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청주출신 아동문학가 ‘최창남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 재조명 받는다.
일제하 청주출신 아동문학가 ‘최창남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 재조명 받는다.
  • 김성수 지역기자
  • 승인 2019.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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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박재훈 작곡 최창남 작시 ‘봄이 왔어요’ 외 70여 편 아동문학 작품 남겨
최창남 선생은 일제하 암울한 시기 아동문학 통해 ‘꿈과 희망, 민족의식’ 일깨운 ‘아동문학가’요 ‘민족운동가’요 참된 ‘교육자의 표상’

1920~40년대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에게 문학을 통해 꿈과 용기를 심어주었던 아동문학가 최창남 선생을 재조명하는 뜻 깊은 시간이 마련되었다. 16일 충북지역 기독문인들의 모임인 대한기독문인회(회장: 박도훈 목사) 월례회가 청주 은파교회(박도훈 목사 시무)에서 있었다. 이날 △ 1부 경건회와 시낭송의 시간 △ 2부는 새봄 문학 특강 △ 3부는 월례회로 진행되었는데, ‘새봄 문학 특강’ 순서를 통해 충북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충북지역 기독사가(基督史家)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전순동 장로가 ‘근당(槿堂) 최창남의 삶과 아동문학’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순동 교수가 '새봄 문학 특강'에서 '최창남 선생의 삶과 아동문학'을 강연하고 있다.
전순동 교수가 '새봄 문학 특강'에서 '최창남 선생의 삶과 아동문학'을 강연하고 있다. 김성수 기자

전순동 장로는 6,70대에게 잘 알려진 ‘봄이 왔어요’라는 동시의 작사자가 ‘박창남’ 또는 ‘남창남’으로 잘못 표기된 것을 ‘최창남’으로 바로잡는 일에 공헌한 바 있으며, 이날 강연을 통해 “최창남 선생이 개화와 독립의 기운이 기독교를 통해 일어날 무렵인 1920년, 24세에 완고한 유교적 가문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철저한 신앙인이 됐으며, 1926년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동화, 동시, 소설, 전설, 동극, 외국동화, 번안 콩트(conte)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충북 아동문학의 터전을 놓았다”고 소개했다. 또한 “서울과 중앙이 1920년대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 운동이 일어날 무렵, 충북지역은 아직 몽매(蒙昧)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충북지역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최창남 선생은 주로 월간 소년소녀 잡지인 ‘아이생활’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고, ‘신생’, ‘진생’ ‘신동아’, ‘한글’, ‘동아일보’는 물론 ‘기독신보’에도 발표한 그의 작품으로는 △‘호랑이 동생’ △‘울지 않는 종’ △ ‘달걀 투구’ △ ‘가을’ △ ‘봄’ △ ‘도야지 재판’ △ ‘개구리와 달’ △ 동극 ‘빵 속에 든 돈’, ‘우리 집 크리스마스’ △ ‘풀떡’ △ 어린이 주일의 유래를 소개한 ‘꽃주일을 당하여’ △ 전설 ‘계룡산 오누이 탑’ △ ‘아버지와 두 딸’ △ ‘어머니께 드릴 선물’ △ ‘여우와 닭’ △ ‘흑노 톰’ △ 성탄극 ‘빛나는 선물’ △ 노래 가사 말 ‘평화의 별’, ‘성탄나무’ 등 전설이나 번안 글을 제외하고도 무려 70여 편의 문학이 남아 있으나 작품집을 남기지 않아 묻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한기독문인회' 회원들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대한기독문인회' 회원들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김성수 기자

최창남 선생은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온유하면서도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자애롭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교육자였다. 또한 그는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부장, 연합회 회장, 청년활동가로 청남학교에서는 교사와 교감으로 교회와 학교를 넘나들며 식민지 암울한 시대에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문학을 통해 꿈과 희망과 용기와 미래를 밝히는 실천적 민족교육자였다. 예장 통합 증경총회장 박종렬 목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최창남 선생을 만나 그의 영향으로 신앙을 갖고 목사가 됐다고 회고(‘빛과 소금’ 1990년 2월호)했을 만큼 그는 신앙과 삶과 교육가로서 큰 영향을 발휘하였다. 그는 해방 후에도 청주사범학교를 시작으로 청주중학교, 청주여자고등학교, 청주공업고등학교, 청주세광고등학교, 청주고등학교, 주성중학교에서 38년 간 교직에 봉직하였다.

최 선생은 교회와 학교에서는 동화대회를 개최하여 어린이,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주었고, 사회에서는 학술강연회에 연사로 나서 어른들에게는 계몽활동을 펼쳤다. 또한 일제가 한글말살 정책을 펼칠 때 한글 강습회를 여는 등 한글운동에 앞장섰으며, 밤에 몰래 학생들을 불러 태극기 그리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한복을 입고 출근하여 한민족의 긍지를 심어주려 하였고, 단군조선을 가르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미래세대에게 민족정신과 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신사에 동원되어 ‘사이케이레이’(最敬禮) 구령이 떨어지면 청남학교 학생들은 뒤로 돌아서며 참배를 거부했던 행동은 최창남 선생의 영향이 컸다.

이 날 최창남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발표한 전순동 명예교수는 자신이 역사학자이기에 문학적으로 최창남의 문학을 천착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향수’의 정지용 시인이나 ‘감자 꽃’의 권태응 같은 충북출신 걸출한 문인들이 있었으나, 중앙무대에서, 또는 시대적으로 뒤에 활동했던 그들과 달리 최창남 선생은 문학적 토양이 황량한 충북에서, 문학의 공백기에 70여 편의 글을 통해 충북 아동문학의 모태가 되고, 한국문학의 기층을 이루는 공적을 남겼다”며 그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한편, 전순동 교수는 2년 전부터 최창남 선생의 문학작품을 수집해 왔고, 현재 70여 편의 작품 중에 50여 편을 모아 ‘근당 최창남의 아동문학 50선’을 엮어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의 노랫말 ‘봄이 왔어요’의 “한 겨울 땅 속에 잠자던 개구리 바스스 잠깨어 뛰어납니다”는 가사처럼 그의 문학세계가 더 이상 사각지대에 묻히지 않고 재조명 받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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