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역한 세대 구원 가능한가?
패역한 세대 구원 가능한가?
  • 오총균 목사
  • 승인 2021.06.2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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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규범의 중요성

사회생활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이를 ‘사회규범(社會規範)’이라 한다. ‘사회규범’에는 에티켓, 관습, 종교, 도덕, 법 등이 있다. 이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며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하는 본보기들이다. 형태는 다르나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구속(拘束)하는 특징이 있다. 규범을 잘 지키면 보상이 따르나, 이를 어기면 심리적 부담, 양심의 가책, 사회적 비난, 신체적 처벌, 법적 규제 등이 따른다. 이에 규범(規範)은 보상(報償)과 제재(制裁)를 통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데 이바지한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문화변동(文化變動)이 일어나면 기존의 전통적인 규범이 무너진다. 이 때 붕괴된 규범의 빈자리를 채워 줄 새로운 규범이 빨리 정립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무규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를 「아노미 현상(Anomie)」이라 한다. ‘아노미 현상(Anomie)’은 그리스어인 ‘아노미아(ανομία)’에서 나온 말로, ‘무질서’ 상태를 의미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규범과 가치관이 무너지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규범과 가치관이 아직 정립되지 못하여 혼란과 무질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가치관이 붕괴되어 무규범 상태에 빠지게 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심각한 혼돈을 겪게 되고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에 놓이게 된다.

2. 사회규범의 영향력

모든 사회에서 사회적 안정(安定)과 규범(規範)은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사회규범(社會規範)이 안정되고 존중되며 준수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강한 결속력(結束力)을 지닌다. 개인의 삶은 안정되고 타 구성원과의 갈등은 낮아진다. 집단 구성원들은 소속감의 만족도와 자부심이 충전(充電)되고, 구성원간의 결속력과 유대감은 강화된다. 사회규범이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으면 그 집단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은 유지된다. 이 때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 대체로 만족한다. 반면, 사회규범(社會規範)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규범이 무시될 경우, 개인과 사회의 결속력은 약화되고 개인의 만족도는 낮아진다. 사회적 통합 정도가 낮고 개인의 사회적 결속력이 약하거나 깨질 때, 사회 구성원들은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독감(孤獨感)에 시달린다. 규범이 무시되고 무규범 상태가 지속되면 사회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은 저하(低下)된다. 구성원들 간에 갈등과 다툼이 발생하고 집단 이탈 현상이 나타난다. 이 상태가 장기화되면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을 잃게 되고 심한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빠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심리나 정신세계는 총체적(總體的) 사회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3. 패역한 사회의 타락 현상

규범이 무너진 사회 현상을 지칭하는 성경적 용어는 ‘패역(moral delinquency)’이다(사1:5,행2:40). 패역(悖逆)이란 ‘거역’ 혹은 ‘배반’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나 거꾸로 뒤집혀졌다는 뜻이다(신31:27). 거꾸로 된 세상이 지속되면 정의와 진리가 왜곡되어 이로 인한 고통이 심화된다(딤후3:1). 학자들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는 「집단적 타락 증후군」에서 온다. 거짓된 행위가 바른 행위로 미화되는 일이 집단지성(集團知性)의 흐름을 타고 횡행하게 된다. 실제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는 질서가 파괴되고 타락과 무법(無法)이 판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짓을 말하고도 거짓이 아니라고 우기고, 불법을 행하고도 불법이 아니라고 우긴다(사5:20). 잘못을 하고도 그 행위를 부인(否認)하며 잘못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하다. 사회 지도층이 저지르는 부정(不淨) 행위를 보고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不正) 행위를 합리화한다. 집단적 양심의 마비로 개인적 바른 양심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가치관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정상에서 이탈하여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변모해 버렸다(롬1:25).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증가되고 일부 집단 이탈 현상이 나타나면서 사회 집단 해체까지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4. 타락된 집단지성의 폐해

묘하게도 힘과 권력은 그것을 소유하는 순간부터 타락으로 향하는 속성이 있다. 힘과 권력을 지닌 사람들은 틈만 주어지면 권력을 사용하고 싶어 하고, 힘을 남용하고 싶어 한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비도덕화 하는 모든 원인들 중, 힘과 권력처럼 부단하고 가장 활동적인 것도 없다. 이 권한 남용이 계속되어 사회 속에 일상화 되면 타락된 집단지성이 지배하는 패역(rebellion)한 사회로 전락한다. 그리고 일상화된 패역이 「사회문화(社會文化)」로 자리 잡게 된다. 그 결과 왜곡된 ‘사회문화’가 ‘집단지성’을 통제한다. 사회를 통제하는 패역한 집단지성이 대의실현(大義實現)을 위해 도덕적 면허(免許)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양심도 저버리고 필요악도 정당화하며 도덕적 일탈도 감행한다(사59:4). 양심이 마비된 집단지성이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사회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상대를 비도덕자로 몰아 비난하고 단죄하며 폭력도 정당화하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용인하며 단행한다(사59:6-7). 파괴된 양심이 집단지성을 업고 활동하면 권력 남용으로 인한 극악무도한 비리 행위가 거침없이 행해진다. 선량한 개인 양심도 타락된 집단지성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면 규범은 그 가치와 의미를 잃게 되고 법과 정의를 지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사59:9).

5. 양심적 집단지성의 형성

중국 마오쩌둥(Mao Zedong)의 홍위병과 독일 나치즘(Nazism)의 역사적 폭정을 상기해 볼 때, 집단지성이 타락하면 실제 패역한 세상이 만들어진다(사5:7). 여기서 확인되는 중요한 핵심은 법치만으로 사회규범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악법도 법으로 만들어지고 그 법에 의한 통치가 진행될 수 있다. 세속 대중에 영합하는 자가 직위에 오르기 유리하다는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정치 지도자가 사회 운전대를 잡고 폭주할 수 있다. 따라서 바른 양심을 지닌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돼야 한다. 그 마음에 정의감이 살아 있고,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선명하며, 법을 어기는 행위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정치를 주도(主導)해야 한다. 양심적인 사람들이 입법기관에 진출해야 하며, 이 입법기관에서 정의로운 법이 제정되고 항시 이 정의로운 법이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양심적 집단지성에 의한 사회적 집단면역(集團免疫)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사33:5). 이 바른 마음과 양심적 집단지성이 있어 법치와 사회정의가 실현된다(잠21:15,사32:17).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양심에 근거한 법치 사회 실현만이 패역을 막는 현실적인 대안(對案)이다.

6. 착한 사람들의 문제점

착한 사람들은 자기주장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경향이 있다. 타인과의 갈등을 피하려고 남의 의견에 묻어가는 성향이 짙다. 그래서 결정적일 때 기회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이들은 바른 가치관에 근거한 선한 싸움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딤전6:12).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그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에서 지적한 바대로, 비록 개인적으로는 바른 도덕적 성향을 지니고 있으나, 비도덕적인 사회에서는 그 흐름에 예속되어 집단 이기주의에 편승하고 만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남의 입장만 고려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착함을 착함의 전부로 여겨왔다. 착한 사람은 으레 자기주장과 소신을 관철시키는 일에 유약한 사람으로 인식돼 왔다. 그리하여 세상에 만연된 불의(不義)를 퇴치시키는 일에 용기 내어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의(不義)에 맞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불의(不義)도 용인한다는 시그널을 제공하게 된다. 결국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며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정당화되는 결과를 양산하게 된다. 착하게 산다는 명분에 묶여 정의(正義)를 양보하고 불의(不義)를 눈감아주게 되면 이것이 사람이나 공동체를 가볍게 대하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독(毒)이 되어 돌아온다.

7. 바른 자기주장의 필요성

논어강설(論語講說)에 이런 내용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는 사람은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은 시비(是非)를 가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의 비위를 맞추는데 뛰어난 사람일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미움 받기를 두려워하여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들은 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면 불안해하며 결정적일 때 남들과의 갈등을 피하려고 회피(回避)해 버린다. 이런 사람은 중요도(重要度)가 낮아진다. 어떤 중요한 사안과 문제에 대하여 물어볼 가치조차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생활에서는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사람을 얻는다.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은 무게감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어 종래(從來)에는 요직(要職)과 핵심 역할을 맡는다. 바른 자기주장을 하다 보면 타인과 다소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나중에 더 큰 인정과 대우를 받는다(잠21:3). 그러나 자기주장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이것이 착한 사람들이 중요한 때 감동을 주지 못하고 결정적일 때 기여도(寄與度)가 낮은 인물로 남는 이유다. 그리고 모두가 다 같이 착한바가 없는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이 세상을 지배할 수 없게 되는 이유이다.

8. 선한 영향력이 지배하는 사회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고 행복한 목표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자세는 그것 자체로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착한 것은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착함은 세상이 모두 다 착할 때만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단 한 번도 다 같이 착한 적이 없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남들과 대립하기를 주저하는 착한 사람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이들을 만만히 보고 무시(無視)한다. 그래서 불의를 정의라고 우기며 거짓을 진실처럼 가장하며 휘두른다. 그러함에도 착한 사람들은 이들에게 끌려 다니며 불의를 눈감아 주고 진리(眞理)까지도 양보한다. 말하자면 착한 사람들이 패역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一助)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갈등은 피하고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단호하게 삶의 주도성을 행사하며 정의 실현을 위한 명분 있는 싸움도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시144:1). 진정으로 착한 사람은 「바나바」처럼 주도적인 자세로 착함을 실천하고 오히려 존경을 받는다(행4:36). 창조적 소수로서의 존재감과 주가(株價)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상승시킨다(행11:24). 그리하여 ‘선한 영향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마침내 만들어 낸다(행9:31).

9. 결론

따라서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제도의 정착, 규범의 완성도 상승, 사회적 안정망 구축 등을 통해 정상적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조화(不調和)를 치유하고 집단 이탈 현상과 집단 해체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바른 규범을 정착시켜 정상적 규범이 통용되는 안정된 사회를 형성해야 한다. 더 이상 양심적인 사람들이 패역한 세력의 횡포에 의해 고통 받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 이에 빗나간 개인 양심이 양심적 집단지성에 의해 통제받는 사회문화가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다수(多數-과반)의 전향적인 결단을 통해 선량한 집단지성이 사회를 선도(先導)하는 문화가 규범으로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현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을 치유하고 이 세대를 진정으로 구원하는 길이다. 양심적 집단지성이 삐뚤어진 개인 양심을 지배하는 사회 문화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만이 사회 구성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길이며, 패역한 세대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처방(處方)인 것이다(신16:20,잠21:3,21).

오총균목사(시흥성광교회 담임, 특화목회연구원장)
오총균목사(시흥성광교회 담임, 특화목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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