지내면서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결혼을 안하겠다는 마음이 흔들렸다. 폐를 잘라내고 투병을 하는데 주위에서 자꾸 남편과 결혼하라고 추천했다. 퇴직한 다음에 느끼는 것은 남편을 보살피기 위해 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석태 전 사령관과 임정선 전 사관이 결혼할 때, 지인 중 한분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주님, 우리가 오래 기다렸습니다." 정성경 기자

구세군 사관은 부부가 함께 사관으로 섬겨야 하는데, 구세군의 사역의 장점과 어려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 혼자일 때는 공부만 했다. 아내가 음악을 전공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예배를 드릴 때, 내가 사회를 보면 아내가 설교를 하고, 아내가 사회를 보면 내가 설교를 한다. 여성이 충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함께 협력할 수 있다는 것에 구세군의 제도는 참 좋다. 또한 식구수대로 생활비가 나오는 것도 큰 장점이다.

: 이미 충분히 혼자 오래 살다 만났기 때문에 같이 사역하는 것이 좋았다. 구세군을 시작할 때 가난한 사람을 쫓아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윌리엄 부스 혼자가 아니라 캐서린 부스도 같이 했다. 구세군은 제일 큰 장점은 모든 규칙이 세계적으로 통일됐다는 것과 남녀의 역할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무래도 문화적인 영향으로 여자 사령관도 나온 적이 없다.

부부가 하다보면 육아가 있기 때문에 여성의 역할이 더 크다. 우리 같은 경우는 같이 행정적인 일을 했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면 집안일은 내가 도맡아 했다. 남편이 안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어차피 다시 해야되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 마음으로 진정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괜찮다. 구세군은 각각 생활비를 받는데, 사관에게 가장 큰 유혹이 생활비다. 극기 생활을 해야된다. 하지만 말씀대로 다 맡기고 살면 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해서 힘든거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우리가 은퇴를 했는데, 이후를 걱정했는데 남편이 “성경에 뭐라 그랬어? 믿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한 일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넘치게 지키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빚지게 안하신다. 퇴직하고 그것을 점점 더 느낀다. 남편의 믿음이 우리를 이렇게 살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들에게도 사관을 권하는데 아들은 삯꾼 목사가 될꺼라며 안한다고 한다. 그래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17대(1986~1991) 한국 구세군 사령관으로 역임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역은 무엇인가요?

: “스스로 성결케 하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성결운동을 벌였다. 사령관으로 부정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자고 주장했다. 특별히 교회와 목회자들이 앞장서서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목사는 ’나처럼 살라‘고 하는 거 아니냐.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나. 내가 부정을 했다면 지금까지 못 살았을 것이다. 부정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다. 사회복지를 위해 정부 사람들이 구세군에 오게 되면 서류가 아무리 잔뜩 쌓여있어도 그냥 도장만 찍고 간다. 구세군의 정직함을 믿는 것이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찰할 부분이 있다면?

: 통일을 하려면 이북보다 좋은 제도를 가지고 해야 한다.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 선교사들에게 교육받은 여학생들이 애국운동을 한 것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보여준다. 이북에서 김일성의 위대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가르친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들이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지금 꿈꾸는 일이 있으신가요?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부흥하는 교회를 보면 성경을 제대로 전하는 목회자가 있다. 성경 신구약을 100번은 읽어야 한다.

: 후배 사관들에게 믿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걱정하지 말아라. 맡기니까 알아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실감하면서 산다. 그게 요즘의 즐거움이다. “이렇게 축복하셨네 이렇게 채워주시네”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또, 부르실 때 아프지 않게 부르시면 좋겠다. 남편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이산가족상봉이 아닌 자유롭게 북한을 다니기를 바란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김석태 전 사령관은 "성결하라", 임정선 전 사관은 "믿음으로 맡기라"고 당부했다. 정성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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