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 독서의 계절, 열성 독서가(牘書家) 유만주를 닮고 싶다.
[주필칼럼] 독서의 계절, 열성 독서가(牘書家) 유만주를 닮고 싶다.
  • 주필 이창연 장로
  • 승인 2018.10.1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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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도 많지만
앞으로 열과 성을 다해 최대한 많은 책을 읽으려 한다.
성경도 읽어야 하리."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 주십시오” 라이너 릴케의 가을 날 시를 읽으며 독서의 계절을 만끽한다.

당송 8대가 중 한 명인 한유(韓愈)가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아들 符에게 성남에서의 독서를 권함)’을 쓴 것은 당 원화(元和) 11년(816) 가을이다. 아마 이 무렵일 것이다. 그 글에 나오는 ‘新凉入郊墟(신량입교허)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 가을이 되어 마을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이 부니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 이제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9월을 맞아 유만주(兪晩柱, 1755~1788)의 일기 ‘흠영(欽英)’선집을 읽었다. 그는 20세 때인 1775년부터 1787년까지 12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쓴 사람이다.

유만주는 역시 대단한 독서가, 교양인, 평론가였다. 그는,

“세상만사 생각해도 아무 미련 없건만/오직 책만은 버릇처럼 남았네/어찌하면 1년 같은 긴 하루 얻어/아직 못 본 세상의 책들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시를 썼다. “선비로서 시작부터 끝까지를/책 없이 어떻게 끌어 나가랴/농사꾼이 농사짓듯/장사꾼이 장사하듯 해야 하리/아름다운 문장을 크게 빛내고/천고의 역사를 두루 살피려네(하략)”

그는 미성(未成)의 역사가이기도 했다. 4대 기서 중에서 삼국지연의를 으뜸으로 친 그는 저자 나관중(羅貫中)을 영웅이라고 했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 중 항우본기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야 할 최고의 문장으로 평가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훌륭한 서화를 소장하고 있으면서 더 깊은 곳에 숨겨 두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멋진 책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더러운 것이 묻지 않을까 근심하는 것, 서화를 늘어놓고는 문을 닫아걸고 혼자 구경하는 것, 책꽂이를 맴돌며 먼지를 떨고 책갑이나 정돈하는 것 등은 모두 똑같이 어리석고 미혹된 행동이라 했다. 이런 무리들은 죽을 때까지 이 사소한 물건의 머슴과 노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서 장서인(藏書印)을 한 번도 찍지 않았던 수학자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을 칭찬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서적은 공공의 물건이니 개인이 사사롭게 차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마침 책을 모을 만한 힘이 있었기에 책이 나에게 모인 것이지 남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유만주는 문장에서도 독창적 주장을 했다. 진한(秦漢)의 고문만 답습하거나 송나라 때의 문투에 기대지 말고 ‘지금, 여기’의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글에 방언 속어를 피할 이유가 없다고 믿은 그는 소설을 열심히 읽고 설화 야사 야담 등 당시의 대중문화도 중시했다.

그러나 노론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유만주는 과거에 여러 번 떨어지고 벼슬살이를 포기한다. 운명, 외모, 재주, 세련된 태도, 재능, 재산, 집안, 언변, 필력, 의지 가운데 어느 것도 없는 십무낭자(十無浪子)를 자처했다. 과거제도의 폐단과 문란함을 지적한 뒤 인재 등용방식을 천거로 바꾸고, 글만 보지 말고 기능으로 사람을 뽑자는 진취적 견해도 밝혔다. 그의 일기는 박문다식(博聞多識)의 자료로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들이 죽자 절망감과 슬픔에서 쓰기를 중단했다. 34세 때인 1603년, 26세나 연상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에게 빌려간 책 돌려달라고 쓴 편지다.

“옛사람의 말에 ‘빌려간 책은 언제나 되돌려 주기는 더디고 더디다‘고 했지만 더디다는 말은 1,2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강(史綱)’을 빌려드린 지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되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벼슬할 뜻을 끊고 강릉으로 아주 돌아가 그 책이나 읽으면서 소일하렵니다. 감히 사룁니다.”

허균이 정구에게서 책을 돌려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유만주의 일기에 의하면 ‘책 빌릴 때 한 치(瓻), 책 돌려줄 때 한 치’라고 했다는데 치는 술병이다. 책을 빌릴 때 술병을 선사하던 풍속이 와전돼 그 말이 치(癡:바보)로 변함으로써 책 빌려주는 이도, 책 돌려주는 이도 바보라는 속담이 됐다는 것이다. 세상엔 읽어야 할 책이 너무나도 많지만 앞으로 열과 성을 다해 최대한 많은 책을 읽으려 한다. 성경도 읽어야 하리.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

전 CBS방송국 재단이사

NCCK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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