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이 자전거를 메고 가야할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타이어에 펑크라도 났다면 어쩔 수 없이 자전거포까지 메고 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도로 경주를 하던 싸이클 선수들이 경사진 언덕을 만났을 때는 오히려 자전거에서 내려서 그것을 어깨에 들쳐 메고 언덕을 뛰어 올라 갑니다. 시간을 다투는 경주라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위의 두 경우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러니까 자전거를 타고 가는 되는데도 그것을 메고 걸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 교회의 박상덕 장로님입니다. 벌써 30년 이상이-2001년 당시 기준으로- 흐른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교회의 12대 담임자이신 이현덕 목사님이 부임해 오셨을 때, 장로님(그 당시에는 권사)은 전도사님께 자전거를 선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느날 안양에 자전거를 사러 나가신 장로님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늦도록 오지 않으셨더랍니다. 부인되는 장 권사님이 ‘왜이렇게 늦을까?’하며 기다리는데, 막차 시간이 훨씬 지난 늦은 잠이 되어서야 장로님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오시더라지요.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
“자전거 짊어지고 오느라고…”
“당신도 참 미련하시우. 아니 자전거를 타고 오면 되지 왜 메고 와요?”
“그래도 주의 종께 드릴 건데 내가 먼저 타보고 드릴 수 있나?”
그러니까 안양에서 자전거를 사신 장로님이 쑥개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와서 쑥개부터 고주물까지 꼬불꼬불 1킬로가 넘는 길을 메고 온 것입니다. 그 옛날의 3000리호 자전거가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이현덕 목사님은 지금까지도-2001년 당시-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십니다. 당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엄두를 못낼 만큼 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귀중한 일은 나이 어린 전도사에게 자전거를 선물한 분이 자전거를 메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 순수함과 그 정성이 지금까지도 고맙다는 것이지요.
이현덕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 “내 그 자전거를 타고 안가본 데가 없어. 폼 많이 재고 다녔지. 지방 교역자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몰라.”
-때론 자전거를 메고 갈 수도 있다(2001)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