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특집 미래세대 교회모델] 보성 득량교회(윤청열 목사), "성도들의 열정, 100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해"
[100호 특집 미래세대 교회모델] 보성 득량교회(윤청열 목사), "성도들의 열정, 100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해"
  • 정성경 기자
  • 승인 2020.09.10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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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은 득량교회. 교회 제공

 

민족의 어두운 시기 1930년대

교인들의 눈물겨운 활동과 열성은

교회 부흥과 뿌리 깊은 신앙으로

분립개척을 통해 곳곳에 복음 전파

교회가 복음 기지 역할 감당해내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금의 우리의 생각과 행함이 옛 뒤안길로 묻혀져 가는 참 신앙의 모습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그 옛 영광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득량교회 100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득량교회 100년사’ 준비위원장인 임병용 장로가 쓴 글이다.

지난 5월 9일,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 위치한 득량교회(윤청열 목사)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걸어온 과거 100년이 미래로 나아가는 100년으로!’라는 주제로 ‘득량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린 것이다. ‘100주년 교회사 출판기념식’과 ‘항존직분자 은퇴· 추대·임직 예식’도 함께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해 3월 1일에 계획됐던 예배를 뒤늦게 드렸지만 윤청열 목사를 비롯한 득량교회 성도들, 참석자들은 어느 때보다 벅찬 감격의 시간이 되었다.

“1912년(임자). 보성군 동막교회가 설립되다. 선시에 선교사 안채윤이 조사 목치숙으로 전도하게 하여 임종대외 수3인의 가족이 신종하다가 봉계퇴보 되고, 임종대(林鍾大), 정기신(鄭基信)의 대소가가 회심출연하여 6칸 예배당을 매수하니라”(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하권, 171)

득량교회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당시 전라남도 동부의 선교역사를 살펴보고 ‘득량교회 100년사’에서 내린 결론은 전남 보성군 득량면 정흥리 동막부락에 목치숙 조사와 안채윤 선교사(Charles Henry Pratt, 1881~1950)사 1912년 년말 즈음에 예배를 시작했다가 1918년 재시작한 걸로 봤다.

목치숙 목사는 1885년 2월 23일 고흥에서 출생해 오기원 선교사(C. C. Owen 1867~1909)에게 소개된 사람으로 1905년 오웬 선교사가 고흥읍을 비롯해 여러 지방을 방문했을 때 조사로 동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09년 오기원 선교사의 죽음 이후 1912년 안채윤 선교사가 고흥 지방의 교회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지만 뜸한 예배로 교회의 역할을 잃어갔다. 그리고 1918년 다시 임종대 성도와 정기신 조사에 의해 예배가 다시 시작됐다.

우리나라 1919년은 3월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기였다. 1910년에 시작된 일본의 식민통치에 반발해 전국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고, 1919년 3월에 평양신학교에 입학을 위해 서울에 상경한 목치숙 조사는 3·1만세운동에 참여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미뤘다. 그는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흥으로 내려와 4우러 15일 장날에 고흥 3·1만세운동을 주동한 혐의로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7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리고 1923년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득량면 동막교회, 구례 화개교회 등 여러 교회를 돌보는 순회-조사로 시무했다. 1924년 평양신학교에 입학을 허가받고 1925년부터 보성읍교회 전임 교역자로 시무하며 수시로 득량면 동막교회를 순회-구역에 포함시켜 돌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1928년 3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1927년, 보성읍교회에 황보익 목사가 부임하면서 1939년까지 동막교회는 황 목사의 당회권 아래 있는 교회가 된다.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30대였던 황 목사의 열정과 헌신의 열의로 보성읍교회를 비롯한 군대 4개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 목사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4개 순회구역 교회에 전도자를 파송해 돌보게 했다. 1934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 제18회 노회록에 보면 득량교회에 대해 “득량교회는 교인들의 눈물겨운 활동과 박창규 전도사의 열성으로 예배당을 신축하고, 교인도 배가되어 보성지방 전도 성적 발표 2등상 기를 받은 일이오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1939년에는 황보익 목사가 신학 공부를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 교역자가 없는 교회로 전락했으나 순천노회 창설에 공로가 큰 웅동교회 은퇴 장로인 장기용 장로가 전입해오면서 득량교회는 유지될 수 있었다. 장기용 장로는 장남인 장형국 장로도 1952년 득량교회에서 장로로 임직을 받았으며, 차남인 장형일 목사도 구세군 부령이고, 장 목사의 아들 장일선 목사는 한신대학교 구약학 교수이다.

1939년, 1940년에는 광주에서 ‘독신전도단’ 소속으로 신사참배운동 거부에 참여했던 이남철 전도사와 이재천 전도사가 부임해왔으나 일제당국의 삼엄한 경비 속에 그들의 사역은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은 득량교회. 교회 제공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득량교회는 1960년 오봉리 7구에서 오봉리 6구에 새로운 예배당으로 옮겼다. 그리고 먼 거리로 인해 예배가 어려웠던 성도들 15명이 독립해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1955년 이덕본 목사가 득량교회에 부임할 당시, 1957년 순천노회에 보고한 교회상황을 보면 장년예배 150명, 유년주일학교 200명이 출석하고 있었다. 특별한 것은 “매주일 성경공부를 강조함으로써 성경다독회원이 남녀 70명, 성경통신과생 12명”이라는 보고다. 그리고 1957년 조주억 장로를 장립하면서 당회가 시작됐다. 그러나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통합과 합동 측으로 분리되면서 1960년 조주억 장로를 비롯한 일부 교인이 득량교회를 떠나 합동 측 득량제일교회를 세웠다. 1965년에는 마천교회를 분립했다.

1960년 이덕본 목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서 보성읍교회 오석주 목사가 당회장을 맡았으나 1963년 김홍근 전도사가 부임해왔으며, 1966년에는 김규섭 목사가 부임해 득량교회의 역사를 이어나갔다.

이후 1970년 10월에 김영모 목사가 부임해 1974년 득량교회로 출석하기 어려운 성도 7~8명을 위해 비봉리에 비봉교회를 분립해 세웠다. 그리고 구 일본인 소유의 ‘미곡창고’에서 예배를 드리다 1976년 12월 새로운 예배당을 완공해 입당예배를 드렸다. 1979년 3월에는 오봉교회를 분립하고, 1984년에는 송삼교회를 개척해 분립했다. 1997년에는 만 27년을 재직한 김영모 목사가 첫 ‘원로목사’로 은퇴했다. ‘득량교회 100년사’에는 김 목사를 ‘교인들의 영적인 아버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후 정병래 목사를 거쳐 2001년 윤청열 목사가 현재까지 득량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윤 목사는 100주년 기념 예배에서 인사 말씀을 통해 “전반기 50년은 예배당 이전과 분립의 반복으로 복음의 전진기지 역할을 감당했으며 후반기 50년은 교회의 안정된 양적, 질적 성장을 도모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현 시대와 사회구조는 교회성장이 멈춰졌으나 우리교회는 꾸준한 교인 양육과 공동체사업을 통해 지역과 주민들을 섬기고 사랑으로 함께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득량교회는 윤 목사가 부임하고 5월 어버이 주일에는 주민초청잔치와 70세 이상 효도관광을 펼치고, 성탄절이면 마을 곳곳에 새벽송을 돈다. 추수감사절이나 총동원전도주일도 곧 지역의 잔치로 이어진다. 뿐만아니라 연말이 되면 어려운 시골교회에 선교사역도 진행 중이다.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은 득량교회. 교회 제공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지만 득량교회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기념예배를 비롯해 제직세미나, 국내 성지순례, 전교인 산상예배, 전도간증 세미나, 목자부부 가을 나들이, 전교인 체육대회, 성탄절 음악회 등을 진행 중이다.

100주년을 맞이한 득량교회 교인들의 생활 목표는 △온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과는 기쁨과 평화를 이루자 △모든 일은 믿음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으로 생활화 하자 △모든 일은 사랑으로 섬기되 형제를 행복하게 하며 서로 진실하게 사랑하자 △소망을 품고 무슨 일에든지 인내하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자 △예배, 전도, 배움, 친교, 봉사는 일생을 두고 실천하며 모든 이들에게 본이 되도록 생활하자 △주님께서 나에게 지워주신 나의 십자가를 끝까지 짊어지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자 △말씀과 기도와 찬송으로 인생을 성공하고 후손에게 좋은 복된 신앙을 물려주자 이다.

윤 목사는 득량교회가 100년을 기념할 수 있는 교회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나님의 큰 은혜”라며 “초창기부터 성도들의 신앙심이 남달리 열정적이었던 것과 성도 수가 130여 명이 넘으면 분립을 통해 교회를 개척했던 것”을 꼽았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100주년을 맞이하고 현재는 6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지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섭리로 교회가 든든하게 섰다고 믿는다. 선조들의 뿌리 깊은 신앙으로 교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처럼,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성도들과 더욱 뜨겁게 기도하면서 새로운 100년을 기대하며 나아갈 것”이라고 소망을 전했다.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 맞은 득량교회. 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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