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이 만난 사람] 이강백, 박옥자 장로 부부, '평신도 사역자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부부의 인생'
[주필이 만난 사람] 이강백, 박옥자 장로 부부, '평신도 사역자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부부의 인생'
  • 김유수 기자
  • 승인 2019.05.04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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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로 밟았던 땅 칠레
그곳에서 시작된 의료선교
교회개척에 1호 장로
“오직 주님의 뜻으로”
이강백, 박옥자 장로부부는 평신도 사역자로 칠레 의료선교와 교회개척을 위해 헌신해왔다. 사진은 부부가 병원을 운영며 칠레 오지마을 의료선교를 위해 사용하던 의료버스 앞(왼쪽에서 두번째 이강백 장로, 가운데 박옥자 장로). 이강백 장로 제공

 

평신도 사역자 이강백(상도교회), 박옥자(김포상도교회) 장로 부부는 먼 땅끝 칠레에서 장기 의료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사역을 멈추지 않고 평신도 사역자로서 교회를 개척했다. 사명감 하나로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이들 부부의 사역 여정을 들어봤다.

이강백(상도교회) 장로. 정성경 기자

어떤 계기로 칠레에 가게 됐나?

이강백 장로: 칠레 선교를 1992년에 갔다가 1999년에 돌아왔다. 처음 칠레로 갈 당시 상도교회(담임목사 최승일)를 다니며 예식 업계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돈은 잘 벌었지만 업계 특성상 주일성수를 지키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신앙적 갈등이 심했던 차에 상도교회가 선교사 파송을 준비하며 선교지로 한국의 정 반대편 땅끝인 칠레를 선교지로 정하고 선교사를 파송을 하기로 계획했다. 칠레 쪽에서 의료선교 요청이 들어와 당시 선교부 차장이었던 나는 의료선교단을 조직해서 단기 의료선교를 떠났다. 그곳에서 원주민 마푸체족 1000여 명에게 의료사역을 하고 돌아왔는데, 칠레에서 화산이 폭발하자 칠레 정부 쪽에서 다시 의료선교 요청이 왔다. 그렇게 몇 차례 의료선교를 갔더니 칠레 지방정부에서 땅을 기증한다며 병원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았던 칠레에 큰 종합병원을 짓게 됐다. 병원을 짓는데 현지 선교사님에게만 맡길 수가 없는 상황이어서 그때 교회에서 이강백 장로(내)가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흔드셔서 그쪽으로 불러내셨다. 마음을 굳히고 나서 나는 십원 한 장 지원받지 않는 자비량선교사로서 총회의 인정을 받아 칠레로 가게 됐다.

칠레에 선교를 가며 힘든 일은 없었나?

박옥자 장로: 갑자기 하던 일을 다 접어두고 계산도 없이 무작정 칠레에 정착하게 됐다. 가기 전에 가기가 싫어서 하나님께 아들의 대학문제, 집 처분 문제, 후원문제 등의 조건을 내세워 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에 뜻으로 그 일들이 몇 달 만에 다 이뤄졌다. 결국 나는 칠레에 가게 됐다. 처음 칠레에 도착하니 칠레에서 사역하시던 영락교회 목사님이 가게와 집을 준비하여 우리를 맞아 주셨다. 칠레에서는 내가 가게를 차려 동대문에서 한철 지난 옷을 가져다가 교민들에게 팔아서 생활했다. 장사경험도 없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그곳에서 밤마다 울면서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 장로: 처음 병원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병원을 짓는 데에 교회의 후원을 받기 힘들어, 선교를 가는 사람들끼리 몇몇이 2억 원씩 모아서 병원을 짓기로 했다. 사실 처음엔 사정에 맞춰 산부인과만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현지 선교사님이 지방 대학과 자치단체가 우리 소식을 듣고 거대한 종합병원을 계획했다. 그런데 의사 위주로 돌아가는 현지의 의료체계는 외국인인 우리에게 너무 불리한 조건이었다. 환자가 적은 상황에서 200여 직원의 인건비, 운영비가 나가 매달 5000만원씩 적자가 났다. 나는 한국 집을 담보 잡아 최대한 융자를 받았다. 그렇게 사비 200만 달러 이상을 병원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지원을 받기도 힘들어지고 이내 병원을 운영하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상도교회에서도 운영하기 힘들다는 결론이 났고 병원을 현지 정부에 무상으로 맡기고 칠레에서 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박옥자 장로. 정성경 기자
박옥자(김포상도교회) 장로. 정성경 기자

부부 장로로 한국에서 교회도 개척했다.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되나?

이 장로: 칠레에 가기 전에 다니던 직장이 있었다. 그 직장 회장님이 전무로 있던 내가 칠레로 가겠다고 하니, 나를 붙들다가 안 되니 언제든 돌아오라며 사표도 수리하지 않으셨다. 그 회장님 사모님이 영락교회 권사님이셨는데 그분이 예식장을 지으며 한경직 목사님을 모시고 개업예배를 드렸다. 그때 빚을 다 갚으면 교회 하나를 지어 하나님께 드리겠다 약속했다. 사모님은 그 약속대로 교회를 짓게 됐고 그 교회를 짓는 첫 삽을 뜨는 과정부터 내가 돕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내가 칠레에 가기 전 김포에 교회가 세워졌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그 교회 운영을 너무 힘들어하셨다. 때마침 내가 칠레에서 돌아오니, 사모님이 기존 목사님이 나가신 상황에서 “자신이 지원을 해 줄테니 이 교회를 맡아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교회를 내가 다니던 상도교회에 기증했다. 우리는 돈이 들지 않았지만, 500평에 이르는 교회 기증은 상도교회 입장에선 기증이었고 목사님도 흥분하셨다. 이윽고 상도교회 목사님이 나를 칠레에서 완전히 나오게 하여 그 교회에 관리 장로로 파송했다.

박 장로: 김포상도교회는 상도교회 부 목사님이 첫 목사님으로 오게 되셨고 상도교회 지교회처럼 운영됐다. 그렇게 운영 하다보니 이런저런 소리들이 교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포상도교회가 상도교회로부터 분리하는 작업을 통해 권리권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장로: 당회에서 말들이 나오니 당시 상도교회 목사님께서 “김포상도교회는 이강백 장로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곳이 조직 되면 노회에 가입도 시켜주고 독립도 시켜주어야 하지 않냐”고 말 하시고 당회록에 기록도 남기셨다.

어떻게 부부 모두 장로가 됐나?

박 장로: 사실 처음에 나는 김포상도교회 권사 봉사자로 들어갔다. 칠레에서 오자마자 짐을 김포상도교회에서 풀었다. 지금도 나는 20년째 김포상도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밥을 하고 교회 꽃꽂이도 담당하고 있다. 바쁘다 보니 상도교회 권사로서 상도교회 행사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김포상도교회에 정착하여 봉사를 하다보니 어느 날 목사님이 내게 이명을 해오라고 하셨다. 당시 상도교회가 내게 투표권을 주지 않아 너무너무 기분이 나쁘던 차였다. 교회가 자립하며 김포상도교회 목사님이 교회에 안수집사, 권사를 세우게 됐다. 남편은 이미 상도교회 장로였기에 목사님은 당회에 김포상도교회도 장로를 세워야 한다고 결의하고 나를 장로로 세웠다.

이 장로: 박옥자 장로는 김포상도교회 1호 장로이다. 하지만 나는 아내가 거기 가서 장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내 입으로 말하기는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거기에 가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잘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예쁘시겠나? 원춘기 장로와 아내가 장로가 될 때 김포상도교회 당회가 조직이 되어 김포상도교회가 독립했다. 노회에도 몇십 년 동안 자립을 못 하고 지원금을 받는 교회가 많다. 내가 노회 임원이었을 때 5년 만에 자립을 선포했다.

박 장로: 지금은 완전히 자립해서 교회를 운영하고 목사님에게 연금도 드린다. 교인은 많지 않아 100명도 안 되지만 교인 90% 이상이 십일조를 한다. 교회에 식비와 관리비 외에 임대료 등 크게 나가는 돈이 없어 교회가 재미있게 운영되고 있다. 목사님이 순수하고 교인들도 가족 같다. 이 작은 교회가 먹을 것 풍성하고 살림이 풍성하다. 우리 목사님이 복이 많은 거다.

평신도 사역자로 부부가 한마음으로 사역하기가 쉽지 않은데 비결이 있나?

이 장로: 비결은 특별한 것이 없다. 오직 아내의 헌신이다. 자비량선교사로 칠레에 갔을 때 지방병원이 버스로 8시간 거리였다. 경험도 없었고 현지 사정도 열악했다. 내가 본의 아닌 상황에서 사명감으로 그 환경으로 가자고 했을 때, 아내는 열악한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도 가려면 제대로 가야 한다며 살림살이를 컨테이너로 마련하여 준비했다. 내가 지방병원에서 선교할 때도 아내가 현지 수도 산티아고에서 옷을 팔아 필요한 생활비도 대줬다. 이후 개척교회에서 지금까지 아내의 몸에 밴 헌신은 하나님 나라 가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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