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 그날을 기억하는 신앙
호국보훈, 그날을 기억하는 신앙
  • 정성경
  • 승인 2019.06.0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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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감리교회에서 진행하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위로식
고성감리교회에서 열린 참전용사 위로식에서 어린아이가 참전용사 할아버지께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교회 제공

 

“우리의 애국은 성경대로 사는 것”

이전세대에서 다음세대에

직접 전하는 6‧25전쟁 현장

10년째 참전용사들의

손을 잡고 있는 성도들

고성감리교회 원로 장로들은 여전히 1950년 6월 25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새벽녘, 탱크들이 고성을 지나 아래로 향했다. 1953년 7월이 되어서야 정전협정으로 전국의 포성이 멈췄다.

고성군은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전 행정구역이 공산치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1954년 수복지구 임시행정 조치법에 따라 휴전선 이남 4개면, 간성, 거진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마을 주민들 중 연로하신 분들은 여전히 전세광 목사에게 “저 사람이 그때 북한군이었다”며 귓속말을 하곤 한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이면 고성감리교회에 참전용사들이 찾아온다. 교회에서 초청하는 위로잔치를 위해서다. 10년 전 시작했을 때는 30여명이었던 그들이 현재는 15명 정도다.

처음엔 고성군수와 정재계 명사들을 초청해 함께 했던 행사였다. 그러다 6년 전 전세광 목사가 담임 목사로 오면서 행사가 아닌 나눔으로 전환했다. 일주일 전부터 교회는 ‘참전용사 위로회’를 위해 잔칫집 분위기다. 연로하신 분들을 위해 소머리를 삶아 여신도들이 함께 고기를 발라낸다. 전도 부치고, 선물도 준비한다. 6‧25관련 영상을 만들고 그 당시 부르던 노래를 함께 준비한다. 오신 분들에게는 소정의 용돈도 드린다. 이 모든 전달식은 교회 아이들이 맡는다. 참전 용사 할아버지에게 선물과 꽃다발을 건네며 6‧25전쟁의 역사를 손수 보고 느낀다. 거동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전 목사는 찾아간 참전 용사들의 삶의 현장에서 어렵게 사는 그들을 보고 받은 충격이 컸다. 그래서 매년 이 나눔을 진행 중이다.

10년째 참전용사 위로회를 하다 보니, 시장에서 만난 80세 넘은 노인이 전 목사에게 ‘충성’하며 인사를 한다고 한다. 성탄절이면 연락하지 않아도 함께 예배드리고, ‘우리교회, 우리 목사님’으로 불린다.

전 목사는 “6‧25전쟁을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위로회를 하게 됐다”며 “우리의 애국은 성경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전 목사는 특별히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처럼 우리에게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여기 계신다”며 “우리는 작은 일에 원망하고 불합리하다고 불평하지만 이 분들은 나라와 알지도 못하는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서 모든 걸 버리고도 불평은커녕 기대하거나 바라지도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함께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과 고통이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도록.

위로식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교회 제공

 

오직 성경만 전하는 목사, 성경대로 사는 성도들

다음세대를 키우는 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애국

마지막에 주님 앞에 설 때

알곡 되는 신앙이 중요

통일전망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고성군 그리고 간성읍에 고성감리교회가 있다. 1903년에 강원도 원산에서 남감리회 선교사 로버트 하디(R. A. Hardie, 1865∼1949)로부터 시작된 대부흥 운동의 영향을 받아 간성읍에도 감리교회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고성감리교회는 1984년 겨울, 30여명의 성도들이 기름집의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해 1985년 택시회사 막사를 개조해 예배당을 세웠다. 1993년 강원도 폭설로 교회가 무너졌지만 1995년 성도들의 헌신으로 현재의 자리에 벽돌로 성전을 건축했다. 그리고 2016년 낙후된 건물을 재건축함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됐다.

전세광 목사가 고성감리교회에 새로 부임하고, 성도들이 성경에 굴복하는 영적 변화가 일어났다. 전 목사는 “성경만 전했을 뿐”이라고 답했지만 성도들의 가슴을 찌르는 말씀에 김광순 장로는 “한동안 내가 제대로 믿은 게 맞나 의심했다”고 말했다.

전 목사도 처음부터 말씀만 가지고 설교했던 것은 아니다. 장로였던 아버지를 둔 전 목사는 10대에 반항도 했다. 그런데 놀려가려고 나서는 그의 등 뒤에 부모님의 기도소리를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기도원에서 기도하다 확실한 신앙을 가진 그는 신학대학원을 마쳤는데 사역지가 없었다. 아이도 낳았던 그는 생계를 위해 기사도 하고, 직장 일을 하며 사역지를 찾다 울산에 10평짜리에 빚이 있는 교회에 가게 됐다. 울산에서 교회 빚을 다 갚고, 전주에서 다시 개척을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11년 되면서 부흥되고, 교회도 건축했다.

그러다 이곳 고성교회에 온 것이다. 그 과정 중에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을 보고 깊이 고민하게 됐다. 설교를 준비하는 그의 마음에도 기쁨이 없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성경만 보자”였다. 설교를 준비하며 여러 자료들을 정리하고 오직 성경만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 목사 자신도 그렇고 성도들도 변화되기 시작했다.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준비한 식량키트. 교회 제공
이웃을 위한 나눔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고성감리교회 성도들. 교회 제공

고성에서 만난 성도들은 특별하게 성경 말씀에 더 순종했다. 섬김에 특별한 마음이 있는 전 목사의 의견에 잘 따라줬다. 힘든 이웃 50가정에게 식량키트와 난방비를 보태주고, 추수감사예배 헌금은 전액 이웃을 돕자고 했다. 그러자 그해 추수감사헌금이 두 배로 나왔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봉사를 비롯해 교회 근처에 있는 복지관을 돕는 것은 물론 후원하며 선교에 동역하는 단체가 국내외로 16곳이다.

교회가 하는 섬김 행사 중 하나인 참전용사 위로회는 특별히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다음세대에 6‧25전쟁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로회에 참전 용사들에게 마이크를 주면 놓지 않는다고 한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그때의 아픔을 전한다. 함께 부르는 그 시절 노래에 향수에 젖고 잠시나마 위로를 받는다. 이제는 연로해서 더 이상 통일을 꿈꾸지 않는 그들이지만, 한번도 민간단체에서 찾아와 돌봐준 적 없는 그들이기에 교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게 된다.

전 목사는 “나라가 평안해야 교회가 평안하고, 성도들이 평안하다”며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을 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참전 용사들을 직접 찾아가보니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며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그들을 오히려 돌보지 않고 있었다”며 안타까웠던 때를 전했다. 올해부터는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를 맥추감사절로 옮겼다. 6월은 행사도 많은데다 대다수가 노환으로 힘들어하셔서다.

고성감리교회의 섬김은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필리핀의 마닐라 빈민촌에 있는 깜덴 공동체도 돕고 있다. 깜덴 지역으로 선교여행은 물론이고, 지난번에는 28명을 초청해 1박2일 동안 관광을 시켜주고, 선물도 했다. 한 소녀는 고성감리교회 장학금으로 약대에 입학해 “나 같은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고백했다.

1년에 한두 번 선교를 위해 필리핀에 방문하는 전 목사가 어느 날 성도들에게 말없이 주일날 밤에 필리핀으로 떠났다. 깜짝 놀란 성도들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내가 필리핀에 간다고 하면 힘들게 폐지 줍고, 쓰레기 주워서 생활하는 분들이 꼬깃꼬깃 숨겨 놓은 돈을 주시는 게 죄송해서”라고 했다.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섬긴 선교는 전 목사와 다시 자신에게 간증으로 돌아왔다. 취재에 함께 응했던 김지숙 권사는 재건축한 성전을 보여주며 “이곳에서 처음으로 딸이 결혼식을 올렸다”며 감격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 목사의 목회철학이 반영된, 2016년에 재건축한 아름다운 교회도 성도들의 자랑이다.

고성감리교회의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 목사가 왔을 당시 성도들 90여명의 성도들이 거의 노인들이었다. 게다가 교회학교 아이들은 7명 정도였다. 그런데 현재 교회학교 아이들이 30여명이 넘는다. 재건축한 유아실이 좁을 정도다. 그리고 최근 교회 앞에 대지를 600평 구입했다. 온전히 다음세대를 위해 사용할 계획이란다. 현재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들도 150여명이다.

김광순 장로는 “목사님 자녀가 셋인데, 다들 목사님을 닮아서 그런지 쌍둥이를 낳고 애들을 많이 낳는다”며 웃었다. 고성감리교회를 섬긴지 40여년이 넘은 김 장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씀의 순종과 애국은 다음세대를 믿음으로 잘 양육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는 것도 성경대로 살기 위함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도 성경대로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면 그대로 정착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속초시에서 고성군 간성읍까지 40여분을 이동하며 주일을 지키는 김 장로가 제일 부러운 이들이 “교회 가까이에서 새벽예배 하는 성도들”이라고도 말했다.

전 목사는 “목회를 시작할 때 받은 은혜가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안에 머무는 열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타적인 열정은 오래갈 뿐 아니라 주위에 빛이 되고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교회가 이웃을 도와주고 베푸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부흥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받는 복이 다가 아니다. 마지막에 내가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알곡인지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내게 맡겨진 성도들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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