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누드(Nude)와 몸의 예술
[기획 특집] 누드(Nude)와 몸의 예술
  • 이상랑 위원
  • 승인 2021.10.25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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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목회연구원 예술신학 콜로키움

 

이상랑 위원(예술목회연구원)

INTRO

왜 누드화를 보십니까? 또는 누드화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누드화를 보는 궁극적인 목적이 즉물적, 유혹적이자 성적인 욕망과 욕구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신지요? (남성들이 누드화를 많이 보신다는 가정하에) 두 번째 질문입니다. 누드가 무엇입니까?

 

I. 누드의 정의

일반적으로 누드는 남성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보는 것이 많습니다. 누드는 기원전 5C 고대그리스의 남성 조각부터 시작되어 중세 때는 차단되었다가, 르네상스 시기에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18세기까지 신화와 종교화에서 주로 등장하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여성 누드를 감상하는 주체가 권력과 지위 있는 남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859년 영국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진화생물학의 토대로 성(性)을 추구하는 방식에서 남성은 적극적이며 능동적이라 하였고 여성은 소극적, 수동적이라 밝힌 바 있습니다. 라틴어의 베뉘스 푸티카(Venus Pudica, 정숙한 비너스)와도 관련이 있고, 르네상스 시기에 등장하는 비너스의 대부분이 오른팔은 자신의 가슴을, 왼손은 자신의 음부를 가리는 정숙한 여인의 자세로 나오게 됩니다. 그림에서 이 자세로 그려지지 않으면 외설이 되었던 시기입니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지그몬트 프로이트(1856-1936)의 19세기의 키워드라 볼 수 있는 ‘육체와 성’이 기점으로 유럽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회화의 역사에서 누드가 폭발적으로 나오게 되는 촉발점이 된 셈이지요. 영국 미술사학자 케네스 맥갠치클라크(Kenneth Mackenzie Clark 1904-1983)는 자신의 책 ‘The Nude'에서 벌거벗은 몸은(naked)은 그저 옷을 입고 있지 않은 상태이고, 누드(Nude)는 예술의 한 형식이라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누드는(nude)는 누드라는 옷을 입은 한 형태라는 거지요. 누드의 자세에도 정면, 측면, 후면 등과 오브제로 역사적인 시기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예 ;부채, 신발, 악기 등) 누드모델의 해부학적인 골격으로 나라를 알 수도 있으며, 누드 사진, 누드 조각, 건축에서 나타나는 누드의 모습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누드가 언제나 관습에 의해 정해지며 이러한 관습의 원리는 특정한 미술 전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누드의 역사에서 몸은 각각 변화하는 시대상과 세계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II. 신화 속의 누드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의 ‘우로비노의 비너스’는 에드와르 마네의 올랭피아까지 끌고 옵니다. 기존 누드화의 성스러움이나 숭고함이 없이 말이죠. 수줍은 기색없이 도발적인 눈빛과 목에 두른 검은 리본과 팔찌는 당연히 노예나 종속된 사랑을 의미하는 코드입니다. 나폴레옹 3세가 반한 알렉산드로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의 비너스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구별되어집니다. 반대로 브론치노의 ‘시간과 사랑의 알레고리’는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누드이지요. 피렌체의 대 공작이 프랑스 왕에게 준 선물로 여인에게 입을 맞추는 소년은 에로스(큐피트)이며 여인은 비너스(아프로디테)입니다. 그녀의 자세는 두 사람의 입맞춤과는 상관없이 육체의 각 부분마다 남자들의 눈에 잘 보이도록 그려져 있습니다. 마치 이집트의 그림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신체의 부조화지만, 그림의 주제는 바니타스와 사랑의 이중성입니다. 신화 속의 누드를 이야기하자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요?

미셀푸코는 올랭피아의 장면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파렴치한 스캔들은, 다름 아닌 마네가 등장인물을 비추는 빛을 이용하는 방식에서 온 것이다. 그림에서 올랭피아는 하나의 빛에 자신의 몸을 드러낸다. 그 빛은 그림의 내부에 등장하는 어떤 창문, 혹은 불빛으로부터 오는 측면에서 비추어지는 부드러운 것이 아니며 단도직입적이고, 직접적으로 올랭피아의 정면으로부터 오는 격렬한 빛이다. 이 빛은 결국 화폭의 앞, 즉 관람자의 자리 혹은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올랭피아는 다름 아닌 화폭 외부의 시선, 혹은 빛에 의해 발가벗겨져 ‘가시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벌거벗음과 가시성의 책임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시선이다.”

(La peintre de Manet 마네의 그림 중에서-미셀푸코)

(Lucas Cranach l'Ancien, 1472~1553, 1526년 작)

III. 성서화와 Nude

누드화의 전통에서 최초의 누드는 ‘아담과 이브’입니다.

창세기 2장 25절 말씀에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또한 3장 7절에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 연속적인 이야기 장면은 사라지고 선악과(라틴어Malum 악, 사과)를 먹은 후에 벌거벗음을 알게 되고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순간이거나, 둘 사이의 관계 보다는 관람자를 의식하는 그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선악과가 사과나무로 그려졌다는 사실도 재미있습니다. 성경에서 누드화는 아담과 하와를 필두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는 장면, 다윗과 밧세바, 삼손과 데릴라 등 외경의 ‘수산나와 장로들’등도 인기있는 주제가 됩니다.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와 독일의 알버레트 뒤러와 3인방이자 관련이 깊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하와에선 선악과에서 그리스도 보혈의 상징인 포도나무의 포도알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IV. 화가와 Nude

에곤쉴레의 누드는 해부학적입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스승이자 친구였던 클림트와는 현저히 다릅니다. 19세기 말, 빈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주축을 이루는 가운데 에로티시즘의 화가로 두 사람이 등장하게 되지요. 여인들이 뿜어내는 유혹과 관능의 뿌리 누드화에서 클림트는 장식적인 문양과 비잔티움의 상징적인 우의표현이 앞서고 에곤쉴레의 누드화는 비틀어지고, 기괴하고, 날카롭고 불안한 선입니다. 사랑의 여신 에로스를 자기 자신이 되는 벌거벗은 몸으로 성애를 나타냅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 성애의 대부분의 이미지는 똑바로 정면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가 주인공이자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공유하는 또 다른 신비감이 주관적이자 객관적인 두 가지의 결합된 힘으로, 화가와 누드를 묶어놓아서 안도감을 풀어냅니다.

그렇게 누드화는 벌거벗은 육체만이 아닌 자체의 권위로 이미지의 언어를 가집니다.

“적어도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염두에 두세요.”

(Ponete mente almen com'io son bella)

-단테 ‘향연’ 2권 1장 6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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