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사진신학① 아기와 어머니
[전문가 칼럼] 사진신학① 아기와 어머니
  • 최병학 목사
  • 승인 2020.10.3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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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어머니’

그 아픔을 아는가? 어머니가 아기가 되는
그 슬픔을 아는가? 어머니가 갓난아기가 되는
아기가 울 때 대책 없음은
어머니가 아플 때 대안 없음이라.

어머니는 아기가 되어 투정 부리고,
아기는 어른이 되고자 투정 부리는데!
한순간 어른으로 사는 이내 인생에
나도 아기였고, 나도 어머니처럼 늙어 가리라.

오호라! 나도 언젠가는 내 아이의 아기가 되어
오늘의 이 슬픔과 아픔을 전하겠지. (2013.1.4.)

큰 딸 희주와 할머니 (2008.3.4.)
큰 딸 희주와 할머니 (2008.3.4.)

여기 큰 딸 희주와 돌아가신 모친의 사진이 있다. 그저 그런 사진이다. 그러나 이 한 장의 사진은 필자에게 엄청난 그리움과 아쉬움과 신기함과 시간의 덧없음과 무서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 사진 한 장은 때로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겨자씨와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듯, 사진기(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한지 오래다)라는 도구와 보잘 것 없는 한 장의 사진 이미지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진-신학(Photo+Theology=Photheology)은 사진기라는 기계(라고 쓰고 기술이라고 읽는다)와 사진 한 장에 담겨진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여 신학적 사유의 풍성함과 신앙의 깊이를 다시금 고민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사실, ‘빛 사냥’이다. 곧 피사체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는 것을 뜻한다. 빛은 평면인 사진을 입체로 보이게 하는 사진미학의 핵심이다. 따라서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필립 퍼키스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 강의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보여 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신학과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빛으로 오신 예수의 빛을 얼마나 잘 수용하고, 그 빛된 삶을 따르는가를 묻는 것이 신학이고 또 그 길을 가르치고 함께 가는 것이 목회일진데, 너무 성급하게 말씀의 은유를, 너무 조급하게 신학적 상징으로 건너뛴다. 따라서 사진-신학은 빛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 신학적 미학과 사진 한 장을 통해, 이론과 실천을 매개하는 동료가 된다.

일찍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풍크툼(punctum)을 통찰한 까닭은 그의 어머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우울증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 어떤 사진도 어머니를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을 느낀 바르트는 어느 날 어머니의 다섯 살 아이 시절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진 속에서 어머니의 모든 것을 느끼게 된다. 풍크툼, 곧 ‘사진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그 무엇’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르트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찌름’의 모습이지, 무관심한 타인이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이미지는 아닌 것이다.

필자도 이제 돌아가신 모친과 어느덧 엄마보다 더 커버린 딸을 보며 부산에 늦은 첫눈이 왔던 어느 날 찍은 할머니와 어린 딸의 사진을 보고, 바르트가 깨달은 그 어떤 ‘무엇’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시(詩)로 남겼다. 신앙도 바로 그러하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각자가 느꼈던 경험과 그 경험치를 담은 이미지와 그 경험치의 한계에서 다가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보편적 기준은 아니나(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보편성을 띄게 된다(어머니는 우리 모두의 그리운 이름이다!). 사진-신학의 신앙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바야흐로 사진-신학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 신학은 사진이 존재의 본질과 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찰나를 신의 이름, 아니 신의 빛으로 기억해 내고, 그 사진에 신앙의 깊이를 새겨 넣어야 할 것이다. 이제 카메라를 들고, 현실의 냉혹함을 넘어 존재의 신비를 찾으러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찰나의 의미를 영원의 뒤안길에 소식전할 메신저가 될 수 있을진저!

남부산용호교회 담임동아대학교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전)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남부산용호교회
담임동아대학교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
전)경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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