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사37] 황해도 교회사5上
[북한교회사37] 황해도 교회사5上
  • 황기식 목사
  • 승인 2019.12.20 08: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옹진군편 

옹진군은 한사군시대에는 낙랑군에 속하였고, 고려 때는 “옹천홀”이라고 하던 것을 1018년 현종9년에 옹진이라 개칭하여 현령을 두었다.

1397년(이조 태조6년)에 진을 두어 병마사로 하여금 판현을 겸하게 하였고, 1895년 고종 때에 옹진으로 부르게 되었다.

해방(1945. 8.15)후 38선으로 국토가 분단됨에 따라 38이북의 가천면과 교정면의 3분2가 북쪽에 속하게 되는 한편, 행정구역 개편으로 벽성군 대차면 월록면 3분지1, 가천면의 일부 해남면, 동강면이 합하여 1읍2개 면 되었고, 동시에 황해도에서 경기도로 편입시켰다.

옹진군의 행정구역은 옹진읍, 가천면 교정면, 용천면, 동남면, 흥미면, 봉구면, 부민면, 북면, 서면, 용연면과 그 외 도서는 기린도, 창린도, 어화도, 용호도, 순위도 등으로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졌다. 옹진군은 벽성군과 장연군을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51년 1.4후퇴 시에는 옹진군 임시 사무소를 당시 인천에 소재한 부천 군청에 설치하여 20개 도서의 난민구호 행정을 폈고, 53년 휴전협정으로 남.북이 휴전선에 의해 분단되자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소청도를 제외한 육지부가 미수복지구에 들게되었으며, 1962년에는 백령면 대청 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73년 부천군의 영종면 북도면, 용유면,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과 장봉, 무의, 자월 3개 출장소가 편입되어 8개면 4개 출장소가 되었다. 1974년도에는 백령면 대청 출장소가 대청면으로 승격하고 1975년도에 대청면 소청출장소를 설치하여 9개면 4개의 출장소가 되었다.

1983년 2월15일 전국 행정구역 조정으로 자월 출장소는 관할하던 자월, 이작의 2개의 리와 덕적면의 승봉리를 합하여 자월면으로 승격되었다. 따라서 옹진군은 11개면 출장소가 되었다. 옹진군은 해안선을 따라 70여개 섬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지역이다.

 

황기식 목사

총회역사 전문위원

아산동산교회

 

가스펠투데이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Array ( [0] => Array ( [0] => band [1] => 네이버밴드 [2] => checked [3] => checked ) [1] => Array ( [0] => talk [1] => 카카오톡 [2] => checked [3] => checked ) [2] => Array ( [0] => facebook [1] => 페이스북 [2] => checked [3] => checked ) [3] => Array ( [0] => story [1] => 카카오스토리 [2] => checked [3] => checked ) [4] => Array ( [0] => twitter [1] => 트위터 [2] => checked [3] => ) [5] => Array ( [0] => google [1] => 구글+ [2] => checked [3] => ) [6] => Array ( [0] => blog [1] => 네이버블로그 [2] => checked [3] => ) [7] => Array ( [0] => pholar [1] => 네이버폴라 [2] => checked [3] => ) [8] => Array ( [0] => pinterest [1] => 핀터레스트 [2] => checked [3] => ) [9] => Array ( [0] => http [1] => URL복사 [2] => checked [3] =>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