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호] 6.25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하긴스
[94호] 6.25전쟁 종군기자 마거리트 하긴스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06.24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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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에 관한 저술 중
가장 빨리 나온 것이었으며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지 80일이지난 9월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할 때 해병대 제1연대 소속 허영철 상등병과 권영수 일등병은 인천앞바다 레드비치(Red Beach)에 함께 상륙했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한복판이었다. “상륙함 해치가 열리자마자 무작정 뛰어나갔다. 바로 해변인줄 알았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차이나타운 쪽으로 돌격하는데, 온 인천 시내가 불바다였다. 여기저기서 포탄이 쏟아지고…” TV에 출연하여 털어놓은 지금은 90세가 넘은 노병들의 회고담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노병들은 인천 중구 만석동 한 공장 옆에 선 표지석과 전승비를 어루만지며 “이제 전우들은 다 떠나고 없다”고 하며 울먹였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뒤 경인가도를 따라 공산군을 격멸하며 동진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다. 그러나 “9월 21일~23일 연희고지(서울 서대문 연희동 야산일대)전투 때 전우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며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싸웠다며 눈물을 흘렸다. 70년 전 20대 청년들이었던 이들은 “총탄이 빗발치는 한 가운데 서니 죽음이 두려웠다”면서도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를 5년 만에 또 빼앗길 수는 없었다”고 했다. 노병들은 “죽어도 내나라 내조국의 군복을 입고 죽겠다는 생각으로 싸웠다”고 했다.

6‧25때 참전했던 20대 청년들은 구순(九旬)이 됐다.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또 다른 동지들은 적진지에 포격을 퍼붓다가 총상을 입은 사람이 많았지만 상륙을 강행했고 공산군 전차와 야포를 노획했다. 그들은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영종도를 바라보며 “70년 전에야 허허벌판이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세계10대 경제대국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걱정했다. 전쟁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라며 6‧25 비극과 상처는 자기들이 안고 가겠다고 했다. 국군 20만 명, 미군 5만 5천명, 유엔군 1만 명이 흘린 피가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 바다에 스며있다고 했다. 결코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1999년 9월의 어느 날 주독일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이었던 이현표 씨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의 벼룩시장을 찾았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수북이 쌓인 진열대를 뒤적이던 그는 빼어난 미모의 여기자 사진이 표지에 실린 1951년 7월호 판에 눈길을 빼앗겼다. 마릴린 먼로를 닮은 그녀는 1950년 당시 30세로 6‧25전쟁에 종군한 마거리트 하긴스, 뉴욕헤럴드트리뷴의 기자였다. 그녀는 미국이 참전을 선언하기도 전인 6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김포로 날아와 취재와 송고(送稿)를 시작했다. 그리고 1951년 1월 전장에서 지낸 6개월을 기록한 비망록 ‘한국전쟁’을 펴냈고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6‧25에 관한 저술 중 가장 빨리 나온 것이었으며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였다.

“나는 금발의 미군 한명이 목표를 조준하려고 풀밭에 머리를 드는 것을 쌍안경으로 보았는데 그때 적의 탱크에서 섬광들이 땅에 닿을 듯이 튀어나왔고 동시에 그가 쓰러졌다. 몇 분후 병사의 ‘악’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새드릭’이 가슴에 총을 맞고 죽었다. 평택에서 하긴스가 목격한 최초의 전투에 대한 기록이다. 한글 번역자는 “케네스 새드릭은 6‧25전쟁 최초의 희생자로 미국 최고 무공훈장 ‘명예훈장’을 받았다”고 했다. 우아한 매력에 활달함, 바이올린과 춤 솜씨로 무장한 하긴스는 맥아더 장군, 이승만 대통령부터 중공군 포로까지 두루 인터뷰했다. 덕분에 기록이 생생할 뿐 아니라 소설보다 흥미롭다. 또 전쟁르포를 넘어 자유민주주의 가치, 국가존립의 이유, 국가 간 동맹, 성차별문제, 인간적 신뢰와 유대 등 폭넓은 주제를 감수성 넘치는 언어로 다뤄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유명해진 하긴스는 미국을 전역을 돌며 전쟁의 경험을 알리고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녀의 기념우표까지 나오기도 했다.

불꽃처럼 살던 하긴스는 45세에 요절해 알링턴 미 국립묘지에 묻혔다. ‘자유를 위한 희생’이란 제목으로 한국어 번역판이 나왔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대한민국도 하긴스에게 보국훈장을 추서했다. 훈장은 미국플로리다 대 교수인 아들이 대신 받았다. “한반도에서 우리는 준비하지 않은 전쟁을 치름으로써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시었다.” 하긴스는 그의 책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NCCK 감사
CBS방송국 전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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