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기독교미술과 믿음의 발자취① 구원을 향한 기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전문가칼럼] 기독교미술과 믿음의 발자취① 구원을 향한 기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 임재훈 목사
  • 승인 2020.05.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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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그리고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시기인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후반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는 일생동안 ‘구원을 향한 미술’을 추구하였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신플라톤주의 이념과 이와 상반된 사보나롤라(G. Savonarola)의 사상 그리고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형성된 가톨릭개혁 그룹의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sm) 신학은 종교개혁/반종교개혁의 격변기에 참된 진리와 구원을 갈망한 그의 영혼의 궤적을 나타낸다. 이 글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일생의 주제로 삼은 피에타 상의 변천을 통해 그의 사상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켈란젤로가 젊은 시절 로마에서 제작한 초기 피에타(Pietà)는 고전적인 이상적 미를 완벽하게 구현한 전성기 르네상스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피에타(Pietà), 1498-1499, 대리석, 203cm,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피에타(Pietà), 1498-1499, 대리석, 203cm,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피라미드 구도 속의 두 인물의 조화와 균형, 옷자락의 주름과 인물간의 대비는 안정감과 평온함을 준다. 그리스도의 수평적인 선과 성모의 수직적인 선이 교차하여 중심축을 이루는 구성이 돋보인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1/3을 앗아간 흑사병이 창궐 할 당시 독일 라인란트 지역에서 발원한 피에타(Pietà Vesperbild) 상의 정수는 무고하게 죽은 아들의 몸을 무릎에 누인 채 오열하고 있는 어머니의 고통의 사실적 표현이었다. 당시의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어머니 마리아의 처절한 아픔 앞에서 자신을 동일시하며 위로를 구했다. 독일 본 라인주립박물관에 소장된 ‘피에타 뢰트겐’(Pietà Roettgen, c.1360)은 알프스 이북의 고딕 사실주의 경향을 대표한다.

피에타 뢰트겐(Pietà Roettgen), c.1360, 목재에 채색, 89cm, 본 라인주립박물관
피에타 뢰트겐(Pietà Roettgen), c.1360, 목재에 채색, 89cm, 본 라인주립박물관

미켈란젤로는 프랑스대사 그로슬레의 의뢰로 제작된 초기 피에타에서 북유럽미술의 사실주의와 감정표현을 특유의 열정과 기괴한 기교로 여지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해 전에 마무리된 레오나르도의 회화 ‘최후의 만찬’(1495-1498)과 함께 그의 조각 피에타(1498-99)는 절제와 규범, 균형과 이상적인 미를 추구한 전성기 르네상스 고전주의 미술을 양식적으로 구현하였다.

세부묘사는 사실적이지만 안정된 구도를 위해 마리아의 어깨와 치마폭이 실제보다 넓게 잡혀 있다. 수학적 분석으로 대상을 재현하는 데에 그친 콰트로첸토(Quattrocento, 15세기 초기르네상스) 미술과 달리 인간의 착시효과를 감안한 시각적 효과까지도 배려한 친퀘첸토(Cinquecento, 16세기 전성기르네상스) 미술의 완숙함이 나타난다.

수염 난 아들에 비해 너무 젊은 어머니의 얼굴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동정녀 어머니, 당신의 아들의 딸’이라는 성모의 비범한 젊음, 영원한 동정을 의미한다. 유미적이고 고요하며 세속의 욕망을 넘어 명상에 잠긴 마리아의 표정은 인간의 감정에 고통으로 호소하는 독일적 도상과 달리 그리스도의 희생을 감내하는 노력으로 내적인 비애와 고귀한 품위를 드러낸다.

죽은 예수의 몸과 자는 듯한 얼굴은 아름다운 영혼과 부활을 대변한다. 동일한 주제인데도 북유럽과 남유럽 간 신학적, 상징적 해석의 차이가 극명함을 알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묘비로 구상한 피렌체 피에타(Pietà Bandini, 1547-1553)는 수평으로 누인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 아니라 네 인물로 구성된 원추형이다. 그의 초기 피에타에서 나타난 초월적인 엄숙함보다 인간적인 고통과 슬픔이 부각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모가 강조되는 전통적인 도상을 변경해 그리스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가톨릭교회 내부에 형성된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sm) 신학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신의 자화상을 조각가의 모자를 쓴 니고데모로 표현한 미켈란젤로는 죽은 예수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부활을 염원한다. 반종교개혁으로 이 사상이 이단으로 정죄된 후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작품을 파괴하려고 하였다.

피에타 반디니니(Pietà Bandini), 1547-1553, 대리석, 226cm, 피렌체 두오모박물관
피에타 반디니니(Pietà Bandini), 1547-1553, 대리석, 226cm, 피렌체 두오모박물관

죽기 직전까지 보듬었던 피에타 론다니니(Pietà Rondanini, 1564)는 이상적 미를 구현한 초기 피에타와는 너무나도 다른 추상미술에 가까운 모습이다.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미를 추구했던 르네상스 미감의 해체가 완연히 느껴진다.

르네상스의 이성적 제작과 달리 작가의 감성적 표현을 중시하는 매너리즘의 입장이 재료가 지닌 돌의 자연성(matière)을 부각시키며 미완성(non-finito) 상태로 작품을 마감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피에타에서는 전통적 도상과 달리 마리아가 오히려 그리스도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이다. 긴 생애동안 인간사의 부침을 경험한 그가 죽음을 앞두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에서 구원의 길을 찾은 것이다.

피에타 론다니니(Pietà Rondanini), 1564, 석재, 195cm, 밀라노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성
피에타 론다니니(Pietà Rondanini), 1564, 석재, 195cm, 밀라노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성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임재훈 목사 독일 칼스루에벧엘교회 담임 유럽기독교 문화예술연구원장 예술과목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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