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사순절기 한 복판에 들어가면서 사제성찰
[특별기고] 사순절기 한 복판에 들어가면서 사제성찰
  • 유낙준 주교
  • 승인 2021.03.0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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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ktetos 에픽테토스와 함께 하는 사제성찰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한 삶을 사는 것이다. 선한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톨스토이).”

에픽테토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는 그리스사람으로 55년에 태어나 135년에 별세하신 노예출신으로 후에 자유인이 되었고 지체장애인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왕과는 관계는 좋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신과의 관계를 분리해 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논리를 펼쳐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좋아한 인물입니다.

1. 내가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대한성공회 대전교구는 작은 교회들로 이루어졌기에 사람이 적고 땅도 적어서 신도들이 스스로 움추려드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때마다 ‘너무 세속적이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이어서갖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큰 것을 좋아하는 현대인의 인식에 젖어 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속적인 잣대가 그리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솟구칩니다. 우리 안에는 하느님이 주신 이상이 있는데 그 이상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여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그 이상을 추구하지 못하게 하는 장해물도 우리 안에 이상과 함께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상을 보지만 장해물이 이상을 가두기까지도 합니다. 이제는 장해물이 이상을 가로막게 해서는 안 될 시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성공회에게 누구도 지니지 못한 독보적인 힘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찾으면 됩니다. 사제년피정 강사로 오신 김홍식신부님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습니다. ‘성공회가 갖는 장점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셔요.’ ‘영어로 예배하는 것을 최고로 아름답게 올리는 곳이 성공회다.’라고 알려지면 좋을 것입니다. 성공회 전례전통이 아름답습니다. 동시에 성공회 복음전통이 아름다운데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잘 받아들여서 발전시키면 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인간이 갖는 합리성이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란 것을 에픽테토스 철학자는 일찍이 제기했습니다. 성공회 신앙이 갖는 합리성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 성공회 신앙 안의 하느님의 본성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많은데 이것이 성공회의 독보적인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공회가 가진 독보적인 힘을 잘 발휘하는 것이 성공회 선교의 지름길입니다.

2.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본질을 기억하자: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친척과 친구와 성도와의 우정을 공동체의 삶 속에서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본성을 지닌 만물과 자신이 연결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일부임을 인식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자연 속에서 자신을 인식할 때 하느님의 본성인 거룩함으로 살게 됩니다. 거룩함은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거룩성에 가까워질수록 영혼이 맑게 됩니다. 세속에 지친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이 맑은 영혼이기를 원합니다. 성공회 신앙은 거룩성을 지닌 신앙입니다. 일본 도후쿠교구의 가토주교님이 제게 거룩할 성 聖 자를 한자로 써서 액자에 담아서 제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본성을 우리 안에 자리잡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자 성경공부를 하고 예수님처럼 살고자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본질인 거룩성을 내 안에 머물게 하는 것이 만물을 사랑하는 길이고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인 자연과 내가 분리되어 있지 않을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세상 사람들이 성공회 성도 안에서 거룩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거룩성을 보여 주어 사랑의 하느님을 세상에 비치는 성공회 성도이시길 빕니다.

3.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자신을 들여다보라:

외부의 일로 자신 안을 흩뜨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외부는 나의 밖입니다. 나의 밖의 일로 내 안을 산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부의 일이 오면 내 안을 더 고요하게 만들면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저는 단단한 사람이 아니어서 외부의 바람이 불면 제 안의 본질까지도 크게 흔들려 힘겨워하면서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단단한 사람을 보면 매우 부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질까?’를 수없이 질문하면서 살았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의 관계가 세워진다는 것은 믿음에 기초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초석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믿음은 하느님과의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사람과의 믿음관계가 세워집니다. 하느님과의 믿음관계가 세워지면 외부의 바람이 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저 외부의 바람이게 됩니다. 외부의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흩날리게 할 뿐입니다. 외부의 바람으로 제 안이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것을 사실대로 바라보는 객관화 작업이 필요한 것입니다. 수없이 어려움이 오는 인생인데 그 어려움으로 우리의 가슴이 크게 확장되는 훈련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좋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외부의 일로 자신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의 영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지옥입니다. 하느님이 만물에 심어 주신 하느님의 영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할 일입니다. 아직도 외부의 바람에 흔들리지만 적게 흔들리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이에 맞는 어려움이 또한 다가옵니다. 점차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도록 자신 안의 하느님을 붙잡는 인생이기를 바랍니다.

4. 미래가 불안하면 점쟁이를 찾지 말고 신을 찾아라:

미래가 불안하면 중심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산만해집니다. 그러나 중심이 튼튼하고 하느님을 꼭 붙잡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더 기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꼭 부여잡고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쟁이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세상의 통계 숫자에 익숙한 점쟁이들의 사탕발림의 놀이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숫자가 인생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허약한 숫자보다 훨씬 강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그 믿음이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불안함을 사라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알 수 없으면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는 항상 불안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시각입니다. 알지 못한 미래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희망이 동시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부정성으로 바라보는 훈련을 한 사람의 얼굴은 늘 찌든 어두운 얼굴을 하지만 미래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인생훈련을 한 사람은 같은 미래를 보면서도 늘 희망을 찾는 밝은 얼굴이 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미래를 희망으로 주시는 분으로 믿는 성공회 신앙인은 미래를 희망으로 세우는 리더입니다. 이 풍진 세상에 희망을 세우는 성공회 성도를 한민족이 바라고 온 인류가 바랍니다. 성공회 성도는 하느님에게서 빛을 받기에 인류의 리더로 사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친절과 기쁨이 충만한 사람이고자 원한다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늘 지켜야 할 태도와 본보기형의 인간을 정하라:

앞길이 막막할 때 우리는 길을 찾으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특별한 상황을 생각하여 일상에서 자신이 막막할 때 지킬 원칙을 세워두면 좋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오면 민첩하게 대처하 게 됩니다. 사도 바우로는 신앙생활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위험한 상황에 굼뜨지 않고 민첩하게 대처하려면 자신을 수없이 훈련해야 합니다. 특히 영적인 삶도 이와 같다고 바우로는 자신의 인생여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자신의 안내 역할을 할 모델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개 부모님이 모델이고 학교 선생님이 모델이고 친구가 모델이 됩니다. 성도들은 아브라함이 모델이고 모세가 모델이고 베드로와 바우로가 모델로 가슴에 모실 것입니다. 특별히 성공회 성도들은 온몸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으로 사신 구세실주교님이 모델이고 가난한 사람과의 연대를 지키는 신앙인의 공동체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선포하시며 그렇게 사신 김요한주교님이 영적인 모델로 가슴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성공회 신앙인들이 갖는 독보적인 힘이 이분들엑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아주 가까운 사람을 모델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인간을 영적인 본보기 형의 인간인 모델로 정해서 다양한 상황을 그때 그때마다 어떻게 대하는지를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모델이 누구인지를 늘 상정하여 자신의 앞에 다가선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를 자신에게 적용하며 풀어나가면 됩니다. 물론 시기마다 처한 상황마다 모델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1989년 최인정선생님이 충남대학병원에서 암으로 고생하실 때 최선생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가장 가까이 계신 신영복선생님을 늘 자세히 파악하고 분석하여 그 선생님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길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모시면서 신영복선생님에게서 진리로 사는 길을 배우게 되었고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신영복선생님이 별세하시기 직전에 세례성사를 베풀었고 조병성사를 주교로 베풀게 되었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성사를 베풀게 하는 놀라운 시간이 되어 신영복선생님이 하느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진리로 앞선 제자인 베드로와 경계선 너머의 사람들에게 진리를 알린 바우로라는 세례명을 신영복선생님에게 주었습니다. 제가 한 사람에게 두 가지의 이름을 준 것입니다. 지금은 구미에서 고결하게 사시는 김장호 요나단신부님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자 합니다. 고결하게 사시는 하느님의 사람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 귀하게 하느님이 은총을 주십니다.

6. 상실을 겪을 때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여기라:

우리는 상실의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우겨대는데 선수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하면 그 상실의 자리가 우리가 사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늘 상실을 겪으면서 사는 게 인생이니까요. 아픔과 고생은 내 인생에서 없을 것으로 여기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픔과 어려움과 고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괴팍한 성격을 지닌 괴물이 고요하고 부드러운 인간으로 되기까지 수없는 고통과 어려움과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영적인 사람이 되기까지는 희생과 수난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이 무엇입니까? 아픔과 고통의 끝이 죽음이니 죽음이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상실감은 우리를 죽음과 삶이 함께 존재하는 자리에 머물게 합니다. 죽음과 삶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그 자리가 하느님이 계신 자리입니다. 고생의 자리, 어려운 자리, 그리고 아픈 자리일수록 하느님이 오래 머무시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자신이 서 있다면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느끼는 자리이어야 합니다. 아프고 쓰리고 숨이 막히는 자리가 하느님이 머무시는 자리입니다.

사랑으로만 운영될 성가정과 사랑으로만 운영되는 교회는 희생으로 사랑을 드러내는 곳입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희생을 바치는 곳이 성가정과 성교회입니다. 상실이 큰 곳에서 가장 큰 은총이 되는 곳이 성가정과 성교회입니다. 죽기까지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친 예수님을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상실의 고통이 큰 자리에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처럼, 이집트를 떠난 모세처럼 우리도 익숙한 자리에서 새로운 자리로 이동하여야 할 것입니다. 바이러스는 우리를 오래된 익숙한 삶의 자리에서 새로운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해준 상징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는 고통과 아픔과 상처라는 희생을 통해서 새롭게 오는 것입니다.

* 에픽테토스 철학자가 성공회 사제가 사목생활을 하는데 좋은 친구로 안내해 줄 것입니다. *

1. 내가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2.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본질을 기억하자.

3.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자신을 들여다 보라.

4. 미래가 불안하면 점쟁이를 찾지 말고 신을 찾아라.

5. 늘 지켜야 할 태도와 본보기형의 인간을 정하라.

6. 상실을 겪을 때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여기라.

 

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주교는 ‘길위의 신부’라는 별명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인생을 바쳤다. 권은주 기자
유낙준 모세 주교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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