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북한교회사48] 황해도 노회사13 김익두 목사의 최후 순교(2)교회당안으로 들어온 공산당은 김익두 목사에게 “네가 목사냐”고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총 칼을 들고 들어왔나?” 인민군들은 김익두 목사에게 압도되어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러나 주춤했던 인민군들이 총 끝에 칼을 착검한 대검으로 김익두 목사 가슴을 쿡쿡 찔렀다. 김익두 목사는 “무례하다. 창끝을 치워라 어디에다 함부로 총을 대느냐?” 김익두는 전혀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인민군 장교인듯한 사람이 김익두 목사를 향해 윽박질렀다. “공산주의가 비단보 똥 싼 거라고?” 김익두는 태연 오피니언 | 황기식 목사 | 2020-08-22 00:05 [북한교회사47] 황해도 노회사12 김익두 목사의 순교 이야기를 생생하게 증언하기 위해서는 황해도, 신천, 재령, 반공의거 사건(1950년 10월13일)을 소상하게 밝혀야만 김익두 목사의 순교담론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김익두 목사는 신천 반공의거 사건과 관련하여 죽었기 때문이요, 그가 5년 동안(1945년 해방- 1950.10 순교)겪었던 공산치하 속에서 공산당의 허구성을 설교를 통해서 백성을 깨우쳤기 때문이다.김익두 목사는 사실 강양욱 목사의 꾐에 빠져 조선기독교연맹에 가입했다. 공산당이 무엇인지 모르고 해방되어 통일된 조직에서 목회 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품고 오피니언 | 황기식 목사 | 2020-07-24 11:00 [북한교회사45] 황해도 교회사 10 목사의 목회사역김익두 목사는 평양신학3기생으로 졸업하고 1910. 9. 19. 신천군 염수동 예배당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황해도 신천교회를 시무했다. 신천교회는 신천서부교회와 신천동부교회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김익두 목사는 신천서부교회에서 전도사와 담임목사로 28년간 목회한 후 1924년 신천을 떠나 서울 남대문교회로 취임하여 사역했다. 그리고 다시 1930년 신천서부교회로 청빙 받아 취임하여 시무했다. 그는 묘졸교회, 양정교회, 온정리교회, 풍천교회, 석당교회, 보양교회, 문화읍교회 등 150여개 교회를 개척했다. 그가 오피니언 | 황기식 목사 | 2020-06-12 19:00 [스승의날 특집]세종고등학교 반양균 수학교사, ‘무한’을 가르치며 ‘무한한 존재’를 전하다 “기독교사지만 종교 얘기 어려워하나님 중심의 생활 가르쳐야…결과 중요시하는 세상이지만과정을 고민하는 친구들 되길”지난해 12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중‧고생 희망직업 1위로 교사가 꼽혔다. 하지만 지난 1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진행한 ‘제39회 스승의날 기념 교원 인식 설문조사’에서 “현재 교직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한지”에 대해 “그렇다”라고 응답한 교사들은 32.1%였다. 지난해 52.4%에 비해 급락한 수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교육계도 처음으로 온라인 개학을 맞이하면서 “교사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다음세대 | 정성경 기자 | 2020-05-15 13:31 [인터뷰] 송용걸 목사(신천교회 은퇴 목사), “하나님의 눈물이 지금까지 이끄셨다” 송용걸 목사가 개척한 시카고 헤브론교회는 최대 한인교회로 성장했다. 그러던 2007년, 성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60세가 되던 해 그곳을 떠나 서울 신천교회에 부임했다. “교회가 거대해질수록 사유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70세가 되어 신천교회를 은퇴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지난 해에는 은퇴 기념으로 ‘하나님! 절 울리셨습니다’를 출판하며 목회여정을 담담히 기록했다. 현재 부산에서 해운대고를 빌려 홍민기 목사와 ‘가나안 성도’를 위해 사역하며 세계 곳곳으로 집회를 다니는 송 목사를 만나 ‘쉬지 않는 사역’ 얘 목회 | 정성경 기자 | 2019-10-18 15:00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