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교회모델]봉화군 척곡교회, "민족을 위한 교회, 박물관에서 구원선으로"
[미래세대 교회모델]봉화군 척곡교회, "민족을 위한 교회, 박물관에서 구원선으로"
  • 정성경 기자
  • 승인 2020.08.2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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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굴곡진 역사, 척곡교회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에 위치한 척곡교회 현판. 출처 한국문화원연합회 

1910년 8월 29일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인 ‘경술국치’가 있었던 날이다.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날,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교회(박영순 목사)에서는 ‘나라사랑 음악의 밤’이 열린다. 8‧15 광복의 기쁨에 앞서 어둠의 시간이 시작되었던 그날을 기리며 특별히 음악으로 의미와 가치, 그리고 오늘날의 감사를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연기됐지만 지난해까지 ‘제4회 나라사랑음악의 밤’이 8월 29일에 열렸다.

척곡교회는 지난 5월 창립 113주년과 제6대 담임목사 취임 축하예배로 큰 잔치를 열었다. 2016년부터 전도사로 사역했던 박영순 목사가 목사 안수를 받고 담임 목사로 취임하면서 척곡교회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1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척곡교회의 역사는 굴곡이 많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의 기쁨을 맛보기 전, 일제강점기의 눈물의 시간을 보내던 시대에 척곡교회는 민족을 보듬는 교회였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척곡교회를 ‘독립투사들의 회합 장소였던 산골 교회’로 소개하며 ‘삶을 보듬은 종교시설’이라고 평했다.

이곳을 지키는 이가 있다. 김영성 장로다. 올해 96살인 김 장로는 이곳에 오는 이들마다 역사는 물론 신앙심과 애국심까지 심어준다. 척곡교회와 명동서숙을 세운 고(故) 김종숙 목사(金鐘叔·1872~1956)의 손자인 김 장로는 교직생활 은퇴 후 척곡교회 관리인이자 대한민국 역사의 산 증인으로 그곳을 지키고 있다.

故 김종숙 목사가 '선구적 의지로 섭립한' 왼쪽 명동서숙과 오른쪽 척곡교회당. 교회 제공

故 김종숙 목사가 경북 봉화군에

세운 오롯이 민족을 위한 교회

“선구적 의지로 설립된 교회”

김영성 장로의 헌신으로 역사와

신앙이 전승되는 살아있는 교회로

“경사천부 사아식물 매번불망(敬事天父 賜我食物 每番不忘) ; 저에게 식물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며 식물을 주실 때마다 그 크신 은혜를 잊을 길이 없나이다.”

척곡교회에서 드리는 식사 기도문이다. 이곳을 세운 김종숙 목사(金鐘叔·1872~1956)는 대한제국 탁지부 관리였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 이후 관직을 버리고 처가의 고향인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에 내려가 척곡교회와 명동서숙을 세웠다. 명동서숙은 1907년 문을 열었고, 척곡교회 예배당은 1909년 건립되었다. 산골 교회인 척곡교회는 복음 전파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척곡교회는 봉화의병장과 독립투사들이 비밀 회합을 가지는 장소였고, 간도로 보내는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통로였다.

척곡교회를 세울 당시 김종숙 목사는 평신도였다. 서울에서 관료 생활을 하면서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ㅁ 받아들인 그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사이 오지였던 법전면에 척곡교회를 세운 것이다. 1919년에 장로가 된 김종숙 목사는 해방 후인 1946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척곡교회는 처음부터 일제의 삼엄한 감시 아래 놓여 있었다. 1920년대엔 김종숙 목사가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1943년경에는 교회 종을 빼앗겼고, 1945년엔 김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3개월 옥고를 치르고 해방이 되면서 풀려났다. 김 목사의 처남인 봉화의병장 석태산은 소백산에서 잡혀 현장에서 처형되는 시련도 있었다.

김종숙 목사가 세운 명동서숙은 북간도의 명동학교와 명칭이 같다. 초기 한국 교회가 그랬듯이 애국계몽과 선교의 목적으로 교회와 학교를 함께 세운 것이다. 그러나 명동서숙은 정식 학교가 되지 못한 채 운영되다가 1943년 폐교되었다.

척곡교회 예배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 ㅁ 자 기와집으로 세워졌다. 교회 출입문은 왼쪽과 오른쪽에 작은 솟을대문처럼 지어졌다. 남자와 여자의 출입구를 구분했기 때문이다. 뒷문은 교회 뒤 산으로 연결되었는데, 예배 인도자가 드나드는 문이자, 독립운동가들이 발각될 경우 피신시키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척곡교회와 초가집 명동서숙은 산골 오지에서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다 2006년에야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척곡교회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 5점은 2011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0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된 문서는 1907년부터 1955년까지의 세례인 명부, 1921년 기록인 척곡장로교 면려회 회록, 1926년부터 사용된 봉화 척곡면려회 출석부, 1926년 이래 척곡교회 당회록 가운데 2호, 1930년 조직된 척곡교회의 기본금 기성회 창립회의 회의록이다. 이 밖에도 척곡교회에는 1910년대~1930년대에 간행된 서적들이 남아 있다.

척곡교회와 명동서숙이 역사적으로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선교사나 단체가 아니라 한 성도의 선구적인 의지로 설립됐다는 것이다. 척곡교회를 설명하는 모든 문화재나 역사적 기록에 꼭 들어가는 멘트이기도 하다.

이렇게 척곡교회가 오늘날 역사적인 교회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김영성 장로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교직에서 은퇴 후 편안한 노년의 삶을 꿈꿀 법도 한데 조부의 피와 땀이 새겨진 산골짜기에 찾아 들어와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전면을 찾는 이들마다 교회와 명동서숙을 안내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는 물론 신앙의 역사도 함께 풀어낸다. 작곡을 하는 등 피아노 연주를 잘하는 김 장로는 직접 연주를 하며 찬송가와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2019년 8월 29일에 열린 '나라사랑 음악의 밤'. 교회 제공
척곡교회당을 지키며 '나라사랑 음악의 밤'을 준비한 김영성 장로. 교회 제공

2016년부터 시작된 ‘나라사랑 음악의 밤’도 나라와 교회를 사랑하는 김영성 장로의 진심에서 시작됐다. 1910년 일제에 통치권을 빼앗긴 ‘경술국치’를 기억하며 민족을 위한 교회로 그 사명을 다했던 척곡교회에 주민뿐만 아니라 외부지역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다.

‘나라사랑 음악의 밤’은 마당공연, 기념식,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지난 해 열린 음악의 밤에서는 아가페 여성합창단, 카리스 관악 합주단, 아코디언 합주단 등의 공연으로 마을 주민은 물론 참석자들의 마음에 진한 애국심과 감동을 전했다.

지난해에는 5월 17일 교회창립 112주년 기념 및 처음예배당 복원 헌당식도 가졌다. 100여년 만에 복원된 곡척교회는 담장과 솟을대문도 복원하면서 일본군의 접근을 감시하려고 뚫은 담장구멍까지 재현했다. 게다가 예장통합 총회에서 3‧1운동 참여교회로 지정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척곡교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담임 목사 없이 어려움을 겪던 곳이기도 하다. 잠시 척곡교회에 부임했던 담임 목사와 성도들이 예배도 따로 드리며 서로간의 갈등으로 인해 법적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올해 5월 교회창립 113주년 감사 및 제6대 담임목사 취임 축하예배를 드린 척곡교회. 교회 제공

현재는 박영순 목사와 10여명의 성도들, 그리고 15명의 교회학교 학생들이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시골교회에 15여명의 학생들? 듣는 사람마다 놀란다. 더 놀라운 것은 15여명의 학생들의 부모님이 비신자라는 것이다.

예장통합 영주노회에서 교사들이 없는 교회학교를 돌보기 위해 박영순 목사를 파송했고, 박 목사는 4개 교회를 순회하며 교회학교를 섬겼다. 당시 박 목사는 전도사였다. 그렇게 만난 교회가 척곡교회였다. 박 목사는 처음에 척곡교회를 찾았을 당시 전혀 교회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오래된 교회에 교회자체가 문화재였다.

박 목사는 “담임 교역자는 없었지만 김영성 장로님의 주도하에 성도들이 하나 되어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교회학교 사역을 하러 왔지만 담임 교역자가 없어 교회에서 박 목사에서 장년부 예배까지 함께 드려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응한 박 목사는 5년 만에 목사 안수를 받으며 척곡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됐다.

박 목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척곡교회가 앞으로 한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의 역할만이 아닌 구원선의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며 “이곳을 찾는 이들이 믿음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보면서 신앙의 새로운 도전을 받고 결단할 수 있다면 참 감사하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 장로는 “좋은 목사님이 오셔서 참 감사하다”며 “박 목사님 덕분에 교회에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경북문화재 자료 590호에는 한국교회의 귀중한 자료가 다 포함되어 있는데 현재 보관할 데가 없어 청량산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보물인 그 자료들을 우리교회에서 전시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세계 각지에서 이곳을 찾고 있는데 와서 기도도 하고 영혼의 쉼도 얻으면서 믿음의 선조들의 역사를 되새기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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