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호]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
[88호]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20.04.02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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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롭게 출발하자.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일상 매순간이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임을 믿어야한다.
그런 신앙이 몸에 베어야한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재택근무하며 방콕(?)생활하다가 지지난주일 오후 모처럼 응봉산에 올랐다. 어느새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부활생명을 보았다. 아득하기만 하던 봄이 온 것이다. 이 작은 생명체에서도 죽음에서 살아나신 주님의 부활을 느낀다. 2018년 4월5일 가스펠투데이 창간호 9면을 보니 ‘목수, 못 박다’라는 고기복 시인의 부활절 시(詩)에 눈이 꽂혔다. 서른 세월 못 박았거늘 대못이 주는 고통 가늠 못했으랴! 서른 세월 못 박았던 목수, 그래도 나무에 달려 못 박은 한마디 다 이루었다! 부활절을 보내며, 나무에 달렸던 이를 떠올렸다. 목수로 살면서 못 박는 일이 직업이었던 이에게도 ‘못 박힘’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그런데 기꺼이 못 박히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듯 못 박히셨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지금 한국교회는 바울사도의 말처럼 “날마다 죽노라” 고백할 수 있는 지도자들과 신앙인들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처럼,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 곁을 지키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롭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다른 생각과 성향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다보면 갈등도 있고 상처도 입기 마련이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나라 공동체에서도 제자들 가운데 다툼이 있었고 초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갈등이 싫어 공동체를 피하거나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경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교육에 반하는 원리’라고 말했다. ‘상생’의 相은 본래 자세히 보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경쟁에서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에서 우리는 지금 서로를 자세히, 찬찬히 살펴봐야한다. 경쟁의 대상에서 상생의 친구로, 밟고 밟히는 관계에서 존중과 공유의 관계로, 정의의 외침과 우리 일상의 실천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 사람을 죄인과 위인으로 구분하여 보는 사람과 달리 예수님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셨기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을 사게 되었다.

독일문학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르틴 루터를 앞세운 나치의 폭력을 피해 망명을 떠나며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으로 16세기 인본주의자 에라스무스를 선택했다. 에라스무스는 사제였고 신학자였고 유머를 멋지게 구사할 줄 아는 최고의 문인이며 지성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광기와 광신과 폭력으로 얼룩진 시대의 혼돈 속에서 극단을 강요하는 모든 선택을 포기함으로써 가톨릭과 개혁파 사이에서 평화와 자유와 휴머니즘을 지켜냈다. 휴머니즘은 이념과 종교의 틀에 갇히지 않는 보편적 가치이다. 휴머니즘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혁명은 잔인한 폭력이 되고 모든 종교는 집단파멸을 부르는 광기가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장기간 영상예배를 드리면서 성도들의 마음을 영상예배이전과 이후가 분명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다시모여 예배 할 날에 대한 갈망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기도할 때 속히 모이게 해달라는 기도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모이지 못하는 기간 동안 우리각자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이 주님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기회다. 교인들끼리 처음에는 반가웠다가 곧 화내고 싸우고 시험에 들기도 할 것이다, 차라리 영상예배 때가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여서 서로 판단하고 미워하고 수군대고 패를 나누고 싸울 것이라면 왜 다시 모이기를 그토록 기도했는가. 어느 목사님 설교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영상예배를 드리고 있다. 주님은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하신다. 우리 하나님이 성전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 음성은 귀에 들리지 않아도 더욱 우리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교회에서의 직분이 자신의 믿음의 분량인줄 착각하는 교인들도 많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이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이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것이다.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다시 예배당으로 모일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교회가 완전히 새로워져야한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사람이 주인노릇하면 교회는 망한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자.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일상 매순간이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임을 믿어야한다. 그런 신앙이 몸에 베어야한다.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NCCK 감사
CBS방송국 전 재단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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