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착한 사람
현명하게 착한 사람
  • 오총균 목사
  • 승인 2021.05.26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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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인 생각이며 행복한 목표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자세는 그것 자체로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마냥 안정적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가혹하고 험난한 과정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착한 사람들의 행복을 담보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여러 난제들이 현존한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실제로 착하게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우울증이 발견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남의 입장을 헤아려주고 정작 필요한 때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남에게 베푼 배려에도 불구하도 그것이 이용당한 것이 되고 그럼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눈치를 보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모든 착한 사람이 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착함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생산적인 착함을 당당히 실천하며 현명하게 사는 착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이에 본 주제에서는 두 종류의 착함에 대하여 분석하고, 착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을 살피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성경적 입장’에서 조명코자 한다.

2. 착함의 두 종류 분석

착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성숙한 착함’이고, 다른 하나는 ‘어리 숙한 참함’이다. ‘성숙한 착함’은 착함의 진가(眞價)를 최대로 발휘하여 그 열매와 수확을 확실하게 챙기는 현명한 착함이다. 이에 반해 ‘어리 숙한 착함’은 남의 입장에서 배려만하고 만만하게 보이며 남에게 끌려 다니는 미성숙한 착함이다. 필요한때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만 억압하는 비성숙한 착함이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에 대하여 착함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으나 인간의 탈을 쓴 동물 같은 사람들이 있어 착한 사람을 만만히 보고 이용하며 휘두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 ‘어리 숙한 착함’을 착함의 전부(全部)로 이해해 왔다. 착한 사람은 으레 착한 일을 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착한 사람들이 겪는 맘고생을 당연히 겪는 운명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진정한 착함은 그와 정 반대이다. ‘현명한 착함’은 남에게 잘해 주고 상처 입는 그런 착함이 아니다. 남에게 잘해준 선의가 왜곡되는 일도 없으며 선의를 베풀면서 이용당하지도 않는다. 속을 끊으면서 할 말 못하고 남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 다니는 착함도 아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일도 없다.

3. 착한 사람의 일반적 특징(1)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이보다 아름답고 고상한 목표도 없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은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서 그를 좋은 사람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다. 좋은 사람으로 산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하지 않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도리어 그 좋은 사람됨이 화(禍)가 되어 손해를 입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는 착한 사람에게서 남에게 마냥 잘해주고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가야 할 길에 매진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일에 얽매여 비전을 성취할 열정을 소진(消盡)하며 낭비하는 경우가 있음을 본다. 따라서 삶을 아름답게 세우고 생의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어리 숙한 착함’을 버리고 ‘성숙된 착함’을 소유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때론 단호하고 냉정해야 하며 정당한 싸움도 능수능란하게 수행하며 삶을 생산적으로 창조해갈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이상(異相)일 뿐이다. 무조건 남에게 잘해주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냉정하고 단호하게 인생의 주도성(主導性)을 행사하는 ‘능숙한 착함’을 지녀야 한다.

4. 착한 사람의 일반적 특징(2)

착한 사람은 쉽게 양보하는 성향이 있다. 아울러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남의 부탁을 들어줄 경우, 경제적, 인간적 손실을 입는데도 그 부탁에 대하여 'No(거절)' 하지 못하고 들어준다. 부탁을 들어주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하여도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고마워하지 않는다. 도리어 가볍게 여기고 비웃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명분 없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게 되면 가벼운 사람 취급받게 되고 모든 일에 양보를 요구 받게 된다. 부탁을 거절하면 상대가 모욕을 느끼거나 실망과 좌절에 빠진다는 점이 고려되어 부탁에 쉽게 응한다. 그러나 실상, 부탁을 해오는 상대방은 거절당할 경우에도 대비한다. 설령 부탁이 거절된다 해도 그로인해 그의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손실을 감수하며 부탁을 들어준 착한 사람이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분노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따라서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그 이유와 능력과 명분 여부를 충분히 고려하고 냉정히 판단한 후 결정해야 한다. 이 때 손해를 감수(甘受)하며 부탁을 들어주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는 현명(賢明)함이 필요하다.

5. 착한 사람의 일반적 특징(3)

착한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걱정하는 성향이 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단호하지 못하고 항상 웃는다. 그러나 걱정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켜 걱정한 그대로의 결과를 생산해 낸다. 지나친 염려는 위로나 안심을 가져다주기보다 오히려 분위기를 우울하게 하고 짜증과 신경질을 유발시킨다. 무책임한 일처리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매사를 가볍게 처리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제공한다.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며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정당화되는 결과를 양산한다. 결국 과오와 실수를 악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에게 큰 손실을 입히고도 무책임하게 반응한다. 무책임을 용인하게 되면 당사자의 책임에 대하여 방심하게 만들고 오히려 상대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따라서 상황과 환경을 불문하고 항상 웃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일에 웃는 반응만 보이면 어려워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종국에는 착한 이미지가 무시 받고 업신여김을 받게 된다. 사람에게는 인자함과 위엄이 동시에 필요하다. 지나친 웃음은 사람이나 공동체를 가볍게 대하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그것이 독이 되어 돌아온다.

6. 결론

착한 것은 좋은 일이나 착함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착함은 세상이 모두 다 착할 때만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단 한 번도 다 같이 착한 적이 없다. 그래서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냉정함과 단호함이 요구된다. 바울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중략)에 있느니라(엡5:9).”고 말씀했다. 예수께서는 “이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성경적 착함을 ‘어리 숙한 착함’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희생적 착함을 실천하고도 빛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착함을 새로이 해석해야 한다. 평판에 연연하는 ‘미숙한 착함’에서 ‘성숙한 착함’으로 전환해야 한다. 성숙한 착함은 착함을 실천하고 오히려 존경을 받는다. 창조적 소수로서의 존재감과 주가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상승시킨다(행11:24). 현명한 착함은 어둠과 절망에 처한 세상에 빛과 생명을 전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성경적 착함’이 어두운 세상에 비췰 때 빛의 열매가 가득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이다.

오총균목사(특화목회연구원장/시흥성광교회 담임)
오총균목사(특화목회연구원장/시흥성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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