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이 만난 사람] 6.25의 산 역사를 들려주는 조병해 장로, “하나님이 보우하신 이 나라 이 땅”
[주필이 만난 사람] 6.25의 산 역사를 들려주는 조병해 장로, “하나님이 보우하신 이 나라 이 땅”
  • 김유수 기자
  • 승인 2019.06.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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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기억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신 분”
가장 오른쪽이 조병해 장로
가장 오른쪽이 조병해 장로

조병해 장로(88세, 예장통합 소망교회 은퇴장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광복과 6.25전쟁을 모두 경험했다. 또한 1959년에 KBS 아나운서로 시작하여 CBS에서 은퇴하기까지 3.15 부정선거, 4.19혁명, 5.16과 5.18 등 언론인으로서 대한민국 현대사의 온갖 풍파를 헤쳐왔다. 현대사의 산 증인인 원로 언론인에게 그가 직접 경험한 6.25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앙생활을 언제 시작하게 됐나?

나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 1학년 때 8.15해방을, 중학교 6학년(고3) 때 6.25 전쟁을 경험한 비극적인 세대다.

나는 3.8선 이남인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 출신인데, 내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은 조 씨의 집성촌으로 비교적 부촌이었다. 내 위로 형님 두 분, 누님 세 분이 있었는데 큰 누님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성결교회를 다니셨다. 큰 누님이 나를 교회에 데려가려고 하셨지만, 어린 시절 나는 동네 목사 아들들의 불량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에 가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모범생이었던 내가 학도호국단으로 차출되어 훈련을 받고 학교로 돌아왔는데 범생이 같은 학도호국단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동창생들이 누명을 씌워 나는 억울하게 징계를 받게 되고 이틀간 유치장 생활을 했다. 그 일로 큰 상처를 받아 낙심하고 있었던 내게 누님이 교회에 가자고 조르셨다. 그렇게 해서 6년제 중학교 4학년 때부터 마음이 열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렸는데, 교회를 나가자마자 방학도 없이 교회에서 전지에 그림을 그려 예수님의 일대기를 전하는 그림동화를 만들었다. 내 그림동화는 교회학교에서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그 시절부터 성가대를 시작했는데, 성가대를 하게 된 지 올해로 꼭 70년이 됐다.

젊은시절 경험한 6.25는 어땠나?

고향에서 아버지는 철강 기술자셨다. 우리 집은 큰길가 옆에서 철공장(철공소)을 운영했는데 기계가 두 대였고 자가발전 시설도 갖춘 번듯한 공장이었다. 그런데 공장을 시작하고 1년 뒤에,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6학년(고3)이었던 19살 때 6.25 전쟁이 터졌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연세대에 진학하여 엔지니어를 꿈꾸던 작은형은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큰형과 반공운동을 준비했다. 형들은 수류탄을 사서 UN군이 반격을 시작하면 석산면 내무서를 폭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산도배들이 큰형 집을 수색하여 숨겨둔 수류탄이 발각 됐고, 작은형은 도망가던 도중 총검에 머리를 찔리고 붙잡혀 공산도배들에게 잡혀가고 말았다.

나는 교회 강대마루 밑에 굴을 파고 숨어지냈다. 교회 목사님의 사모님이 적당한 때 몰래 주시는 밥을 허겁지겁 해치우고 곧 굴속으로 들어갔다. 토굴 속 생활이 너무 지겨워 바깥공기를 마시려다 몇 번이고 위험한 고비를 맞기도 했다. 그러다 하나님 도우심에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9.28 서울수복을 맞았다. 잡혀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도 기적적으로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형제가 죽을 고비를 겪자, 부모님들은 고향에 남으시고 우리 형제를 서울로 피난을 보내셨다. 자식들을 남쪽으로 보내고 외롭게 지내시던 부모님은 철공장마저 운동권인 좌익계 직공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53년 봄에 아버지는 반공 집안이라는 이웃의 밀고로 체포되셔서 평안도 지방으로 이송되셨다고 한다. 그 이후 소식이 끊겼으니, 아버지는 아마 거기서 처형당하셨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공산군의 만행에 치가 떨리고 눈물이 난다.

6.25 전쟁 중에 어떻게 신앙을 지켰나?

6.25 때 북한군이 처음 고향을 점령했을 당시 고향에는 월북할 사람들은 이미 3.8선 이북으로 다 월북했고, 반공사상이 투철한 사람들만 마을에 남아서 살고 있었다. 승승장구하며 전쟁 초반 여유 있었던 당시 북한 정부는 유화책으로 우리 지역에 관대한 사람을 보내 관리하게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을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크게 막지 않았다. 공산군 장교도 권총을 뽑아놓고 예배를 드리곤 했다.

형님들과 서울로 피난을 와서 군대에 들어갔다. 서해안에 있는 8240 켈로부대에 입대하게 됐는데, 그곳 사령부에서 나보다 1살 아래인 곽선희 목사(소망교회 원로)를 처음 만났다. 거기서 곽 목사와 같이 군생활, 신앙생활을 하며 성가대도 같이 하고 중고등부 교사도 하면서 봉사했다.

신앙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전쟁을 겪지 않은 최근의 사람들은 6.25에 대한 의식이 무딘 것 같다. 심지어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던 6.25의 정신이 최근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충일에 김원봉 얘기를 꺼내 화제가 된 대통령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현충일은 6.25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1956년에 제정된 기념일이다. 얼마 전 현충일에 대통령은 6.25에서 목숨 바친 사람들이 아닌 의열단 김원봉의 업적을 강조했다. 3.1절이나 광복절이면 모를까 현충일은 독립운동하던 김원봉과는 관계가 없다. 대통령의 이런 행동엔 여러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6.25 전쟁 때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던 호국정신이 지금의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왜곡되는 현실 자체가 너무 안타깝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북한군이 전쟁을 시작하면 호남의 농민들이 도와줘서 쉽게 남한을 접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꼬드겼다. 하지만 북한이 남침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이승만 대통령이 토지개혁을 실시해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눠줘서 농민들이 공산당에 동화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도 마침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인천상륙작전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6.25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우하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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