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호] 적대(hostility)와 환대(hospitality)
[89호] 적대(hostility)와 환대(hospitality)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04.16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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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 것도
세상이 어두워져서가 아니라
내 안에 빛이 빠르게 소멸해가기 때문이다.
없는 적을 만들기보다 나를,
우리를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바야흐로 봄이다. 할 일은 산더미 같다. 고향에서 유일하게 고학력 농부인 종가댁 형님으로부터 “묵은 고추대도 태워야 하고, 겨우내 미친년 속곳처럼 너플 거리던 밭두렁의 멀칭도 벗겨 내야 하고, 거름도 내야 하고, 생석회도 뿌려야 하고, 동네서 유일하게 트랙터 가진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알랑방귀 뀌며 동네 밭갈이까지 부탁하니 천둥소리에 개 뛰듯 바쁘다”고 엄살이다. 그러면서도 나라 걱정이 태산이다. 자기는 안보, 경제, 나라장래가 걱정이란다. 말끝마다 ‘좋아진다’고 하는 말 못 믿겠단다. ‘괜찮다’는 말만 누에 뽕잎 갉아먹듯 주절거리는 나라를 ‘괜찮지 않은’ 백성들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걱정해 주어야 할 판이라고 말한다.

올해 부활절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대규모 개신교 코리아 이스터(Easter) 퍼레이드로 부활절 행사를 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로 불발되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타고 한국에 온 배 모양의 퍼레이드도 계획 했는데 무산되었다. 이날을 기념하여 현재의 초 갈등시대를 대화의 시대로 바꾸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안타깝다.

하나님의 언어는 세상을 무작정 미워하게 만드는 적대(hostility)가 아니라 세상을 끝까지 신뢰하게 만드는 환대(hospitality)이다. 다름을 그릇됨으로 정죄했던 습관을 내려놓을 때다. 더 높은 자리를 탐내며 홀로 빛났으면 하는 숨겨진 욕망들을 정직하게 내려놓을 시간이다. 그리고 새로운 나를 찾아 순례의 첫걸음을 시작할 시간이다. 내 안에 쌓인 편견과 내 습성에 배인 관성을 벗겨내지 않고 어찌 새로운 세계로 한걸음인들 들여놓을 수가 있을까, 나를 비워내지 않고 다른 누군가를 환대할 방법은 없다. 예수께서 빈자의 땅 갈릴리로 가라하신 이유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고 공격과 비난으로 평화를 얻을 수 없음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빛의 힘보다 어둠의 힘을 두려워한다. 부자나 권력자와 가까이 지내다가 망가지지 않는 성직자를 본 적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다가 회개하지 못한 성직자를 본 적도 없다. “농부는 오늘 심은 씨앗에서 새싹이 돋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산다.” 믿음의 사람 오스카 로메로의 말이다. 성경은 안식일에 예물을 드리기에 앞서 형제와 화목해야한다고 한다. 어려운 일이다.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보다 대면해서 자신의 잘못을 청하는 일이 더 어렵다. 빛이 되어야할 교회가 세상을 더 어둡게 한다.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부패의 싹을 키워 세상을 더 어지럽힌다.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에 갈등을 더 부추긴다. 걱정을 덜어야 할 교회가 세상에 걱정거리를 더해준다.

우리 안에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빛이 가장 필요한 곳은 이제 세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가장 어두운 곳도 등잔 밑이 아닌 우리의 발밑이다. 너무 밝은 것만 좇다가 그만 그 빛에 눈이 멀어버린 것 같다.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누군가 쓰러뜨리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 야수의 본능만 남는다. 교회가 추락하는 것도 누군가가 쓰러뜨렸기 때문이 아니다. 위기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온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도 세상이 어두워져서가 아니라 내 안에 빛이 빠르게 소멸해가기 때문이다. 없는 적을 만들기보다 나를, 우리를 먼저 살펴야 하는 이유다.

1950년 여름, 국군이 인민군을 막기 위해 낙동강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펴고 버티고 있는데 피난민들은 결사적으로 강을 먼저 건너려고 아우성이었다. 군인과 경찰은 후방의 치안확보와 질서유지를 위해 이들의 신분 조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신분이 확인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도강(渡江)을 허용했는데 기독교인이 확인되면 우선권을 받게 되었다. 이를 안 대구 남산교회의 박인서 장로는 한탄하면서 “일이 잘못되었소. 기독교 교인은 언제 어디서 죽어도 구원받고 천국 갈 사람이니 꼴찌로 하고 불신자를 먼저 피난시켜 예수 믿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어야하오” 하며 이를 주장하였다 한다. 대구남산교회 70년사를 보고 감동했다. 필자는 그를 본 적도 없지만 한동안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멍해 있었다. 박인서 장로님은 예수님의 참 제자시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목사, 장로들이 사역의 즐거움은 알지만 주님과의 교제의 즐거움을 모른 것 같기도 하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NCCK 감사
CBS방송국 전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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