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호]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 쓸쓸한 성탄절
[108호]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 쓸쓸한 성탄절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12.23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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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한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올 한해 사람들은 별로 행복해 하지 않았던 같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로 오신 주님을 찬양하며 우리 모두의 가정에도 성탄의 기쁨이 가득하기를 빈다.

주님이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 구유에 오심으로 하늘 문이 열리고 땅이 입을 열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기다려도 자기 품으로 돌아오지 않는 피조물들을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높고 높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의 천한 말구유에 직접 찾아오신 사건이다. 크리스마스의 캐럴을 들으면 한여름에도 갑자기 흰 눈이 떠오르고, ‘고요한밤 거룩한 밤’을 들으면 대낮도 갑자기 깊은 밤처럼 느껴진다. 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말 프랑스 북부,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서 각각의 참호에서 대치하던 영국과 독일 병사들이 성탄절에 교전을 멈추고 중간지대로 나와 함께 어울렸던 ‘성탄절 휴전’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1891년 성탄절 무렵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 바다에 한 난파선이 표류하다가 극적으로 해안에 닿았다. 삶의 생사를 넘나들며 천신만고 끝에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도착한 선원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었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도시빈민들의 구제활동을 하던 조셉 맥피는 이러한 상황을 우연히 알게 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 밤새 고민하다가 무릎을 쳤다. 그는 즉시 부두로 나가서 큰솥에 다리를 달아 길거리에 내놓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는 글을 써 붙였다. 그러자 그 솥 안에는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돈이 쌓였다. 오늘날 전 세계 130여 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되면 실시하는 자선냄비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28년 12월 처음으로 서울의 명동에 자선냄비가 등장하였다. 1865년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와 캐서린 부부는 신앙의 전통을 따르며 가난구제와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1878년 체계적이고 효율적 봉사를 위해 군대식제도를 도입했고 자신들의 단체를 세상을 구하는 하나님의 군대라는 의미의 ‘구세군’이라 명명(命名)하였다.

예수님오심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 질수 있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우리는 기리고 축하하지만, 예수님에게는 어떤 날인가? 초대교회의 이레니우스(Irenius)는 하늘보좌에서 음부까지 내려가시는 것이며, 생명이 죽음 당함을 허용하시는 것이며, 승리이신 그분의 패배를 허용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루터는 ‘역으로의 법칙’이라고 하였다.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맡은 이들이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다. 믿음을 상실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성탄절에 잃어버린 ‘나’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해야한다. 1884년 9월 22일 서울에 도착한 알렌(Horace N, Allen)은 미국에서 배달된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희망에 부풀었으나 12월 4일 갑신정변을 겪음으로서 그해 12월 25일 혼자서 밝힌 크리스마스촛불은 참으로 초라했다. 하지만 그 빛이 조선의 앞날을 밝힌 큰 오랫동안 일해 온 가정부가 쫓겨나면서 지갑에서 지폐를 몇 장 꺼내 그집 개에게 주었다. 주인이 “개에게 돈을 왜 주나?” 그러자 가정부가 나가면서 대답했다. “이 개는 나를 가장 많이 도와준 친구예요, 특히 접시 닦는 일을 많이 도와줬죠,”하니 집주인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약자를 돕자. 올해는 지긋지긋한 코로나로 인해 ‘살았다’기 보다 ‘견뎠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이 한해가 가는데, 전 국민에게 한 살씩 빼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의 낮은 곳으로 가서 이 백성들의 상처를 싸매주는 붕대가 되고, 눈물을 닦아주는 타월이 되고,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자선냄비’가 되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있는 복된 성탄이 되었으면 한다.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고통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는 것이지만, 코로나 고통(pain)이 특별한 괴로움(suffering)이 되는 것은 ‘외로움’이다. “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생명의 빛, 온 땅 가득히 비춰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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