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호]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107호]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12.09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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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한 분은 젊은 날에 나를 알아보고 이끌어주신 황성수 목사님이고 신문사에서 나와 방황하고 있을 때 붙잡아 주신분이 뿌리깊은나무회사 한창기 사장님이다. 오늘날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영향을 주신분인데 아마도 필자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모두 그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적으로는 소망교회 곽선희 원로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고 소망교회를 출석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김지철 은퇴목사님도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시무장로로서 협력을 해왔고 필자를 당회서기를 시켜서 함께 사역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학창시절부터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황규명, 김유식, 임종표 목사님이다. 학생운동도 함께하고 마음속을 털어놓았던 친구들이다. 앞서 열거한 분들은 내 인생에서 뺄 수없는 감사한 분들이다. 실족할 뻔 했을 때 마다 붙잡아 주신 분들이다. 우리가족들에게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다. 지금 우리교단에서도 친한 목사님. 장로님들이 많지만 여기서 열거하기는 그렇다.

필자가 아는 지인 중 홀로된 어머니의 유복녀로 태어난 딸이 있다. 그 딸은 어머니의 희생적인 수고로 유학도 하고, 나중에는 저명한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이후 다니던 교회를 떠났지만 딸은 어머니의 권면으로 교회에 다시나가게 되었다. 그녀는 잠시 교회에 다시 출석하고는 실망이 컸다. 교인들이 모여서 남의 험담을 하고, 장로가 처음 본 자신에게 아들 대학 입학을 청탁하고, 회의실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고 하면서, 너무 실망했다고 딸은 어머니에게 느낀 바를 말하고 어머니의 손을 끌고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 때 조용하기만 하던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딱 하루 교회에 나와서는 참 많이도 봤구나." 이 말에 딸은 마음이 무너졌다. 생각 없이 교회에 다닌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였는데 어머니가 보는 수준과 자기가 보는 수준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었다.

누구든 자기의 수준만큼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산다. 그런데 대개 내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들이다. 먼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것만 보인다. 자꾸 거짓이 보인다면 내가 거짓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자꾸 교만이 보인다면 내가 교만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사기꾼의 눈에는 사기꾼이 가장 잘 보이는 것이다. 섬기는 사람 옆으로 가 보시라. 섬김만 보인다. 기도의 사람 옆으로 가 보시라. 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이다.

인격의 변화는 믿음의 발걸음에 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볼 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녹아서 작아지는 비누와 같다. 비누는 사용 할 때 마다 자기 살이 녹아서 작아지며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그 때 마다 상대의 더러움을 없애준다. 만일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기희생을 통해 사회에 공헌 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 같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기 것을 아끼려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한 말이다.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는 삶만큼 숭고한 삶은 없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인간관계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고, 동료애가 그렇고, 크리스천의 사랑이 그렇다. 비누처럼 나를 희생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삶!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삶이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위해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마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이 아니다.

그리하기에 행복한 삶에 대해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우는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했다. 감사한 만큼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 했다. 행복은 소유에 정 비례하지 않다. 감사가 없는 마음은 지옥과 같고 감사가 없는 사람은 메마른 광야와 같은 것이다.

이창연 장로(소망교회, NCCK감사)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CBS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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