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목회모델] 오병길 전도사(덕암교회에서 순교), "순교의 발자국을 교회마다 남기다"
[미래세대 목회모델] 오병길 전도사(덕암교회에서 순교), "순교의 발자국을 교회마다 남기다"
  • 정성경 기자
  • 승인 2020.06.25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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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교회 앞에 있는 26인을 위한 순교비. 교회 제공

 

65명 순교한 야월교회를 비롯

전라지역 4교회 든든히 세워

고향교회 지하에서 예배드리다

가족들과 공산당에게 순교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덕암리에 세워진 덕암교회는 구전에 의하면 올해로 120년을 맞는다. 교회 출입구 오른쪽에는 2014년 1월 10일에 세워진,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글이 새겨진 26인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이강연 전도사를 비롯한 순교자들의 이름 중 오병길 전도사와 오주환 집사, 오재환 피택장로는 가족이다.

덕암교회는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에 의해 1900년 어간에 설립되었다고 알려진다. 교회는 농촌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오병길 전도사. 출처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 

이 교회 창립자 중에 한 사람인 오윤팔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오병길 전도사는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누구보다 총명했던 오 전도사는 당시 선교사가 가르쳐준 성경 구절은 그날로 암송하곤 했을 정도다. 이런 그를 지켜보던 선교사가 광주 숭일학교에 입학시켰으며, 졸업 후 광주성경학교에서 3년 동안 과정을 마쳤다.

광주 숭일학교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누가복음 2장 32절을 본문으로 베드로의 순교에 대해 말씀을 전했다. 당시 오 전도사는 마음속으로 ‘나도 베드로처럼 순교의 길을 가야지’라고 다짐했다.

이후 오 전도사는 전남 영광군 염산면에 있는 야월리교회(현재 야월교회)로 부임해 갔다. 그곳에서 그는 전도사로 사역하며 약국이 먼 섬 동네에서 의사, 약사를 겸직하며 주민들을 섬겼다. 예장통합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는 그를 ‘무속에 취한 이웃들을 위한 선교인’이라고 소개하는데, 바로 야월리교회에서의 사역 때문이다.

당시 야월도는 섬으로 돼지 머리를 차려놓고 제사를 드리는 무속신앙이 강한 어촌이었다. 풍어제를 지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오 전도사는 이 지역의 주민들을 전도하기 위해 매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특히 그는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미숫가루로 점심끼니를 때우며 전도에 힘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굶더라도 굶주리는 교인이 있으면 나눠주고, 아플 때는 기도해주고 약을 발라주는 등 진심으로 주민들을 섬겼다.

오 전도사의 열성적인 전도로 야월리 주민들이 하나둘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2년 만에 야월 리가 예수촌이 되어 배들이 출항할 때 벌이던 풍어제고 없어지고, 오 전도사의 기도로 출어할 정도였다.

그리고, 야월리교회 성도들은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이 배교를 요구할 때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러다 동네 주민 전원인 65명이 순교했다.

오 전도사는 야월리교회에 이어 부안면 용산교회, 흥덕면 흥덕교회, 해담면 동호교회를 돌보며 미자립교회가 자립하도록 사역에 힘썼다. 그러다 백산면의 평교교회로 부임했다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그의 고향인 덕암교회로 돌아왔다.

오주환 집사. 출처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 

당시 덕암교회는 큰 아들인 오주환 집사가 있었다.

오 전도사와 함께 순교한 그의 아들 오 집사를 예장통합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에는 ‘부친 오병길 전도사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오 전도사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모태신앙으로 성장한 오 집사는 공음면에서 보통학교를 거쳐 광주 성경학교에서 수학하고 상업에 종사하면서 아버지인 오 전도사의 사역을 경제적으로 도왔다.

오 집사는 고창에서 자전거점포, 양복점 등 여러 가지 직업을 통해 교회에 충성하였으나 6.25 전 빨치산활동 진행 중 6월 24일 갑자기 공산당원들의 위협을 피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덕임리 복흥교회에서 집사로 봉직했다.

오주환 집사도 덕암리 고향으로 내려와 부엌 옆에 지하실을 파고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성경을 읽던 중 공산당 자위대에 발각됐다.

부친인 오병길 전도사도 지하실에서 예배하며 찬송하던 중 공산당에 발각되어 1950년 9월 하순, 면분주소 앞뜰에서 이승만 괴뢰정부 앞잡이, 미국과 내통하는 스파이, 선량한 인민의 피를 빠는 흡혈귀라는 죄명으로 선고 받고 옆구리, 가슴, 아랫배 등 수없이 창으로 찔리는 참상을 당하고 순교했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그리고 며칠 뒤, 오 전도사의 아들 오주환 집사와(당시 29세) 오 전도사의 조카라고 알려진 오계환 피택 장로(오제환이라고도 알려진)도 함께 순교했다.

당시 13살이었던 오 전도사의 딸 오영례 권사는 순교자들을 기리는 예배에서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는 신앙을 지키나 고문당하고 있는 오빠에게 ‘하나님이 불러야 순교하는 거야’라며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외쳤다. 결국 아버지와 오빠는 순교했고, 나는 어린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고 말한바 있다.

오계환 장로. 출처 총회순교자기념선교회 

오병길 전도사와 오주환 집사와 함께 순교했던 오계환 장로는 덕암교회 장로 오병군의 차남으로, 특별한 신앙으로 한국전쟁 당시 온 가족이 순교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오 장로는 덕암교회 뿐 아니라 전북, 전남노회 안에서도 투철한 신앙인이었다고 한다. 청년시절 그는 믿음뿐 아니라 효자로도 소문나, 이웃 동네인 영광 법성면 월산교회 부유한 김용하 장로가 자신의 사위를 삼았을 정도다.

오 장로 아내 김금이 집사의 믿음 또한 오 장로를 능가할 정도로, 추한 모습의 거지가 와도 손수 밥상을 정성껏 준비하여 대접하기를 즐겼고 불쌍한 사람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1949년 덕암교회는 오 장로를 장로로 세웠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모두 피난가면서 담임 전도사가 오 장로에게도 피난을 권했지만 "장로가 교회를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죽으면 순교니 오히려 영광이지요"라며 피난가기를 거부하고 교회에 들어가 땅굴을 파고 기도하며 교회를 사수했다.

1950년 9월, 퇴각하던 공산단원들에게 발각된 오 장로는 몽둥이로 얻어맞으며 끌려 나와 체포됐다. 그동안 친정에 아이들과 함께 피신했던 부인과 어린 자식들도 잡혀왔다. 오 장로는 하나님께 "어린아이들만이라도 살려주옵소서"라고 기도했는데, 홀로 탈출한 아들 오균열 목사(예장보수개혁총회 총회장 역임)를 제외한 임신 8개월의 부인 김금이 집사, 두 살짜리 딸 오정이, 부안 평광교회에서 시무하던 오 장로 숙부, 오병길 전도사, 오주환 집사 등과 함께 순교했다. 오 장로의 나이 39세였다.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덕암교회는 여전히 순교의 역사를 이어가며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든든히 서있다. 구전으로 교회의 역사가 120년이라고 전해지지만 역사적인 사료가 없어 지난 2019년 당회에서 연혁 정리를 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부임한지 1년 남짓 된 이정훈 목사가 현재 교회사 정리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 목사는 “그나마 오병길 전도사 관련 이야기는 구전과 교회 회의록 등을 통해 드러났지만 안타까운 것은 김영해 집사 관련 자료”라고 말했다. 26인의 순교비에 새겨져 있는 김영해 집사의 가족만 해도 아버지, 어머니, 큰 며느리, 손자, 손녀 등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순교자들을 다 합쳐 12명이나 된다. 이 목사는 “한 가족이 다 순교하는 바람에 정확한 이름과 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이들이 없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름 없이 순교한 이들이 꼭 빛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대표회장 정영택)는 ‘집단 순교 시 누락된 순교자 확인’을 위해 11개 교단에 순교 추서를 요청했다. 한국교회사 전문가들은 한국교회 순교자를 대략 26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지만 미처 발굴되지 않았거나 집단순교로 인해 역사의 조명을 받지 못한 400여명의 개인 순교자를 심의하고 신규 추서할 예정이다.

덕암교회 앞에 있는 26인을 위한 순교비. 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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