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목회] 틸만 리멘쉬나이더의 최후의 만찬
[예술과 목회] 틸만 리멘쉬나이더의 최후의 만찬
  • 임재훈 목사
  • 승인 2020.09.1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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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덜란드의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그의 저서 ‘중세의 가을’(1919)에서 14/15세기 북유럽의 문화적 정황을 동시대의 이탈리아와 달리 중세의 잔영이 드리워진 시대로 이해하였다. 미술사에서 북유럽은 로마제국 당시 지중해에 접하지 않은 알프스 이북의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을 의미한다.

1420년 경 플랑드르 지역에서 발생한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Northern Renaissance)은 상업자본주의와 중세도시를 기반으로 형성된 상인과 부르주아들의 미의식인 가시세계의 정복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피렌체의 초기 르네상스와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원근법, 명암법, 해부학에 기초한 인체비례와 묘사, 구도 등 과학적 이론에 기초해 전체화면을 구성하는 이성적인 미술이었다면, 북유럽 르네상스는 자연에 관심을 가지는 회화적 감수성과 ‘모든 피조물 안에 깃들은 창조주의 흔적’을 묘사하려는 종교적인 경건으로 자연의 세부를 묘사해 화면 전체가 자연의 환영에 도달하기를 시도하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심미적이고 세속적이었다면 북유럽 르네상스는 사회비판적이고 종교적인 경향이 강하였다.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은 국제고딕의 궁정적 취향을 넘어 시민계급의 태동과 함께 발생한 사실주의를 추구한 새로운 미술(ars nova)이었다. 혹자는 16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직접 받아들이기 전까지 초기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고딕의 전통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미술을 후기고딕(Late Gothic)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2. 독일 뷔르츠부르크의 틸만 리멘쉬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 c.1460-1531)는 후기고딕에서 르네상스로 전환되는 시기의 미술을 조각분야에서 구현한 명장이다.

틸만 리멘쉬나이더의 자화상, 1505-1508, 크레글링겐 마리아제단 세부, 크레글링엔
틸만 리멘쉬나이더의 자화상, 1505-1508, 크레글링겐 마리아제단 세부, 크레글링엔

당시 독일에서 선호하던 미술형태는 회화보다도 조각이었다. 특히 그가 주력하였던 목조제단은 예배현장에서 사용되던 오브제로서 격변의 시대였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 교회의 신학동향을 파악하게 해주는 미술영역이다.

튀링엔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출생한 리멘쉬나이더는 동전제조 장인이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18세 무렵 조각가의 길에 들어선다. 뷔르츠부르크에서의 미술수업 후 스트라스부르, 울름에서의 유랑도제기간에 니클라스 게르해르트 반 라이덴(Niclas Gerhaert van Leyden, c.1430-73), 마르틴 숀가우어, 미헬 에르하르트의 미술과 조우함으로 플랑드르 리얼리즘, 후기고딕전통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그의 작품 다수에 등장하는 사색하는 멜랑콜리 이미지는 반 라이덴의 후예들과의 교유를 통해 형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니클라스 게르해르트 반 라이덴, 명상에 잠긴 남자, c.1463-67,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박물관
니클라스 게르해르트 반 라이덴, 명상에 잠긴 남자, c.1463-67,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박물관

그가 뷔르츠부르크에 자신의 독립된 공방을 연 것은 금세공장인의 미망인과 혼인한 1485년이었다. 그는 뷔르츠부르크 시장 재임 시 농민전쟁(1525)에 우호적인 정치적, 신학적 입장으로 인해 전후 더 이상 작품 활동을 지속하지 못하였다. 뒤러시대(Dürerzeit)의 인물임에도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이 상실되었다가 19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재조명된 작가이다.

하지만 채색과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동시대 작가들의 제단들이 성상파괴운동(Bildersturm) 당시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깊은 신앙심으로 검소하고 소박하게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치중한 그의 작품들은 종교개혁/반종교개혁 양진영 모두에게 애호되어 오늘날까지 남겨질 수 있었다.

독일 전통의 보리수목재(Lindenholz)를 사용해 나뭇결과 재료의 질감, 자연의 색채를 통해 북유럽의 감성을 표현한 그는 생전에 ‘명장 틸’(Meister Til)이란 애칭으로 불려졌다.

3. 로텐부르크 성 야고보교회에 소장된 ‘성혈제단’(Heiligblut-Altar, 1501-05)은 리멘쉬나이더의 예술역량과 신앙이 담긴 그의 대표작이다.

틸만 리멘쉬나이더, 성혈제단, 1501-05, 보리수목재, 900cm, 로텐부르크 성 야고보교회
틸만 리멘쉬나이더, 성혈제단, 1501-05, 보리수목재, 900cm, 로텐부르크 성 야고보교회

타우버 강변의 도시 로텐부르크는 중세 순례자들이 프랑켄의 예루살렘으로 여길 만큼 성유물을 많이 보유한 전통적인 순례지였다. 리멘쉬나이더는 제단화를 제작하면서 성유물과 관련된 인물의 특정 장면을 묘사해 신자들의 종교적 감동을 고양시키는 작가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로텐부르크 시의회는 1501년 그에게 성혈제단의 레타벨(Retabel, 가운데 세 폭 화면) 부분을 주문한다. 그리고 제단의 상단(천개, Gespringe)과 장식 부분은 장인 하르쉬너에게 분할 주문하였다. 리멘쉬나이더는 제단의 형태를 전체적으로 고딕양식의 교회 분위기에 어울리게 디자인하였다.

특히 중앙 패널의 역T자형 모습은 고딕 특유의 상승감을 더해준다. 그는 중앙 세 패널에 성혈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을 세 장면으로 묘사하였다. 왼쪽부터 예루살렘입성,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동산의 기도장면이 좌우날개에는 부조로 그리고 중앙화면(Schrein)에는 3/4 정도의 환조로 입체감 있게 새겨져 있다.

틸만 리멘쉬나이더, 성혈제단 레타벨, 1501-05, 보리수목재, 로텐부르크 성 야고보교회
틸만 리멘쉬나이더, 성혈제단 레타벨, 1501-05, 보리수목재, 로텐부르크 성 야고보교회

그는 작품의 핵심주제인 ‘최후의 만찬’ 장면을 제작하면서 두 가지 면에서 혁신을 이루었다. 첫째는 만찬이 행해지는 화면의 배경부분을 투각기법으로 도려낸 후 그 자리에 창을 설치해 화면의 공간이 만찬이 실제로 행해지는 곳과도 같은 효과를 자아내게 하였다. 전면과 배면에서 비추는 조도에 따라 화면의 인물들은 입체감과 현장감을 지니게 된다.

관람자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의 강도에 따라 마치도 무대에서 전개되는 서사를 바라보며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내면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다. 북유럽 기독교미술의 핵심인 제단화(Altar)는 오브제가 종교적으로 사용된 실제 장소와 관련되어 그 의미가 해석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와 유다의 위치배열에서의 혁신이다. 전통적으로 최후의 만찬 도상에서는 화면 중앙의 식탁 가운데에 그리스도가 앉고 그 좌우에 제자들이 앉는 대칭적 배치를 취하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화면의 중앙에 배신자 유다가 서 있으며 그리스도는 화면 왼쪽 좁은 공간에 여섯 명의 제자그룹과 함께 치우쳐 있다.

이러한 배열은 이제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화면 구성이다. 이 장면은 예수께서 유다에게 떡을 건네주는 순간(요 13:26)을 묘사한다. 리멘쉬나이더는 이 장면에서 수난을 앞둔 예수께서 돈주머니를 움켜쥔 유다에게 떡을 주며 눈을 맞춘 순간, 두 사람의 내면의 교환과 유다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틸만 리멘쉬나이더, 최후의 만찬, 성혈제단 레타벨 중앙패널, 1501-05, 보리수목재, 275x275cm, 로텐부르크 성 야고보교회
틸만 리멘쉬나이더, 최후의 만찬, 성혈제단 레타벨 중앙패널, 1501-05, 보리수목재, 275x275cm, 로텐부르크 성 야고보교회

중세와 차별되는 개별자 개인에 대한 이해와 자각은 16세기 초반의 신학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다. 동시대의 제단작가 파이트 슈토스(Veit Stoss)가 중세 실재론을 그의 작품세계의 신학적 배경으로 지녔다면 리멘쉬나이더는 ‘인간적인 공감’(menschliches Mitemfinden)을 전제로 리얼리즘적인 개성을 지닌 인간을 추구하였다.

낮에 작품 전체를 비추던 햇빛은 석양 무렵이면 가운데에 서 있는 유다에게 집중적으로 비쳐진다. 순례자는 이 모습을 대하며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과 회개에 이르게 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묘사하는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와 같이 기하학적 대비를 갖춘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이상적인 공간에서 식사하는 모습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5-98,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5-98,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그런데 명장 틸의 만찬은 비좁고 초라한 공간에서 가난한 모습의 예수와 제자들이 실제로 유월절 식사를 했을 듯한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의 리얼리즘이 돋보이는 화면구성이다. 공간을 가득 채운 제자들은 한 사람도 소홀이 다루어지지 않고 각각의 제자들의 개성을 알아볼 수 있게 표현되었다. 북유럽 전통에 따라 사도 요한은 예수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경우 고개를 숙인 채 드러나지 않던 요한의 얼굴이 틸의 작품에서는 분명히 묘사되고 있다. 고전전통에 기반 한 이탈리아미술의 이성주의에는 다소 뒤지는 것 같지만 북유럽미술이 지닌 서사의 전달력, 인물들의 구체적 표현을 통한 신앙고양의 추구는 비견할 수 없는 독자성을 갖는다. 후기고딕의 전통과 북유럽 르네상스의 조형성이 그에게서 결합되고 있다.

아쉽게도 농민전쟁 진압 후 제후동맹군의 심한 고문으로 더 이상 창작을 할 수 없었던 그에게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정신이 본격적으로 구현된 작품은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격변기에 신앙인의 고뇌를 표현한 그의 작품들과 자유의지로 고난의 길을 선택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신앙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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