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입을 크게 벌리면 돼
[에세이] 입을 크게 벌리면 돼
  • 강명순 대표
  • 승인 2019.12.1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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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먹고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아이들의 빈 배와 가슴을 채울 것은, 사랑밖에 없다."
강명순 대표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일요일 예배시간, 분홍색 잠바를 입은 여자 아이가 권사님 손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왔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 같이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권사님이 성가대석에서 찬양을 하고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내가 아이를 데리고 유아실에서 한 시간 동안 함께 있기로 했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은 ‘미아’이며 나이는 다섯 살이라고 하면서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조그만 손가락 너머로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크고 눈썹이 새까만 아이의 얼굴은 파란 핏줄이 다 보일 정도로 파리했다. 군데군데 멍 자국과 피딱지도 앉아있었다. 순간 권사님이 전화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미아는 엄마가 고등학생 때 컴퓨터 채팅으로 만난 삼십대 아저씨와 동거를 하면서 생긴 아이다.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아이 엄마는 컴퓨터를 너무 좋아해서 PC방에서 살다시피했고, 아이를 출산하고 난 뒤에는 PC방에 간다고 아이를 방안에 두고 문을 잠근 채 방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전, 아이 엄마는 미아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아빠와는 이미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됐기 때문에 아이만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셈이었다.

미아는 자기가 다섯 살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여덟 살이다. 하지만 네다섯 살 정도의 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체구가 작고, 약해 보인다. 이도 다 썩어서 말이 새는 바람에 처음 말을 배우는 유아들처럼 발음이 몹시 부정확하다.

“아줌마, 배고파… 언제 밥 먹어요?”/“나 김치도 잘 먹는데, 언제 밥 먹어요?”/“어디서 밥 먹어요? 반찬은 뭐예요?”/“예배는 언제 끝나요? 나 배고픈데….”/“아침에 아저씨(권사님)가 요구르트 줫어요. 아저씨네 방에 가면 귤도 많이 있어요. 아침에 밥도 많이 먹었는데, 왜 또 배가 고프지?”

아이는 3분마다 한 번씩 고장 난 녹음기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이가 하도 배가 고프다고 보채서 아래층에 가서 귤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는 허겁지겁 귤껍질을 까더니 어른 주먹만 한 귤 두 개를 한꺼번에 다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기가 언제 뭘 먹었냐는 듯이, “나 배고픈데 언제 밥 먹어요?” “난 아무거나 잘 먹어요. 난 다 먹을 수 있어요.” “매운 것도 잘 먹어요. 매운 것은 물에 씻어서 먹으면 되거든요.”

아이는 쉼터에서 잠을 자지 않고 친구들의 사물함을 뒤져서 밤 12시가 넘도록 과자며 사탕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권사님과 함께 밖에서 저녁을 먹은 날에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이의 배가 이미 터질 듯 빵빵했는데도 말이다. 권사님을 아이가 탈이 날까봐 음식을 그만 먹도록 제지했지만, 아이는 밤늦도록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요구했다.

결국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아야, 엄마가 밥을 안주시니? 왜 자꾸 배가 고프다고 그래….”

미아의 입에서 예상했던 대답이 나왔다. “우리 엄마는 나 밥 안줘. 자꾸 때리고 밥도 안줘서 배고팠어.”

갑자기 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의 윗옷을 올려서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역시나 그곳에는 멍 자국과 상처 딱지가 군데군데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이가 오랫동안 학대를 받은 증거로 충분했다. 미아는 컴퓨터에 빠진 어리고 철없는 엄마 때문에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권사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을까봐 상당히 불안해했다. “아저씨 어디 있어? 아저씨 찾아야 돼. 아저씨한테 데려다줘.”

조금 전에 배고프다고 졸랐던 것처럼 아이가 반복해서 말하는 통에, 예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예배 중간에 살그머니 미아를 데리고 앞자리로 가서 권사님을 눈으로 확인시켜준 다음 다시 유아실로 돌아왔다.

아이는 불안한 마음을 거두고 나머지 10분 정도를 그림책을 보면서 놀았다. 하룻밤 사이 아이는 권사님의 보살핌에 흠뻑 빠진 것 같았다. 나는 ‘그래도 아무렴 엄마가 더 좋겠지’ 싶은 마음에 미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미아야, 엄마가 찾으러 오면 엄마하고 같이 살거야?”

하지만 아이는 그 즉시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싫어. 엄마가 때려서 싫어. 배고파서 싫어. 난 아저씨랑 살거야.”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예배가 끝나고 미아는 권사님이 숟가락 위에 얹어주는 생선 반찬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밥이랑 반찬이랑 많이 줘. 내가 입을 크게 벌리면 돼.”

그리고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렸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대부분 미아처럼 음식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 먹고 먹고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아이들의 빈 배와 가슴을 채울 것은, 사랑밖에 없다.

-‘부스러기 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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