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사진신학④ 누미노제와 아드 폰테스
[전문가 칼럼] 사진신학④ 누미노제와 아드 폰테스
  • 최병학 목사
  • 승인 2020.12.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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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도덕경', 오른쪽은 '논어'를 한 자 한 자 찍어 합친 것.
왼쪽은 '도덕경', 오른쪽은 '논어'를 한 자 한 자 찍어 합친 것.

미학의 역사에서 칸트(I. kant)는 고전주의를 벗어나 근대를 연 사상가이다. 고전주의는 미란 ‘본질을 현시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정한 규칙(본질, 혹은 진리)을 정해놓고 그것과 예술 작품이 1:1로 대응하면(혹은 잘 묘사하면) 아름다운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은 파르테논 신전과 같이 수치 비례적으로 완벽에 가까워야 하며, 예술은 진리와 도덕과 종교에 종속되어야한다. 나아가 모든 사물과 사건은 ‘진’리→-‘선’함→‘미’(아름다움), 곧 진선미(眞善美)의 순서로 가치가 매겨져야 한다. 미스코리아의 순위처럼.

그러나 근대가 열리면서 예술은 본질로부터 탈피하여 ‘물질을 통한 감성의 창출’, ‘대상의 상실’, ‘현실의 주체적 해석’, ‘상상 공간의 창조’, ‘의미의 배제’ 등으로 새롭게 변화된다. 그 시작에 칸트의 미학이 놓여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는 개인적인 느낌을 따르는 것이다.

미란 인식이 아니라, 쾌감이다. 따라서 예술의 본질은 진리의 내용에 있지 않고, 예술의 형식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가는 스스로 규칙을 세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천재’이지, 고전주의 예술가처럼 일정한 규칙을 따라 자연을 모방하는 ‘장인’이 아닌 것이다.

칸트의 세례 이후, 이제 ‘미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었다. 예술은 더 이상 윤리적인 가치를 지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로지 고유의 미적 자율성만 가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순수한 형식의 조합과 상상력의 놀이’로 예술이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술의 발명은 회화의 위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회화가 자신의 근본인 형과 색으로 돌아가 형식의 자유로운 유희를 창출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실 사진은 풍경화와 인물화, 정물화 등 회화가 재현 대상으로 삼았던 모든 것들을 더 잘 재현하였다. 그 결과 고전주의에 입각한 사람들은 사진이 회화보다 더 수치 비례적으로 대상과 가깝기에 회화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 회화는 선과 색, 곧 형태와 채색이라는 회화의 근본으로 돌아가며(Ad Fontes) 위기를 극복한다.

그렇다면 회화를 근본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다시 부활시킨 사진의 탄생이 이제 신학과 목회가 근본으로 돌아가 부활하는 계기가 되는 사진-신학의 도전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의 체험(불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깨달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초월적인 신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와 서로 만나는 상태를 종교철학에서는 ‘누미노제(Numinose)’라고 한다. 이 특별한 용어는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R. Otto)가 말한 것으로 ‘명확한 표상을 이룰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라는 의미의 라틴어 누멘(Numen)에서 따온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초자연적 신비의 경험이라는 의미이다. 그러한 신비체험은 사진에서는 어떻게 존재할까?

<뉴욕 타임스>가 “철학적 사고가 지극히 참신한 작가”라고 극찬한 박박 민 머리, 동그란 안경, 검정 인민복의 사진작가 김아타는 연장노출(extended exposures)과 다중노출(multiple layering) 기법을 통해 작품을 창작했다. 존재의 본질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가 뉴욕의 모습을 찍은 1만장의 사진을 겹쳐 한 장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약간의 채도 차이가 있을 뿐 희뿌연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자 『도덕경』 5290자, 『논어』 1만5817자, 『반야심경』 260자를 한자 한자 촬영해 각각 한 장으로 포개는 작업도 했는데(성경은 분량이 많으니 ‘요한복음’이나 ‘창세기’만을 한 글자 한글자 찍어서 촬영하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작업 가운데 김아타는 “자신을 구속하던 경전이 솜사탕이 되더라”고 말한다.

또한 “합치면 다 사라질 것을 왜 굳이 힘들게 한 장 한 장 찍었나?”라고 묻자, 그는 “허망하고 덧없을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있음은 없음 때문이 아닌가?”라고 답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고, 없애버림으로써 있음을 드러내는 구도자의 깨달음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존재의 근원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의 체험이자, 깨달음이 사진과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진 찍기’를 통해서 가능한 사진-신학의 묘미이다. 지금 신학과 목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아드 폰테스! 종교의 근본인 거룩함으로 돌아가라. 그 거룩함은 버림에 있고 없애버림으로 있는 것이다.

최병학 목사<br>남부산용호교회<br>​​​​​​​동아대학교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br>전)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br>​​​​​​​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br>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동아대학교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
전)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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